감독 : 존 달
주연 : 폴 워커, 릴리 소비에스키, 스티브 잔
개봉 : 2002년 6월 28일
6월 25일... 우리나라와 독일의 4강전이 열리던 날...
전 일찌감치 일어나 오늘은 어디에서 누구와 이 역사적인 순간을 같이 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갈곳도, 같이 있어줄 사람도 없더군요. 지난 스페인과의 8강전도 집에서 쓸쓸히 혼자 봤었는데...
전날 친구 녀석들이 호프집에서 같이 보자고 그랬었지만 왠지 그 웬수들과는 함께 하고싶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혼자 집에서 보는 것이 낫겠다고 체념하고 있을때쯤 어머니의 전화...
"넌 어디서 축구 볼꺼니?"
"그냥 집에서 볼껀데? 왜요?"
"아니 혼자보면 심심하잖아. 내가 일찍 들어갈까?"
아마도 어머니께선 지난 8강전을 혼자서 봤다는 소릴 듣고 내가 측은해서 이런 전화를 하신 걸겁니다.
"아니, 괜찮아요. 친구들과 보기로 했어요."
이렇게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고나자 이번엔 동생의 전화...
"오늘 어디에서 볼꺼야?"
"왜?"
"오늘 아침에 엄마가 오빠랑 같이 축구보라고 난리도 아니었어. 오늘 맥주사들고 집에 일찍 들어갈께."
어머니께선 이미 동생에게 손을 써놨던 겁니다.
전 그냥 못이기는 척...
"그래? 오늘 친구들과 볼려고 했는데... 그러면 어쩔수없지. 집에 있을께."
결국 이렇게해서 독일과의 4강전은 온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월드컵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어머니 아버지도 일찍 들어오고, 약혼자와 단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며 월드컵을 보려했던 동생은 데이트를 포기하고 약혼자와 함께 집으로 들어와서 저와 함께 월드컵을 본겁니다.
이걸 끈끈한 가족애라고 해야하나요? 그런데 전 왜 요즘 자꾸 이렇게 초라해지는 걸까요? -_-;
이번에 본 영화인 <캔디 케인>은 마치 요즘의 제 상황을 설명해주는 듯한 공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낯설은 장소에서 이름도 얼굴도 알지못하는 낯설은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황량하게 길게 뻗어있는 으시시한 미국의 고속도로가 꼭 내 인생과 같아보였습니다. 끝도 알수없고 저 앞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수없는 저 무시무시한 고속도로... ^^;
이 영화의 주인공인 루이스는 여자친구(?) 베나와 대륙 횡단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이제 갓 출소한 루이스의 말썽꾼 형인 풀러가 여행에 동참하면서 그들의 여행은 죽음의 여행이 되고 맙니다.
공포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아주 사소한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루이스와 풀러는 고속도로 운전자들의 통신 시스템인 CB라디오를 이용, 러스티 네일이라는 트럭 운전사를 골탕먹이는 장난을 칩니다. 그들은 통신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맘껏 장난을 친겁니다. 하지만 이 통신의 익명성은 오히려 무시무시한 공포로 이들 형제에게 되돌아 온거죠. 이제 그들은 얼굴도, 이름도, 정체도 알수없는 무시무시한 트럭 운전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들이 그랬던것처럼 그 트럭운전사도 마치 장난을 치듯이 이들 형제를 괴롭힌 겁니다. 그러나...
물론 이런 류의 영화에서 스토리의 현실성을 원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저는 압니다.
러스티 네일이라는 트럭 운전사가 어떻게 루이스 형제의 뒤를 쫓았는지... 그 커다란 트럭을 이끌고 루이스 형제 몰래 뒤를 쫓는 다는 것이 분명 불가능했을텐데.
러스티 네일이라는 트럭 운전사가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장난을 치는 것인지... 아무리 루이스 형제의 장난에 대한 복수라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좀 심하던데...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는 어떻게 되었는지...
영화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단지 관객들에게 루이스 형제가 처한 공포를 즐기라고만 강요합니다. 물론 그것은 어쩌면 공포 영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러스티 네일의 좀 너무하다 싶은 이 장난이 얼마나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할수 있을지...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물론 제가 보기엔... ^^)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그 황량한 고속도로에서의 무시무시한 트럭을 이끌고 루이스 형제의 그 자그마한 자동차에 달려들땐 약간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 뇌리속엔 이건 장난이라는 러스티 네일의 대사가 깊게 박혀서인지 러스티 네일에 의한 모든 위협이 그냥 조금 심한 장난처럼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끝까지 러스티 네일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디 아더스>에서 확인했듯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기는 하죠. 하지만 러스티 네일의 정체를 모르는 이상 러스티 네일은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인 트럭 운전사일 뿐입니다. 물론 그가 조금 거칠고, 장난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공포 영화에 나오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들이나 거리낌없이 사람들을 조각내버리는 연쇄 살인범보다는 안무서운 것이 당연합니다.
요즘 그러한 자극적인 공포 영화에 길들여져 있는 탓인지... 러스티 네일은 그냥 장난이 조금 심한 트럭 운전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군요.
물론 베나의 친구를 납치하고, 베나를 죽음의 미끼로 쓰는 것은 아무리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그래도 다른 공포 영화들의 엽기적인 상황보다는 덜 무서운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너무 자극적인 영화들을 많이 본 탓인가요? ^^;
이 영화에 대한 공포가 생각보다 깊지않자 전 스릴러로써 이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스릴러라고 할수도 없습니다.
다른 스릴러 영화처럼 단서를 꾸준히 관객에게 제시하여 관객을 영화속에 끌여들이는 짓을 이 영화는 하지 않습니다. 물론 단서도 없고, 사건의 개연성도 없습니다. 단지 관객들에게 영화의 상황속에 빠져 공포를 느껴보라고 강요할뿐입니다.
애초에 러스티 네일의 정체를 밝히는 것 따위는 이 영화에선 없으니 저로써는 영화와 게임을 할 그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셈이죠.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조금 당황스럽더군요. 다른 공포 영화에 비해 무섭지도 않을뿐더러,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것 따위에도 이 영화는 관심이 없으니...
결국 루이스 일행이 이 위험한 장난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즐기라는 것인데...
뭐 그거라면 이 영화는 일단 성공적입니다.
헐리우드의 신예인 폴 워커와 릴리 소비에스키는 매력적이었고, 이 영화의 트러블 메이커인 스티브 잔은 충분히 짜증이 날 정도로 미웠으니까요.
그가 CB라디오따위만 사지 않았더라도... 아니 애초에 루이스에게 장난을 강요하지만 않았더라도... 아니 장난후에 러스티 네일에게 사과만 했더라도...
풀러는 루이스의 기대에 찬 여행을 악몽으로 만드는 것이 모잘랐는지 루이스의 여자친구인 베나를 꼬시기까지 합니다. 뭐 저런 뻔뻔스러운 놈이 다있는지...
영화가 진행되며 루이스와 감정이입이 된 저는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러스티 네일보다는 풀러가 더 밉더라고요. 저걸... 형만 아니었어도... 어휴~~~ ^^;
일단 캐릭터에 집중을 하고나니 이 영화의 상황이 꽤 재미있게 받아들여 지더군요.
암튼 이 영화는 소문과는 달리 제게 극한 공포감도 주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도 주지 못했습니다.
단지 루이스 일행의 캐릭터가 다른 공포 영화들에 비해 생생하게 그려져서 캐릭터를 즐기는 것만은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특히 러스티 네일이라는 정체불명의 트럭운전사를 조금더 공포스럽게 그렸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냥 영화보고 난 소감은 '거참! 장난한번 거창하게 하네.' 정도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