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신세기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

쭈니-1 2009. 12. 9. 12:41

 



감독 : 안노 히데야키

일본 영화가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그 때문에 우리는 세계적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못했으며 이번 깐느 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뱀장어] 역시 보지 못할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리나라 관객들이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은 일본의 걸작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메라고 불리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사실 미국의 디즈니보다도 내용적인 면에서 한수 위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TV로 보아왔던 만화영화들([기동전사 건담]이나 [은하철도 999], [아톰]에서부터 최근 [달의 요정 세일러 문]까지)은 사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으며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아니메에 중독된 유년시절을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일본과 같이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어린 아이의 유치한 전유물’이라고 치부해버린 국내 인식의 결과이며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개발하기보다는 일본의 것을 수입하여 주인공 이름만 바꾸는 얄팍한 상술이 가져다준 비극이다.
얼마전 갑작스레 우리나라에도 애니메이션의 바람이 불어 서울 애니 엑스포 영화제등 세계 각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은 질과 양적인 면에서 떨어졌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에만 관객이 몰려 영화제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사건마저 벌어져 씁쓸하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은 이제 그 어느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내가 이번에 소개하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사실은 장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본에서 95년 10월부터 96년 3월까지 TV에서 방영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TV용 애니메이션이다.(그래서 평점을 매기지 않았다.)그러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어 완결편은 극장에서 개봉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에반게리온 신드룸’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상당한 팬을 보유하여 일본에서 극장 개봉당시 현해탄을 건너서 보고 온 열성 팬까지 존재할 지경이다. 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영화 잡지에서 처음 발견하여 국내에 어린이용 비디오로 10편중 8편이 출시되었을 당시 호기심에 접했다가 ‘에바 팬’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완결편을 오랫동안 기다려 완결 2편을 드디어 비디오로 본 후 ‘에반게리온 신드룸’을 이해하게 됐으며, 어린이가 아닌 20대까지 포용하는 아니메의 위력이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 우리는 [신세기 에반게리온]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줄 모르면서 아니메에 열광하는 ‘아니메 팬’들을 욕해야 하는가? 우리가 한가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불법복제 만화나 비디오 테잎을 구하면서까지 아니메에 빠져있는 ‘아니메 팬’들을 욕하기보다는 스스로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을 욕하고 더 늦기전에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이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 아니메가 최근 가지고 있는 경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14세의 미소년 미소녀가 등장하고 정의의 로봇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괴물체를 쳐부수는 SF 아니메의 형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상의 모습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놀랍게도 주인공들의 심리상태 표현에 적극적이며 모든 것이 비밀에 쌓여 구체적인 스토리 파악이 어렵기까지 하다.
서기 2000년 세컨드 임팩트라는 남극에서의 거대한 파국이 발생되어 지구 인류의 반이 없어졌다. 그후 15년. 지구는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도로부터 지구를 지키기위해 신지를 비롯한 14세 소년, 소녀들이 거대한 생체병기 에반게리온에 탑승하여 사도와 맞서 싸운다. 여기까진 그저 어린이용 SF 만화의 단순한 구조인 듯 보인다. 그러나 좀더 스토리를 깊숙이 파고들어가 보면 ‘에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신지는 용감무쌍한 영웅이 아닌 나약하고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며 사도의 정체도, 에반게리온의 정체도 수수께끼이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에바’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풀리기는커녕 증폭될 뿐이며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는 점점 불안해진다. 누가 악인인지조차 구별이 어렵다. 이것이 ‘에바’의 매력이다. 마치 심리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상세한 심리묘사와 미스터리 속에 빠져 관객을 붙잡는다. TV시리즈 26화에 해당되는 방대한 내용을 설명하기 힘드니 우선 캐릭터들 속에 그려진 심리 상태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이카리 신지 :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에바 1호기의 조종사이며 NERV사령관인 이카리 켄도우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켄도우를 증오하며 어려워한다.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며 내성적인 성격의 신지는 전형적인 외디푸스적 증상을 보인다. 그가 에바를 타고 사도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이유는 남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무관심속에 성장한 탓에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관심과 타인의 사랑이 그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아야나미 레이 : 에바 0호기의 전속 조종사. 과거나 성장과정은 일체 비밀로 되어 있는 의문의 소녀이다. 감정 따위는 없는 듯 보이며 켄도우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한다.
소류 아스카 랑글레 : 에바 2호기의 전속 조종사. 14세로 독일 대학을 졸업할 정도의 천재 소녀이나 엘리트 의식이 강하고 신지에게 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실험도중 정신이상자가 되어 버리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녀는 남에게 인정받기위해 에바를 조종한다.
물론 이들뿐만이 아니다. 신지, 아스카와 함께 생활하는 NERV의 작전 부장 카츠라기 미사토는 명랑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지만 세컨드 임팩트때 아버지를 잃고 남극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NERV의 비밀을 캐기 위해 적극적이다. NERV의 컴퓨터 마기 시스템의 책임자인 리츠코는 마기 시스템의 창조자인 어머니가 켄도우를 사랑하는 나머지 자살하자 켄도우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켄도우에 의해 배신당한다. ‘에바’의 가장 의문스러운 인물인 사령관 켄도우는 냉정하고 침착하며 비열하기까지 하지만 죽은 아내를 살리기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심리 상태는 그 어떤 영화의 캐릭터보다 정교하고 복잡하며 무조건적인 악과 선으로 그렸던 다른 작품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에바’의 매력은 캐릭터의 정교함뿐만 아니다. 스토리의 미스터리 속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이다. 세컨드 임팩트가 일어난 실제 이유라던가, 사도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레이의 정체는 신지 어머니의 불완전한 클론이었으며, 비밀장소 속에 레이의 대체 카피가 대량으로 준비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진다.
NERV와 제레의 인류보완계획은 사도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이 아닌 불완전한 인류를 서로 보완하여 완전한 인류로 진화시키려는 음모였고, 켄도우에게 인류보완계획은 죽은 아내를 살리는 것이다.
이밖에도 어마어마한 미스터리가 ‘에바’속에 숨어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 2작품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에바’는 안노 히데야키가 그린 세기말 인류의 초상화이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에바’에 열광할 것이며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국내 작품이 아닌 일본 작품이라는 것이 진정 안타까울 따름이다.

1997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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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결국 에바까지 왔네요.
사실 이 글을 올릴것인지 말것인지 무척이나 고민했답니다.
하지만 에바는 1997년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화중 하나이기에 이렇게 두서없이 써놓은 글을 부끄럽지만 올립니다. ^^
당시 저는 에바의 열성팬으로 지금도 에바의 기사와 스틸, 엽서로 이루어진 클레어 파일을 한권 가지고 있답니다.
에바의 기사가 나온 잡지라면 아무리 비싸도 사서 스크랩을 했을 정도이니 당시 제가 얼마나 에바에 빠져 있었는지 느껴지는 군요.
저는 특히 에바의 캐릭터중 레이를 좋아합니다. (마지막 스틸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
이 글을 보니 그때가 그립네요. ^^
 2006/02/27   
영원..
제 친구가.. '에반게리온'에 미쳐있습니다. 사실 저는.. 에반게리온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아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폭주 장면.. [첫번째 폭주와 두번째 폭주, 개인적으로 S기관으로 사도를 섭취하는 두번째 폭주가 마음에 듭니다. 이 폭주가 후에 KOF(킹오브파이터)라는 게임에서 '야가미 라이토'의 폭주 필살기의 모티브가 되었죠.]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언제 한번 봐야겠네요. 절대.. 올해 말고.. 다음해에..
[개인적으로 스쿨럼블이나 원피스 같은 류를 좋아합니다.]
[뭐 이것저것 가리지는 않지만요. 하하;]
 2006/02/28   
쭈니 사실 저는 일본 애니는 만화책으로 더 즐기는 편이죠.
하지만 에바만은 특별히 예외... ^^
에바의 극장판도 보고 싶지만 다운로드 받은걸로 보고 싶지는 않아서 꾹 참고 있답니다.
아마 언젠가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탄다면 갑자기 에바 DVD세트를 샀다고 자랑할지도...
그나저나 아직 나오지도 않은 인센티브가지고 사고 싶은게 너무 많네요. ^^;
 2006/02/28   
조광만
예전에 오타쿠라 불릴정도로 일본 애니에 빠진적이 있었습니다.

에반게리온은.. 그 시절.. 제가 한글판, 일본판, 극장판, 무삭제판 등등.. 다양한 버젼으로 수십번 감상했을 정도의 재미를 준 작품이었죠.^^
 2006/03/18   
쭈니 오호~ 제가 번데기앞에서 주름잡았군요. ^^  2006/03/19   
농농
와앗 에바군요 에바군요 ㅠㅜㅠㅠㅠ!!!! 이거 한창 떴을때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지만 현재 상당히 좋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아스카가 너무 좋아요!  2006/07/16   
까르
'잔혹한 천사의 태제' 말이 필요없는 명작이죠 저도 친구가 하얀테잎 주길래 XXX비디오인줄 알고 틀어봤는데 정말 충격적인 애니였죠 로봇이라는게 기계적이고 오락실 조이스틱처럼 제어를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싱크로올이라는걸 상상해낸 저 감독은 정말 대단하죠 뭐 하도 좋아라 해서 이상형이 아야나미레이 였었다는...  2006/08/16   
쭈니 농농님과 까르님도 에바팬이시군요.
순수하게 에바 좋아하고 에바 엽서모으겠다며 용돈모았던 그때가 그립네요. ^^
 2006/10/07   
엘잠
에바... 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는 아니메 라서^^

일단 세계관부터 즐;;; 이라고 하면 너무 무성의하고...

범작은 아니지만 폼잡는만큼의 대작도 사실 아니지요. 안노히데아키가 사실 너무 '있어보이는 척'을 했던 애니라서....

사실 안노자신이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타쿠들덕분에 가이낙스 역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아니메가 되어버렸습죠.

그와중에 TV판 25,26화는 정말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01/29   
쭈니 사실 아니메에 대해선 거의 모른답니다.
아마도 에바가 최초로 좋아했던 아니메였던 셈이죠.
 2007/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