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쁘아종(Poison) ★★★1/2

쭈니-1 2009. 12. 9. 12:30

 

 



감독 : 박재호
주연 : 박신양, 이수아, 이경영

유난히도 우리 영화계에서 독립영화 작가의 활동이 활발했던 96년, 우리는 박재호라는 새로운 영화감독을 발견하였다. 그의 두번째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은 한국 영화 최초로 게이문제를 다룬 영화로 꽤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내며 비평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 박재호 감독에게도 제도권 영화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박재호 감독은 도시적 섹스 드라마 [쁘아종]을 선택하였다.
[쁘아종]은 박재호 감독의 회심적 작품이다. 만약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는 충무로의 중요감독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흥행 전략은 왕가위식 도시적 분위기와 야한 장면들이다.
박재호 감독은 영화의 도시적 분위기 완성을 위해 캐릭터의 절묘함을 선택하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정일(박신양)은 도심의 빌딩 옥탑에 살면서 도시의 답답함속에 외로움과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녹음기이며 정직함을 추구하고 두들겨맞는 것에 익숙하다. 여주인공 서린(이수아)은 술취한 남자를 등쳐먹는 꽃뱀이다. 그녀는 외로움때문에 냉장고문을 열고 잠이들지만 모진 생활속에서도 눈물만큼은 흘리지 않는다. 악역인 영수(이경영)는 형사이다. 니체를 신봉하며 마약을 탐닉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주인공 캐릭터속에는 뒤틀림과 도시적 분위기가 있다. 악역이 형사라는 설정도 그렇고 꽃뱀을 오히려 순수하게 그린 의도도 그렇다.
게다가 감독은 세명의 주인공에게 가족에의 단절이라는 똑같은 상황을 제시, 관객에게 동정을 얻어내려한다. 정일의 아버지는 일본에 취업되어 출국했지만 돌아오지 않고, 서린은 어머니에게 극장에서 버려졌다. 영수의 어머니는 창녀였고 어머니의 죽음뒤 영수는 어머니를 닮은 여자 서린에게 집착을 보낸다. 그들은 모두 고아인 것이다.
그러나 박재호 감독이 창출한 캐릭터에는 약점이 있다. 정일의 경우 너무 비정상적으로 착하다. 손님에게 매맞고, 깡패에게 두들겨맞고, 영수에게도 맞는다. 영화 초반 관객은 매맞는 정일의 모습만 보게된다. 그러나 동정하기는 커녕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박신양의 어리숙한 연기는 그 한심함에 정도를 넘어서 버린다. 악역인 영수는 어떠한가. 그가 소련 군복을 입고 오직 서린과 정일을 죽이겠다는 일념아래 추적하는 후반부의 모습은 넌센스이다. 예상대로 그는 서린을 인질로 잡고 정일과의 사투끝에 죽는다. 이 얼마나 황당한 결말인가? 박재호 감독이 추구한 캐릭터의 잘묘함은 이렇게 그 스스로 함정에 빠져버린다.
박재호 감독의 두번째 전략인 섹스씬은 괜찮았다. 그는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섹스씬을 위해선 신인 배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정성경처럼...) 그래서 탄생한 배우가 958:1의 경쟁률속에 선발된 이수아이다. 그녀는 영화배우로서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연기를 해냈다. 영화의 선전문구 전면엔 이수아의 섹스씬을 전면에 부각시켰으며 박재호 감독은 그것을 철저히 이용했다.
이렇게해서 [쁘아종]은 두가지 흥행 전략중에 하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그러나 차라리 캐릭터의 절묘함이 성공하고 섹스씬이 실패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캐릭터의 부실함 덕분에 영화의 스토리는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라스트는 황당하기만 하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난후 남는거라고는 이수아의 야릇한 몸매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건진 유일한 수확이라고는 제 2의 정성경이라 할 정도의 이수아의 발굴 뿐이다.

1997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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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이 영화를 볼땐 이수아가 이 영화의 유일한 수확이며, 박신양은 한심함의 정도를 벗어난 짜증나는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뒤돌아보니 이수아는 조용히 사라져버렸고(수아로 개명하고 요즘도 몇몇 영화에 등장하는 것같긴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무명입니다.) 박신양은 [편지], [약속]을 거치며 초특급 스타로 발돋음했죠.
정말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나저나 박재호 감독은 [썸머타임]이라는 최악의 영화를 한편 더 남기고 이젠 완전히 사라진듯이 보입니다. 어쩌다가 그렇게되었는지...
 200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