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의석
주연 : 김민종, 진희경, 장동건, 최진실, 이경영
1988년 왕가위 감독이 [열혈남아]를 내놓았을때 국내 홍콩 영화팬들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했었다. 1991년 왕가위 감독이 홍콩의 스타 시스템으로 [아비정전]을 내놓았을때 국내 영화팬들은 상영 극장앞에서 시위마저 벌였었다. '이건 영화도 아니니 극장 요금을 환불하라'라고. 이 웃지못할 사건이 있은지 채 몇년이 지나지않아 한국 영화팬들은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로 이어지는 왕가위의 신작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홍콩 영화가 국내에서 인기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시기에 벌어진 일이기에 모두들 갑작스러운 '왕가위 신드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토리보다는 영상미와 고독의 이미지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왕가위의 영화들은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여기 '왕가위 신드룸'에 심각하게 빠진 인물이 있다. 바로 김의석 감독이다. 그의 데뷔작 [결혼 이야기]는 세련된 영상과 빠른 스토리 전개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새장을 연 걸작으로 판정받았었다. 두번째 연출작 [그 여자 그 남자]역시 톡톡 튀는 대사와 영상으로 관객을 사로잡았었다. 비록 세번째 영화 [총잡이]는 박중훈이라는 스타를 기용한 실망스러운 코미디였으나 암튼 김의석 감독은 신세데 감독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갑작스럽게 왕가위의 영화들을 그대로 모방한 [홀리데이 인 서울]을 내놓아 관객과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았다. 김의석 감독은 '우리도 왕가위처럼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핑계를 대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핑계일뿐. 특히 [홀리데이 인 서울]의 문제점은 스토리의 짜임새와 영상미등 모든 점에서 왕가위의 영화들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두가지 사랑 이야기로 나뉜다. 벨보이(김민종)와 다리모델(진희경)의 사랑과 택시드라이버(장동건)와 전화교환수(최진실)의 사랑. 이 두가지 사랑이야기는 다른 공간에 존재하며 다른 한편으론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많이 본뜬듯한 설정인데 왕가위 감독은 [중경삼림]에서 두가지 사랑을 감각적이면서 논리정연하게 표현하여 관객들을 사로잡았었다. 그렇다면 [홀리데이 인 서울]은 어떠한가?
먼저 벨보이와 다리모델의 사랑을 살펴보자. 벨보이는 남자친구와 정기적으로 같은 방에 묵으며 사랑을 나누는 다리모델을 몰래 짝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다리모델의 남자친구는 소매치기였고 도주도중 차에 치어 죽는다. 애인이 죽게되자 다리모델은 홀로 호텔을 찾게되고 벨보이는 그녀와 짧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다리모델은 호텔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벨보이 덕분에 살게되지만 멀리 떠나버린다.
이 평범한 사랑 이야기속에서 관객이 느끼는 것은 '억지'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중 애인이 다리모델에게 이상한 물건을 건네주고 그 때문에 그녀는 괴한에게 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 장면은 아무 설명없이 사라진다. 그 물건은 무엇이며 그 괴한은 누구인지 설명도 없이 말이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자살도 웃기고 벨보이의 이유없는 사랑도 납득이 안된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더 심하다. 목적지를 말하지않고 택시를 탄 전화교환수와 목적지를 묻지않고 무작정 떠난 택시드라이버. 이 이상한 만남은 정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캐릭터는 전화교환수이다. 퇴폐적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유부남(이경영)을 사랑하는 순수함을 가진 여인. 관객들은 그녀의 방황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족이 없으며 홀로이다. 그렇기에 외로워하며 사랑을 얻기위해 방황한다. 김의석 감독은 이러한 설명으로 이상한 캐릭터들을 이해하라고 강요한다.
이렇듯 캐릭터들은 이해안되는것 투성이며 스토리는 지루하고 조잡하다. 분위는 어느정도 왕가위를 따라갈려고 노력했으나 김의석 감독은 결코 왕가위가 아니었다.
1997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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