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엘 슈마허
주연 : 마이클 더글라스, 로버트 듀발, 바바라 허쉬
지금으로부터 3년전 '한국인 비하 묘사'논란에 휘말려 국내 상영이 죄절되었던 영화 [폴링다운]. 그러나 영화 관계자들은 '[폴링다운]이 특정 인종을 비난한 영화가 아니며 단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샐러리맨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과정에서 유감스럽게 한국인이 끼어있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1997년 [폴링다운]은 결국 국내에 상영되었다.
[폴링다운]의 감독은 조엘 슈마허이다. 이 영화가 그의 최고 걸작판정을 받긴 했으나 감독이 조엘 슈마허인 이상 솔직히 난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는 91년 [사랑을 위하여]라는 밋밋한 멜로 영화를 만들었으며 95년엔 [배트맨 포에버]로 팀 버튼의 우울한 블럭버스터 시리즈물을 철저하게 전형적인 헐리우드판 오락 영화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최근작 [타임 투 킬]에선 존 그리샴 원작의 영화도 형편없을 수 있음을 증명해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헐리우드 감독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헐리우드 감독인 조엘 슈마허가 그린 중산층의 분노란 어떤 것일까?
이 영화는 6월의 어느날 교통체증속에 갇혀버린 한 남자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카메라는 그 남자의 얼굴위에 맺힌 땀방울을 클로즈업시켜 보이기도하고 더위속에서 남자를 괴롭히는 파리와 주위의 짜증나는 소음을 들려주기도 함으로써 남자가 느끼고 있는 짜증을 관객에게도 전이시킨다. 감독의 이러한 시도는 관객에게 잘 먹혀들어갔다. 디펜스(마이클 더글라스)라 불리우는 그 남자는 결국 차에서 뛰쳐나와 믿기지 못할 모험을 하게 되며 관객은 오프닝 장면의 짜증덕분에 디펜스의 모험에 빨려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었던 장면은 디펜스가 동전을 바꾸기위해 들어간 슈퍼마켓 장면이다. 하필 그곳의 주인은 한국 사람으로 그는 물건을 사기전엔 동전을 바꿔줄수 없다고 대답한다. 디펜스는 '우리 나라가 너희 나라에게 해준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깟 동전하나 못바꿔주냐?'며 가게를 박살내고 야구 방망이와 동전 몇개만 가지고 나와버린다. 분명 같은 한국 사람으로써 모욕적인 장면이기는 하지만 일단 참아보기로 하자.
디펜스는 가게를 나온후 라틴계 갱들을 만나게되고 우연찮게 총이 가득든 가방을 얻게된다. 그는 '난 집에 가는 것 뿐이다. 내 갈길을 막지 않는다면 아무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분노는 불친절한 패스트푸드점, 나찌 주의자, 돈많고 할일없는 노인, 어마어마한 저택을 가진 성형외과 의사등에게로 옮겨진다.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며 디펜스(본명은 월리엄 포스터이다.)가 처한 상황을 알게된다. 그는 방위 산업체에서 근무했었다. 미사일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그는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퇴직당한다. 사랑하는 아내와는 이혼했으며 법원에선 어린 딸마저 못만나게한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술을 먹은적도 마약을 한적도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는 그에게 아내(바바라 허쉬)는 딸의 생일날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그는 지금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위해 가는 길이다. 그런데 모든 상황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단지 딸을 만나고 싶었던것 뿐인데 말이다. 이쯤되면 관객들은 디펜스의 미칠듯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가 행사하는 폭력에 어느정도 쾌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캐릭터는 프렌더개스트(로버트 듀발) 형사이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때문에 퇴직을 하루남긴 그 역시 오프닝 장면에서의 그 짜증속에 갇혀있었다. 디펜스가 차문을 박차고 나온 반면 그는 유유히 앉아 지긋지긋한 교통 체증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디펜스의 존재를 눈치챘으며 침착하게 그를 뒤쫓고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로버트 듀발은 오랜만에 적역을 맡은듯 폭력만이 가득찰듯한 이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여유롭게 순화시켜주었다. 디펜스와 프렌더개스트의 교차와 교감속에 영화는 균형을 잡고 있었으며 관객들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동화시키고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난 조엘 슈마허 감독을 다시보게 되었으며 그의 역량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1997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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