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리 타마호리
주연 : 닉 놀테, 채즈 팔민테리, 마이클 매드슨, 크리스 펜, 멜라니 그리피스, 제니퍼 코넬리
[전사의 후예]의 힘으로 헐리우드에 입성한 뉴질랜드 감독 리 타마호리. 그에 대한 헐리우드의 호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주연급 배우들이 기꺼이 조연으로 출연해주었으며 닉 놀테는 파시스트적인 군인에 맞서 싸워야 된다. 그러나 리 타마호리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 영화는 그저 재미있는 수사 액션 영화에 그치고 말았다. [전사의 후예]식의 문제 제기도 없이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LA경찰청 형사 맥스 후버(닉 놀테)이다. 5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중절모를 멋들어지게 눌러쓴 후버는 세명의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LA에서의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일념에 차있다. 후버팀의 방법은 범인을 잡아 검사에게 넘기는 식의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들은 범죄자를 잡아 머홀랜드라는 곳에가 즉결 처단을 내려버린다. 정의라는 이름아래 범을 어기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한 후버팀앞에 어마어마한 강적이 나타난다. 앨리슨 폰드(제니퍼 코넬리)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 사건의 적은 다름아닌 핵폭탄 실험의 책임자인 팀스 장군(존 말코비치). 사실 후버와 팀스는 어찌보면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후버는 범죄퇴치라는 신념아래 폭력을 휘둘렀으며 팀스 장군은 미국의 안보라는 신념아래 핵이라는 강력한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후버와 죽은 앨리슨의 정사 장면이 담은 비디오 테잎이 후버의 아내(멜라니 그리피스)에게 배달되고 분노한 후버는 팀스 장군과 앨리슨의 정사 장면이 찍힌 테잎을 가지고 위험한 싸움을 벌인다.
이 영화의 진행은 헐리우드 영화답게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어리숙한 시나리오 덕분에 여러곳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 그 첫번째가 후버가 사건에 뛰어드는 동기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후버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폭력과 살인쯤은 예사로 생각하는 그러 인물이다. 그러한 그가 왜 팀스 장군과의 전쟁을 선포했을까? 후버와 팀스 장군의 대화중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당신은 LA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으며 난 미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특권을 부여 받은 거지요.' 그것은 맞는 말이다. 후버는 지금까지 특권을 누리며 폭력과 살인을 자행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후버는 '앨리슨은 무고한 여자다'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파고든다. 자신이 죽인 자들의 무고한 가족은 생각지도 않고서 말이다.
후버가 사건에 뛰어든 두번째 이유는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자신이 한때 즐겼던 여자가 살해되고 그녀와 자신의 정사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잎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후버는 테잎을 찾기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그러나 너무 깊숙히 파고든 탓에 테잎은 경고용으로 후버의 아내에게 배달되고 아내는 후버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후버는 후반쯤 테잎을 보낸 장교가 '신문이나 방송사에 보내지는 않았다'라는 말에 '이제 아내가 보았으니 누가 보든 상관없다. 난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영화 어디에도 후버와 아내의 절실한 사랑이 담긴 장면은 없다. 그렇기에 이 대목은 설득력을 잃는다.
두번째 문제점은 리 타마호리 감독에게서 발견된다.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헐리우드의 스타들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리 타마호리 감독은 7명에 가까운 스타들을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켰으나 그가 실제로 이 영화에 적당히 활용한 배우는 닉 놀테 뿐이다. 닉 놀테의 동료인 채즈 팔민테리는 시종일관 바보같은 태도로 후버팀에 맞지않는다는 인상을 주더니 끝에 가선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영화의 라스트를 엉뚱하게 만든다. 마이클 매드슨과 크리스 펜은 그 연기 실력을 과시하기도 전에 어느 사이엔가 화면에서 사라져버린다. 멜라니 그리피스는 남편의 외도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역할을 맡았으며 제니퍼 코넬리는 야한 정사 장면만 남긴채 초반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존 말코비치가 맡은 팀스 장군은 파시스트적인 미국의 영웅적인 장군이 아닌 병에 걸린 허수아비 장군일 뿐이다. 이처럼 헐리우드의 스타들을 아무 생각없이 낭비한 감독은 아마 리 타마호리가 최초일 것이다.
이 영화의 세번째 문제점은 라스트이다. 핵실험을 통해 군인들은 암에 걸리고 장교들은 폭력과 살인을 자행한다. 단지 미국의 안보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안보는 국민을 위한 안보가 아닌 자신들을 위한 강박관념적인 안보이기에 그 문제가 크다. 영화는 초반에 분명 이러한 냉전 시대의 미국의 강박관념적인 안보 정신을 크게 두각시키며 문제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 타마호리 감독이 선택한 라스트는 쿨리지(채즈 팔민테리)의 우스꽝스러운 죽음과 장렬한 장례식이다. 그리고 후버의 팀은 해체되고 후버는 아내와의 화해에 성공하지 못한다. 미국의 안보 정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할거라면 차라리 헐리우드식 영화 공식에 따라야 했다.(헐리우드만큼 비극을 싫어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리 타마호리 감독은 주인공의 팀은 해체되고 아내와의 화해는 성공하지 못하고 동료는 죽는 결말을 택했다. 슬픈 멜로 영화가 아닌바에야 관객들은 주인공의 불행을 용서치 못한다. 그런데도 감독은 수사 액션물의 주인공을 불행속에 떨어뜨렸다. 헐리우드에 대한 반항인지 아니면 첫 헐리우드 입성으로 미처 헐리우드 공식을 깨닫지 못한 감독이 멍청한지 알 수 없다.
1997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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