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지상만가(地上滿歌) ★★★1/2

쭈니-1 2009. 12. 9. 11:28

 

 



감독 : 김희철
주연 : 신현준, 이병헌, 정선경

96년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며 흥행에도 대성공한 [은행나무침대]의 제작사 '영화발전소'. 젊은 기획집단인 그들이 내놓은 두번째 영화가 바로 [지상만가]이다. [은행나무침대]의 감독겸 각본을 맡았던 강제규가 각본을 썼으며 젊은 신인감독 김희철이 감독한 감각적 버디무비인 [지상만가]는 단언컨데 화려한 영상미와 젊음이 가득 담긴 영화이다. 특히 이 영화의 영상미는 많은 관객들을 탄성케했다.
그러나 영화는 영상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전개라던가 배우들의 연기등 일반 관객들은 잘 모르고 있는 세세한 것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그런면에서 [지상만가]는 실패작이다. 영상미와 음악은 멋있었으나 그외 관객이 느끼고 볼수있는 다른 면에선 완전 실패했다.
먼저 관객이 영화를 볼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스토리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할지라도 재미없으면 관객은 보지않고 그 재미를 충당시키는 것이 바로 스토리 전개이다. [지상만가]의 경우 세명의 젊은이가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살해하는 형. 그후 정신이상자가 된 형을 보살피며 살던 광수(신현준) 그러나 형은 자살하고 그 충격으로인해 술에 자기의 몸을 맡긴 광수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게된다. 이 영화에서 광수는 음악가로 설정되어있다. 그의 음악으로 인해 그는 다른 두명의 주인공 종만(이병헌), 세희(정선경)와 우정, 사랑을 쌓게된다. 종만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꿈꾸는 배우 지망생.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오면 헐리우드 영화사에 끊임없이 팩스를 보낸다. 그리고 광수와 로맨스를 쌓아나갈 세희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휴학생이다. 우연히 술에 취한 광수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를 사랑하게된 그녀는 끝까지 광수를 사랑하며 그의 곁에 머문다.
이 영화는 이렇듯 세명의 주인공이 이끌어나간다. 그러나 우습게도 김희철 감독은 세 주인공의 관계의 끈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 뿐아니라 너무나 많은 부분의 스토리를 거의 생략해 버린다.
우선 종만과 광수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광수는 술에 취해 종만이 일하는 호프집에 오게된다. 그때 경찰이 들이닥치고 광수는 끌려가고 종만은 광수가 남긴 가방속 악보를 발견, 그 음악의 천재성을 느낀다. 경찰에 겨우 도망쳐온 광수는 종만의 집에 찾아오고 그때부터 두사람의 우정은 시작된다.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줄거리속엔 너무나 많은 생략이 내포되어 있다. 광수가 쓰러져있을때 한 괴한이 그의 가방에 살해때 사용한 칼을 넣고 사라진다. 그렇다면 경찰은 어떻게 광수가 범인인줄 알았으며 그의 출처를 알아내 호프집을 덮쳤을까? 그리고 광수는 어떻게 종만이 자기의 가방을 가져간것을 알았으며 그의 집은 어떻게 찾아냈을까?
이제 광수와 세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광수는 술에취해 세희가 일하는 악기점에가고 피아노를 친후 사라진다. 그는 너무 만취되어 그 당시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극중 그가 직접 경찰한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경찰에게 도망친 광수가 피를 흘리며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세희가 일하는 악기점이다. 우연일까? 게다가 종만이 영화를 찍다 사고로 죽고 광수가 감옥에 가이자 세희는 광수에게 종만의 유언이 담긴 테잎을 가져간다. 언제 종만과 세희가 아는 사이였던가? 그리고 세희는 종만의 죽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뿐아니다. 스토리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살인사건 역시 의문이며 경찰이 어떻게 종만과 광수의 은신처를 찾아냈는지 어떻게 광수의 누명이 벗겨졌는지 (영화에선 동료가 자백을해 진범이 잡혔는데 그 동료는 왜 자백했을까?) 도무지 알수없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이다. 러닝타임을 2시간으로 느렸다면 이 수많은 생략들은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을텐데.
그외 이 영화의 특수효과에도 많은 약점이 드러난다. [은행나무침대]에서 성공적인 특수효과를 선보였던 '영화발전소'는 이 영화에서 오히려 특수효과 기술이 퇴보되지 않았나하는 의심을 받게 한다.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은 [포레스트 검프]에서 필름 합성을 통해 톰 행크스와 케네디 대통령의 조우를 시도 호평을 받았다. [지상만가] 역시 [포레스트 검프]에서 시도했던 특수효과를 이용 이병헌을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보냈고 별로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엉망은 아니었다. 그러나 종만이 고층빌딩에서 떨어지는 영화 촬영씬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뻔한 특수효과였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도 그리 좋지않았다. 영화 초반 시종일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신현준. [은행나무침대]에서 황장군으로 너무나 인상깊은 연기를 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를 펼쳐보였는데 결과적으로 판정패이다. 신현준의 술에 취한 연기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병헌 역시 마찬가지. TV드라마나 영화 데뷔작 [런 어웨이]에서 터프한 연기를 펼쳤던 그는 최근작 [그들만의 세상]에서 껄렁껄렁한 캐릭터를 연기하더니(그 영화에서도 별로였다.) [지상만가]에서도 헐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낙천적인 청년 종만을 연기했다. 그는 [마스크]의 짐 캐리를 따라해보기도하고 옥상에서 베드씬을 연기하는 연습을 하는등 이미지 변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의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을 보려면 아무래도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할것 같다.
우일한 여주인공 정선경도 매한가지. 데뷔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이후 계속 술집작부역을 했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 청순 그 자체인 세희라는 캐릭터를 맡았다. 그러나 정선경이 연기한 세희는 너무 60,70년대 여인 스타일이었고 90년대와는 잘 부합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미지를 변신하고 싶은 정선경의 과잉욕심때문이 아니었을까?
젊은 감독의 젊은 영화 [지상만가]는 이토록 수많은 고칠점을 남기고 끝나버렸지만 난 김희철 감독에게 희망을 걸고싶다. 그의 끝없이 아름다운 영상미를 체험했기에...

1997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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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장문의 글을 썼을 정도로 김희철 감독에게 희망을 걸었었는데 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영화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꽤 기대되던 감독이었는데... 쩝~  200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