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더 원>- 이연걸의 원맨쇼!!!

쭈니-1 2009. 12. 8. 14:05

 



감독 ; 제임스 윙
주연 : 이연걸, 칼라 구지노
개봉 : 2002년 1월 18일

예전, 회사가 신림동에 있을때에는 업무가 끝나고 모두 퇴근 후에도 혼자 남아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가곤 했죠. 그런데 성수동으로 회사가 이전한 후엔 도저히 퇴근 후에 남아서 영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환기가 잘 안되는 사무실의 구조 탓입니다. 창문이 없어 사무실의 환기가 잘 안되는데다가 요즘처럼 겨울인데도 겨울답지않은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온풍기를 죽어라고 켜는 꽉막힌 건물 관리 회사 탓에 저희 회사는 거의 한증막 수준입니다. 가끔씩 밖으로 나가 차가운 공기를 쐬지 않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대부분의 영화들이 회사의 컴퓨터에 저장된 관계로 전 큰 맘먹고 퇴근 후에 영화를 보고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컴퓨터에 앉아 <더 원>을 켜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때쯤...
"이게 무슨 영화야? 이 영화 재미있어?"
회사 동료의 질문들... 전 일때문에 야근을 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일일이 질문에 대답해주고 다시 컴퓨터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밥 먹었어?"
저녁도 굶어가며 영화를 보는 날 위해 저녁 식사를 챙겨주시는 새로오신 팀장님. 전 절 생각해주는 그 고마운 마음을 받아들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좀 하지."
아! 난 왜이리 인기가 좋아서 맘 놓고 영화 한편 볼 수가 없는 걸까? (-_-;) 밥도 얻어 먹었고해서 밥 값이나 하자는 생각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부터 터져나오는 곤란한 질문들...
"쭈니씨는 결혼안해? 여자친구없어? 연애는 해봤어?"
4개월전만해도 당당하게 "저 애인있어요. 곧 결혼할껍니다."로 간단히 막을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겨우 그녀를 잊어가는데 왜 내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찌르시는지. 물론 그 팀장님, 저희 회사에 들어오신지 며칠 되지 않아서 한 동안 회사를 떠들썩하게 했던 나의 실연담을 모르고 하신 질문이었지만 암튼 그 순간 그 팀장님이 무지 미웠습니다. 하지만 그 팀장님은 아직 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셨는지...
"결혼 빨리해요. 결혼하면 얼마나 좋은데..."
흑흑흑~ 염장지르는 것도 이 정도면 살인입니다. 제가 결혼이 좋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저도 무지 결혼하고 싶은 놈입니다. 예정대로였다면 올 봄 그녀와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젠 언제 또 결혼 상대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죠. 암튼 전 이 곤란한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팀장님... 일 안하세요?"
라고 물으며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왔습니다. 이제 맘놓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영화가 제대로 들어올리가 없죠. 잊은 줄 알았던 그녀 생각이 모락모락 떠올랐습니다. 정말 4개월전의 고비만 넘겼다면 지금쯤 결혼이야기를 하고 있을까하는 쓸데없는 미련들... 환기가 안되는 사무실의 탁한 공기와 더불어 저는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달아 올랐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생각을 하며 봐야하는 영화라면 그 분위기에서 절대 볼 수 없었을테지만 다행히도 제가 보려는 영화가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액션 영화인 <더 원>이었기에...

 

 


<더 원>... 정말 아무 생각없이 보기에 딱 좋은 영화입니다.
일단 스토리 자체가 단조롭습니다. 이 영화는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125개이며 그 각각의 우주엔 또다른 내가 살고있다. 그리고 그 또다른 날 모두 죽이면 우주의 절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에서 시작합니다. 절대자가 되기 위해 율라우는 123개의 우주를 돌며 또다른 자신을 죽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명만 죽이면 125개의 우주에서 그는 단 한명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남은 한명이 바로 LA경찰인 게이브입니다. 이제 율라우와 게이브의 전쟁이 시작되죠. 그리고 당연히 게이브는 율라우를 제압합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단조로운 스토리위에 이연걸의 액션과 헐리우드의 특수효과를 쏟아 붓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헐리우드의 SF영화치고는 특수효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죠. 이미 <매트릭스>에서 선보였던 그 정지된 액션 장면만이 간혹 선보일 뿐입니다. 그대신 영화는 이연걸의 시원시원한 액션에 기댑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죠.  
단조로운 스토리와 이연걸의 액션. 일단 이 정도면 부담없이 즐길만한 액션 영화로는 모든 것을 갖춘 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에 아이러니한 상황을 첨부시킵니다. 바로 게이브와 율라우 모두 죽어서는 안된다는 이 영화 특유의 상황이죠. 율라우에게 아내를 잃은 게이브는 율라우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는 못합니다. 율라우가 죽고나면 게이브가 바로 우주의 절대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영화는 정확히 제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시간 여행을 통해 죽었던 아내도 되살아나고, 율라우는 감옥 혹성으로 유배되고... 뭐 이정도면 휼륭한 결말이죠.
그래도 이 영화를 다 보고나니 복잡한 잡 생각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역시, 머리가 복잡할때는 이런 영화가 최고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