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잭슨 주연 : 엘리야 우드, 이안 맥켈렌, 비고 모르텐슨 개봉 : 2001년 12월 31일
2001년의 마지막날인 12월31일. 샌드위치데이라서 회사에서도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저는 어떻게하면 기억에 남을만한 2001년의 마무리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예전같으면 사랑하는 이와 종각에 나가 득실거리는 사람들틈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뿌듯해했을텐데... 이젠 솔로의 몸으로 혼자 썰렁하게 종각에 가는 것도 어색하고... 그래서 역시 영화로 2001년의 마무리를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없는 제게 있어서 영화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것 만큼 어울리는 것은 없을테니까요. 물론 같이 영화를 볼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주위사람들한테 영화보자며 조를수도 없고해서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서 혼자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죠. 문제는 어떤 영화를 볼것인가였습니다. 왠만한 영화는 다 보았고, 2001년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행사인 만큼 기억에 남을만한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은데... 그러다가 결국 찾아낸 것이 <반지의 제왕>입니다. 2002년 1월4일 개봉예정이었으나 개봉일을 1월1일로 앞당기고 일부 극장에서 12월 31일에 유료 전야제를 하더군요. 이건 정말로 '2001년의 마무리는 <반지의 제왕>으로 하거라.'하며 하늘이 제게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결심했죠. '그래! 이건 <반지의 제왕>을 보라는 하늘의 계시야!' ^^; 그때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제 친구들은 1년에 영화를 한편 볼까말까하는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녀석들이죠. 간혹 여자친구가 생겨서 여자친구가 영화 보자고 말하면 제게 전화를 해서 어떤 영화를 봐야하냐고 묻곤 한답니다. 물론 전 그러면 제가 아는 한 가장 재미없는 영화를 골라주곤 했죠. 암튼 전 아무 기대없이 친구녀석한테 물었습니다. "31일에 우리 영화나 보러갈래?" "어, 그래!" 앗! 이 녀석이 무슨 허무 개그하나? 이럴 녀석이 아닌데... 영화 볼 돈이 있으면 당구나 치자고 할 녀석인데... 암튼 이렇게해서 2001년 12월31일, 그 역사적인 순간에 저는 영화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칙칙한 친구녀석과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환타지 대작을 보게 된것입니다.
2001년의 마지막 날을 나와 함께 보내겐 된 영광의 극장(?)은 논현역의 뤼미에르극장이 뽑혔습니다. 사실 강북에 사는 저로써는 왠만하면 종로쪽으로 극장을 잡고 싶었지만 <반지의 제왕>의 예매표를 구할 수가 없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나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예매사이트에 등록된 서울 시내의 극장을 모두 뒤진 결과 뤼미에르 극장만이 <반지의 제왕>의 31일 예매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뤼미에르 극장에는 예매를 하지않은 이유가 있더군요. 전 제가 가 본 그 수많은 극장들 중에서 서울의 대지극장과 대전의 선사극장을 제치고 최악의 극장으로 등록될 극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너무나 작아서 마치 비디오방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스크린과 좁은 의자, 특히 의자가 일렬로 모두 붙어있어서 맨 끝 자리에 앉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던지... 음향시설은 또 얼마나 엉망이던지,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자기 맘대로 입니다. <반지의 제왕>같이 스케일이 큰 영화의 경우 대형 스크린에 빵빵한 음향시설을 갖춘 영화관에서 봐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게다가 3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상영시간동안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영화에 집중도 안되고 거의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관객들의 매너는 또 얼마나 엉망이던지... 영화 중간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은 왜그리 많은지... 핸드폰을 진동으로하지않아 영화 상영시간 내내 핸드폰은 울려대고, 뭐가 그리 바쁜지 큰소리로 핸드폰 통화하는 사람들도 있고, 영화가 조금 지루해지면 큰 소리로 '저게 뭐야!'라고 말하는 몰지각한 사람마저 있더군요. 제 옅에 앉은 여자는 코 감기에 걸렸는지 영화 상영내내 코를 풀더군요. 이거 원 더러워서... 이러한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반지의 제왕>은 무지 재미있었습니다. 친구녀석은 거의 졸음과 한판 대결을 하고 나온 모양이었지만 그건 이미 예상했던 일이고... 암튼 시간이 되면 제대로 된 큰 화면과 음향시설속에서 이 영화의 스케일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말입니다...
이제 <반지의 제왕>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군요. 솔직히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무지 단순하고 어찌보면 유치합니다. 이 영화엔 사우론이라는 악의 화신이 존재하며, 사우론의 부활을 막기위해 사우론이 만든 절대반지를 사우론의 은신처인 불의 산에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험은 프로도라는 젊은 호빗이 떠안게되고, 프로도의 친구인 샘, 메리, 피핀과 마법사 간달프, 요정인 레골라스와 난쟁이인 김리, 그리고 인간인 아라곤과 보르미르가 동참하게 됩니다. 정말 뻔한 내용이죠. 하지만 단순한 기본 줄거리에 비해 반지원정대의 기나긴 여정은 웅장하고, 스펙타클합니다. 그리고 감동적이죠. 그만큼 헐리우드의 기술의 힘과 원작의 웅장함을 감독인 피터 잭슨이 잘 버무렸다는 뜻이죠. 어떤 분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러더군요. 왜 저따위 반지때문에 저런 고생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긴 현실의 세계에선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분들한테 묻고 싶습니다. 현실의 세계에 맞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왜 하필 환타지 영화를 봤냐고말입니다. 환타지라는 장르자체가 인간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오는 해리 포터의 고모와 고모부같은 부류의 사람들한테는 현실적이지 못한 이 영화의 세계가 유치하게만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렸을적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또다른 차원의 세상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상상을 해왔던 저같은 부류의 사람들한테는 환타지야 말로 영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라는 사실을 인정하실 겁니다. 물론 현실적인 영화도 좋지만, 우리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세상을 특수효과를 통해 재현하는 환타지나 SF장르의 영화야말로 매력적이죠. 왜냐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올 겨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필두로 환타지 열풍이 영화계에 불어 닥쳤을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몇 달전 <던전 드래곤>이라는 환타지 영화를 보고 너무나도 심하게 실망했었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역시 기대 이하였죠. <던전 드래곤>의 경우 저예산 날치기 영화의 전형을 보여 주었었죠. 너무나도 뻔한 내용과 매력없는 캐릭터들, 그리고 어색한 특수효과, 환타지 열풍에 기대어 한 몫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다분한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 나온 제레미 아이언스가 너무 아깝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경우엔 너무 낮은 연령층의 영화였었죠. 별다른 긴장감도 없고, 원작과 너무 똑같아 새로운 느낌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원한것은 거대한 스펙타클과 웅장한 줄거리였었나 봅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은 그 모든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뉴질랜드에 세워진 웅장한 세트입니다. 정말 요정의 나라(원작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간계가 되겠군요.)가 있다면 저럴것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영화의 세트는 거의 완벽하죠. 물론 그것은 헐리우드 기술의 힘일 겁니다. 그리고 원작의 무대를 잘 재현한 피터 잭슨의 뛰어난 상상력도 한 몫 한 셈이죠. 피터 잭슨은 일단 영화의 웅장한 무대를 완성해놓고 요정의 세계에 걸맞는 배우들을 모읍니다. 여기에서도 피터 잭슨은 탁월한 선택을 하죠. 헐리우드의 그 수많은 스타들을 제치고 원작의 캐릭터에 가장 걸맞는 연기력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한겁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엘리야 우드, 이안 맥켈렌 등은 연기력은 인정을 받았지만 국제적인 스타라고 불리우기에는 약간 모자란 배우들입니다. 이 영화의 그 수많은 배우들 중에 국내에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요정 아웬역의 리브 타일러 뿐입니다. 아마 저라면 헐리우드의 그 수많은 스타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했을 겁니다. 얼굴만 반지르르한 배우가 아닌 진짜 연기력을 갖춘 이 영화의 배우들은 영화를 더욱 실감나게 합니다. 영화의 무대와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 그리고 여기에 피터 잭슨 감독은 원작의 힘을 빌어 중간계의 완벽한 캐릭터들을 완성합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적이며 모험을 싫어하는 호빗족, 긴 수염을 휘날리는 마법사, 작고 투박해보이는 난쟁이족, 그리고 아름다운 요정과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인간까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 다섯 종족은 그 독특한 개성만큼이나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영화를 코믹하게, 또는 긴장감을 놓칠수 없게 만듭니다. 특히 아라곤과 보로미르로 대표되는 인간족은 정의로움과 권력에 대한 욕심을 지닌 이중적인 존재로 그려짐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한층 살려냅니다. 물론 레골라스와 아웬으로 대표되는 요정족도 매력적이었죠. (제 옆에 앉은 여자분은 레골라스가 나올때마다 '너무 멋져!'라며 감탄사를 연발하더군요. 그러자 그 옆에 앉은 그녀의 남자친구는 '저게 뭐가 멋지냐? 계집애 같기만 하네'라며 딴지를 걸더군요. (짜슥들... 나도 한때는 그렇게 놀았었지... ^^;)
이제 영화의 무대와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 그리고 그 배우들에 의해 완벽한 캐릭터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스펙타클한 특수효과와 그 특수효과에 걸맞는 스토리 전개뿐이죠. 물론 이 부분에서도 역시 피터 잭슨의 역량이 맘껏 발휘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특수효과만 있고 영화의 내용은 없는 그런 이상한 영화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피터 잭슨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더군요. 영화가 진행됨에따라 그 놀라운 특수효과들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피터 잭슨은 원작의 그 방대한 분량을 효과적으로 시나리오화했으며 그 결과 환타지소설의 걸작이라는 <반지의 제왕>은 헐리우드의 기술력과 융합된 완벽한 환타지 영화로 재탄생된거죠. 이제 남은 것은 완벽한 영화에 걸맞는 완벽한 라스트뿐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3부작으로 제작이 되었기에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엔 라스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문에서 이 영화의 영화평을 보니 '단 한가지 아쉬운 것은 2편을 보기위해 1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더군요.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뜬금없는 결말에 어리둥절하셨지만 그 기다림이 큰만큼 만남의 기쁨도 크지 않을까요. 원작의 초판이 1954년에 발행되었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50여년을 기다려야 했겠군요. 그런데 1년을 못 기다리겠습니까???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도 미래를 바꿀수 있다.' 갈라드리엘이 프로도에게 해준 말입니다. 왠지 그말이 가슴에 와닿는 군요. 이제 1년 후 우리의 작은 영웅 프로도는 사우론에 맞서 더 큰 모험을 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겠죠? 현실에 얽매여 미래를 바꿀 용기가 없는 제게 프로도의 이러한 모험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합니다. 1년... 기다려야죠. ^^
P.S. : 물론 이 영화에서도 옥의 티는 있습니다. 그 첫번째 옥의 티는 프로도가 입고 나온 미쓰릴갑옷입니다. 깃털처럼 가볍지만 용의 비늘처럼 단단하다는 그 갑옷덕분에 프로도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건 갑옷이라기보다는 백양 메리야스 같았습니다. ^^; 두번째 옥의 티는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황금숲의 여왕 갈라드리엘입니다.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올수 없다는 갈라드리엘은 잠이 덜 깬듯 눈이 반쯤 감긴 상태에서 등장합니다. 아마도 신비하게 보이려는 시도였던것 같은 데 왜그리 웃기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