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킬러들의 수다>- 어눌한 킬러들의 신나는 살인이야기.

쭈니-1 2009. 12. 8. 14:07

 



감독 : 장진
주연 : 신현준, 신하균, 정재영, 원빈, 정진영
개봉 : 2001년 10월 12일

3개월전 그녀와의 마지막 날...
술먹고 전화해서 억지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저는 약속 장소에 나가며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녀와의 사랑이 끝이 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멋있게 그녀를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하면 그녀를 멋있게 보내주는 것일까?' 하루종일 그 생각밖에 하지 못했었죠. 그러나 막상 그녀와 만나고나니 전 생각했던 그 멋있는 말들을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낯설어보이는 그녀. 도저히 2년동안 제가 사랑했던 여자라는 사실이 믿겨지지않았죠. 우린 마치 처음 본 사이인 것 처럼 어색하게 마주앉아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그녀와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이없죠. 2년동안 죽도록 사랑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만 만나자고 한마디하곤 절 떠나려하는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기껏 하고 싶은 것이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라니... 하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전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킬러들의 수다>가 그렇게 재미있다며?"
"응. 그렇다고 하더라."
"...!"
그리고 전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녀와 수십편의 영화를 함께 봤건만... 2년동안 '영화보자.'라는 말을 수백번도 넘게 해봤건만... 그 순간에는 그 익숙한 말이 도저히 나의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기에...
왜 갑자기 그녀 이야기냐구요? 어느날 비디오 가게에 갔더니만 <킬러들의 수다>가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더군요. 그 순간 그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살며시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그 일이...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에 가서 <킬러들의 수다>를 빌리고 집에 편안하게 누워 영화를 보고 있자니 마치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의 무릎에 누워 비디오를 볼때면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했었는데... 에구~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나 봅니다. 벌써 그녀를 떠나보낸지 4개월이 다 되어 가건만... 그녀에 대한 흔적을 지우는 것이 이렇게 어렵네요. 뭐 어떻습니까. 이런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죠. ^^

 

 

 

<킬러들의 수다>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기억과는 정반대로 아주 유쾌한 영화입니다. 4명의 어눌한 킬러들이 나오고, 그들의 유쾌한 살인 이야기가 펼쳐 집니다. 좀 이상하죠? 킬러들이 어눌하고, 살인이 유쾌하다니... 하지만 이 영화를 보시면 그 이야기의 뜻이 무엇인지 금새 아실겁니다. ^^

 

 

 

 

<킬러들의 수다>를 보시기 전에 먼저 감독인 장진의 이력을 살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않다면 '이게 뭐야?'하며 장진 감독식의 썰렁한 개그에 황당해하실테니까요. 장진 감독은 연극계에서 먼저 이름을 떨친 사람입니다. <허탕>, <택시 드리벌> 등 그가 각본을 쓴 연극들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죠. (그의 연극을 본 적이 없기에 연극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 그러다가 1998년 <기막힌 사내들>이라는 기막힌 영화로 영화계에 데뷰합니다. 전 별 기대없이 <기막힌 사내들>을 봤다가 그만 너무 웃겨서 쓰러졌습니다. 그의 두번째 영화는 <간첩 리철진>으로 평단과 흥행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죠. 전 일단 그를 좋아합니다. 그의 썰렁한 유머도 좋고 특이한 영화 형식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그의 재능을 좋아합니다. 이 모든 것이 <킬러들의 수다>에 녹아 있습니다.

 

 

 

 

우선 '킬러'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죠. 홍콩 영화보면 멋있는 킬러들 무지 많이 나옵니다. 그들은 긴 바바리 코트를 휘날리고 우수에 찬 표정을 하며 너무나도 멋있게 사람을 죽입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홍콩산 킬러들은 그렇게 살인을 정당화시키며 관객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죠.  
그리고 이 영화엔 '수다'라는 단어도 나오는 군요. '수다'... 왠지 <처녀들의 저녁식사>같은 영화에나 어울릴 듯한 단어아닙니까? 그런데 우수에 찬 표정으로 고독하게 살인을 저질러야 할 킬러들에게 '수다'라니...
이 영화는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의 두 단어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장진 감독은 상식을 깨뜨리는 캐릭터와 이야기 진행으로 관객들의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리죠. 우선 이 영화의 캐릭터들을 보시죠. 팀의 리더 상연과 명사수 재영, 그리고 성질 더러운 정우와 컴퓨터의 천재이며 막내인 하연. 이 네명의 킬러들은 겉보기엔 상당히 멋지고 냉철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그들은 뉴스 앵커에 푹 빠져 어처구니없는 짝사랑을 하기도 하고, 살인의 대상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같이 춤만 추고 오기도 합니다. 누가봐도 함정인 임무는 의뢰자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뉴스 앵커라는 사실만으로 강행하기도 하죠. 도저히 우수에 찬 표정과 냉철한 성격의 킬러들과는 어눌리지 않는 그들은 그래도 프로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눌한 킬러들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 솔직히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쫓는 명석한 두뇌의 조검사가 등장하며 영화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흐릅니다. 상연과 조검사의 만남. 그러나 조검사는 상연을 체포하지 않고 어깨에 총만 쏩니다. 어깨의 총상을 치료하고 조검사를 찾아간 상연. 그는 자수하겠다고 소릴치지만 조검사는 그를 체포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난 너희들을 굶겨 죽일꺼야."
조검사는 킬러가 할 일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던 거죠. 하지만 상연은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거야."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네명의 저 어눌한 킬러들은 혹시 우리가 아닐까하는... 어떤 사람이 너무 미워 죽이고 싶은 경험은 누구나 있을겁니다. 전 그때마다 멋있게 그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하죠. 어쩌면 우리의 그러한 내면의 세계가 바로 이 어눌한 킬러들로 형상화 된것은 아닐지... 그렇기에 조검사도 그들을 잡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니까요. 누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세상...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요? 전 지금도 누굴 죽이는 상상을 합니다. 멋있게 한방의 총알로... 그게 누구냐구요? 그건 나만의 비밀. 킬러는 의뢰인의 비밀을 목숨처럼 지킨답니다.  

 

 


 

규허니

무플이 넘많아요,..ㅜㅜ 힘들게 쓰신 쭈니님을 위해서라도 이럼안돼죠.. 무플방지위원회에 동참할 회원님들을 어서 확보해야겠네요.ㅎㅎ 이영화 재미있게 봤었는데 각 캐릭터의 특징이 확연히 살아났었구.. 또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킬러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영화여서 신선했었던거 같아요..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장진영씨인가.. 검사역활로 나왔었는데 그분연기도 아주 좋았던거 같아요..  2007/01/04   

쭈니

무플방지위원회...
아주 맘에 듭니다. ^^
사실 이 영화는 잘 기억이 안나요.
단지 이 영화를 볼때이 상황이 기억납니다.
그땐 무지 외로웠었죠. ^^;
 200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