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무어 주연 : 오웬 윌슨, 진 해크먼 개봉 : 2002년 1월 18일
전 요즘 인터넷 중독증에 빠져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미처버릴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넷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채팅에 빠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빠져 있는 것은 제 홈페이지입니다. '누군가가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지는 않았을까?', ' 빨리 새로운 영화이야기를 써야할텐데...', 어떻게하면 멋있는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요즘 제 머리속을 가득채운 것들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일이 잘 알풀리거나 짜증이 날때 홈에 한번 들어가면 모든 스트레스가 쫙 풀립니다. 회사에서 인터넷이 안될때는 괜히 불안해서 다른 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되면 제일 먼저 제 홈의 방명록부터 살핍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방명록에 아무런 글도 남겨있지 않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글이 올라오면 왜그렇게 가슴이 설레이고 행복해지는지... 이거 중독맞죠? 1월 25일 단체로 스키장에 간다는 사장님의 발표가 있었을때 전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스키를 단한번도 타본적이 없기에 스키의 재미를 몰랐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스키장에 가면 인터넷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죠. 25일에 갔다가 26일에 오는 1박2일의 짧은 코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홈페이지를 새로 꾸미기위해 산 책들도 읽고 싶고, 그 책을 보며 당장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도 하고 싶었습니다. 빨리 영화를 봐서 새로운 영화이야기를 올리고도 싶었고요... 하지만 스키장에 가면 이 모든것들을 할 수가 없죠. 생각보다 재미있게 스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26일에도 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25일 술먹고 고스톱치느라 밤을 지새웠기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가 못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앞섰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 홈페이지에 들어간 저는 방명록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분의 글을 읽고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짧은 글이었지만 제 영화이야기가 정말 좋았다는 글이었죠. 그 순간 밀려오는 감동... 요즘 바빠서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기에 영화이야기를 한동안 쓸 수 없었던 것에 미안해하며 전 졸리움을 무릎쓰고 새로운 영화를 보았습니다. 물론 영화이야기를 쓰기위해서죠. 이렇게 어쩌다보니 영화를 보고 영화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영화이야기를 쓰기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 되었지만 암튼 전 오늘 행복합니다.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분의 짧은 그 글덕분에...
한동안 영화이야기를 못 쓴것을 반성하며 영화이야기를 쓰기위해 오늘 본 영화는 <에너미 라인스>입니다. 제가 워낙 전쟁영화를 싫어하기에 보는 것이 조금은 꺼려졌지만 영화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라면... ^^; <에너미 라인스>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쟁영화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그 지루하던 전쟁영화와는 틀립니다. <에너미 라인스>는 철저하게 오락성을 추구한 전쟁영화입니다.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존 무어감독은 보스니아에 정찰을 갔다가 미사일 세례를 받고 추락하여 목숨을 걸고 조국으로 돌아오기위해 사투를 벌이는 한 정찰병의 이야기를 가지고 마치 뮤직비디오를 찍듯이 빠른 편집과 쫓고 쫓기는 서바이벌 게임같은 재미로 버무립니다. 영화의 무대는 세계의 화약고인 보스니아이지만 이 영화는 보스니아 사태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한 병사의 영웅담을 그립니다. 물론 어느정도의 휴머니즘을 삽입하는 얍삽함도 갖춤으로써 완벽한 전쟁 오락 영화를 완성해내죠. 일단 <에너미 라인스>의 흥행전략은 헐리우드 특수효과를 앞세운 스펙타클한 영상입니다. 대규모 전투씬은 없지만 그와 버금가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이죠. 특히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미군이 인공위성으로 적지에 떨어진 버넷중위를 찾아내는 장면은 정말 섬찟합니다. 저 지구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하늘이 무서워지더군요. ^^ 하지만 헐리우드의 스펙타클한 영상에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있는 관객들에겐 <에너미 라인스>의 스펙타클은 어쩌면 너무 식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에너미 라인스>가 내세운 두번째 흥행전략은 미국인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휴머니즘입니다. 9.11 테러사태로 다른 폭력성 짙은 영화들이 개봉을 뒤로 미뤘지만 <에너미 라인스>는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버젓이 개봉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9.11테러 사태로 애국심에 고취된 미국인들을 잘 이용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나라이면서도 자국의 병사 한사람이라도 구하기위해 목숨을 거는 의리로 똘똘 뭉친 나라로 표현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버넷 중위는 또 어떻구요. 그는 적지에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적을 따돌리고, 마지막엔 자신의 뒤를 쫓는 보스니아의 냉혹한 킬러를 처리함으로써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립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주민 학살 테잎을 가져오는 짓도 서슴치않습니다. 미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신들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겠죠. 게다가 이 영화의 내용이 실화라고 하니... 하지만 미국내에서의 흥행만으로는 그 배를 채울 수 없기에 <에너미 라인스>는 당연히 미국밖에서의 흥행전략을 따로 마련합니다. 그것이 바로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게임같은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영화의 무대가 보스니아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거의 완벽한 액션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없이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라는 소리죠. 미국인 관객들에겐 애국심을 부추기는 전쟁영화로... 미국인이 아닌 관객들에겐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액션영화로... 이 정도면 <에너미 라인스>의 영악함에 두손 두발 다들 지경입니다. 암튼 대단한 인간들입니다. 헐리우드라는 나라에 사는 인간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