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주연 : 니콜 키드만 개봉일 : 2002년 1월 11일
12월15일, 대한극장이 개관을 앞두고 누전으로인한 화재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새로 개관하는 대한극장에서 <두사부일체>를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분명 대한극장에서 무언가 보상이 있을거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죠. ^^ 제 예상은 맞았습니다. 대한극장측에서는 화재사건으로인하여 예매를 취소한 관객들을 위하여 두 번에 걸친 시사회 초대권을 주겠다고 공지했습니다. 한편도 아니고, 두편이나... 그러나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사회에 초대한다면 초대권을 메일로 보내주던가, 어떠한 조치가 있어야 할텐데... 다급해진 저는 대한극장측에 메일도 보내보고, 전화도 해봤지만 첫 번째 시사회인 <비독>의 시사회가 예정되어 있던 26일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어떻게 잡은 공짜 시사회인데...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12월 26일. 저는 회사동료들과 무작정 대한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시사회권 안주면 그 앞에서 횡포라도 부릴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이 무식한 시사회 계획에 동참해준 사람들은, 남자중에서는 나와 영화를 제일 많이 본 사람인 안개비님과 그의 여자친구 진숙씨. (무지 예쁘고 참하더군요. 부러워라...) 프랑스 영화는 재미없다며 툴툴거리면서도 공짜라는 말에 따라온 시커먼스 이태경 과장, 그리고 서울여대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저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최희연씨, 이렇게 4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사건의 내막은 잘 모르는채 단지 제가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겠다는 소릴듣고 쫓아온 거죠. 전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아무런 확인도 없이 겁없이 회사 동료들을 한명도 아니고 네명이나 끌고 왔으니... 오후 7시에 대한극장에 도착, 대한극장 건물 4층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무작정 그들을 끌고 왔기에 저녁은 내가 사겠다고 공언했었죠. 베트남 쌀국수... 정말 느끼하더군요. 지난 봄에 홍콩에 여행갔을 때, 뒷골목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풍겨나오던 그 느끼한 냄새, 바로 그 냄새가 베트남 쌀국수에서 풍기더라고요. 게다가 가격은 또 얼마나 비싼지... 왠 쌀국수가 6000천원??? 암튼 느끼한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나서 느끼함을 달래기위해 콜라 한잔을 마시고 대한극장의 1층 로비에 가니 사람들이 줄서있었습니다. 시사회권을 받기위한 줄이었죠. 저도 줄을 섰습니다. 드디어 나의 차례... 하지만 대한극장측의 명단에는 어디에도 나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제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거죠. 제 뒤의 네명은 거의 절 죽이겠다는 표정으로 서있고... 대한극장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절 쳐다보고... 전 아주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명단에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냥 집에 돌아가야 하나요???" "아뇨... 그냥 시사회권 드릴께요. 몇분이시죠?" "다섯명이요!" "네?" 대한극장 직원의 난감한 표정... 하긴 두장도 아니고 다섯장이나 시사회 명단에도 없는 놈이 달라고하니 황당했겠죠. 그러나 그 직원은 나의 애절한 표정을 읽었는지 시사회권을 주겠다며 물었습니다. "어떤 영화를 보실거죠?" 사실 몇분전만 하더라도 <비독>을 보겠다는 생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사회권을 받기위해 줄을 서다가 시사회가 <비독>과 <디아더스>가 있으며 두편중의 한편을 선택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전 고민을 했죠. '<비독>을 볼 것인가? <디아더스>를 볼 것인가?' 하지만 '제라르 드 빠르디유를 볼 것인가? 니콜 키드만을 볼 것인가?' 라고 질문을 바꿔 생각해보니 답은 아주 간단히 나오더군요. <물랑루즈>에서 그 매혹적인 연기를 펼쳤던 니콜 키드만을 어찌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예쁜 여자에 약한 쭈니... ^^) 게다가 괜히 분위기만 잡으며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태경과장의 멍한 표정으로 내던진 한마디가 우리의 선택에 결정타를 남겼습니다. "<디아더스>가 전국을 강타했다는데요?" 암튼 우리는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비독>을 바로 배신하고 <디아더스> 시사회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아더스>는 심리 공포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안개비님은 이 영화를 <언브레이커블>에 비교했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브레이커블>보다는 <식스센스>에 가깝다는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부분이 그렇죠. 하지만 <디아더스>는 <식스센스>보다 더욱 어두침침하며, 공포의 대상을 쉽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왓 라이즈 비니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죠. 영화의 배경은 영국해안의 외딴 저택입니다. 그 저택의 안주인인 그레이스는 전쟁터에 나간 후 연락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빛알레르기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2명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독실한 기독교도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음침한 저택에 3명의 하인이 새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와 때를 맞춰 그레이스는 저택에 그들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예감을 느끼게 되죠.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가... 이 영화는 외딴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들속에서 진행됩니다. 영화의 규모가 점점 비대해지는 요즘, 좀 특이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는 바로 이러한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속에 있습니다. 햇빛을 보면 위험한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결코 저택을 벗어날 수 없는 그레이스. 그녀는 도망갈 수 없는 저택이라는 공간속에 갇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칠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합니다. 그레이스가 마을의 신부를 데리러가기 위해 저택을 나오는 장면은 바로 한정된 공간이 주는 공포를 표현한 명장면입니다. 한치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와 마치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기나긴 숲길. 안개속에서 길을 잃어 당황해하는 그레이스의 그 표정... 그레이스의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겠다며 그레이스 몰래 저택을 빠져나가려는 장면 역시 한정된 공간이 주는 공포를 잘 표현해낸 장면이죠. 결국 그들은 저택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되고, 바로 그러한 것은 관객들에게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겁니다. 한정된 등장인물 역시 이 영화의 공포 요소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인 그레이스와 빛알레르기가 있는 두 아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명의 하인. 이 영화는 이렇게 단출한 여섯명의 인물만 등장시킵니다. (물론 중반에 뜬금없이 전쟁터에서 연락이 끊겼던 그레이스의 남편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마지막 반전의 힌트를 위한 감독의 서비스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연히 관객들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기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세명의 하인들을 의심하게 됩니다.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세명의 하인들에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거죠.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함으로써 그레이스에 대한 비밀을 감추고, 그러한 감독의 의도에 속아넘어간 관객들은 마지막 반전에 놀라게 됩니다. 감독은 계속 그레이스에 대한 비밀을 그레이스의 아이들의 입을 통해 언급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한정된 인물속에서 하인들의 비밀에 집착하게되고, 이 한정된 공간속에서 의심스러운 세명의 하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레이스의처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공포심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한정된 공간과 인물속에서 공포을 유발시키며 서서히 비밀을 벗겨나가는 형식을 취합니다. 비밀이 한커플씩 벗겨질 때마다 마지막 반전은 더욱 감취지죠. 그것이 이 영화의 특이한 점입니다. 전 귀신나오는 영화 무지 무서워합니다. 단순한 살인마가 나오는 공포영화의 경우 솔직히 좀 뻔하죠. 지가 아무리 살인마라고 할지라도 그래봤자 인간인데 갑자기 튀어 나와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죠. 하지만 귀신은 틀립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이기에 예기치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절 깜짝 놀라게 하죠. 이 영화는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게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끝까지 그 공포의 존재를 가리면서 한정된 공간과 인물만으로 공포를 유발시키는 조금은 특이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더욱 무서웠습니다. 그 공포의 존재가 밝혀지는 라스트의 반전도 놀라웠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면을 가득채운 피나 엽기적인 장면없이도 영화가 충분히 무서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감독의 역량에 놀랐습니다. (알레... 암튼 그 감독이 <오픈 유어 아이즈>의 감독이었다더군요. 역시...) 제 옆에 앉아서 영화를 감상했던 최희연씨는 너무나 무서워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제가 무서운 영화아니라고 속여서 데리고 왔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이상한 것은 같이 영화를 봤던 남자들의 반응이 시원치않았던데 반에 여자들은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겁니다. 물론 저는 재미있었죠. 그럼 난 여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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