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론 셀튼
주연 : 케빈 코스트너, 르네 루소, 돈 존슨
드디어 케빈 코스트너가 돌아왔다. [워터월드]의 그 악몽과도 같았던 흥행참패뒤에 꼭꼭 숨어있던 그가 96년 썸머시즌에 돌아온 것이다.
80년대를 대표했던 영웅이 [람보]의 실베스타 스탤론과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츠네거라면 90년대를 대표한 영웅은 단연코 케빈 코스트너이다. 그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철인같은 80년대 영웅상을 과감히 깨버리고 인간미 넘치는 그야말로 우리의 아버지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언터처블]의 마피아를 뒤쫓는 검사역이라던가, [늑대와 춤을]의 인디언에 동화되어가던 군인, 그리고 [J.F.K.]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파고드는 검사, [퍼펙트월드]에서 완벽한 세상을 찾아떠나는 탈옥범등. 그는 맡았던 역활마다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에 보답하듯 아카데미 회원들은 89년 [꿈의 구장], 90년 [늑대와 춤을], 91년 [J.F.K.]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려주었으며 급기야는 그가 감독, 주연한 [늑대와 춤을]에 모든 영예를 갖다 바치기까지 했다.
무명배우에서 헐리우드의 대스타로 변신한 케빈 코스트너. 그의 무너지지 않을것 같은 아성은 95년 제작비 1500억원의 액션대작 [워터월드]와 함께 무너졌다. 감독이었던 절친한 친구 케빈 레이놀즈와의 불화, 그리고 [워터월드]의 흥행참패와 여배우들과 스캔들, 급기야는 아내와의 이혼등으로 이어진 그간의 케빈 코스트너의 행적은 관객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제 케빈 코스트너는 90년대의 인간적 영웅이 아닌 자기반성적인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앞에 서야했고 그 첫번째 영화가 [틴컵]이다.
[틴컵]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맡은 로이 맥보이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요즘의 케빈 코스트너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닮았다. 아마추어 골프계의 스타였으나 자신의 고집과 자만심 때문에 프로입문에서 탈락하고 지금은 텍사스의 구석진 마을에서 시골골프클럽의 레슨프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처지. 그의 앞에 옛라이벌 심슨(돈 존슨)의 애인이자 정신과 의사인 몰리(르네 루소)가 나타나고 로이는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기위해 다시 US오픈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마치 옛명성을 되찾기위해 96년 썸머시즌에 돌라온 케빈 코스트너처럼. 감독인 론 셀튼은 교묘하게 로이의 성격을 케빈 코스트너의 요즘 이미지에 맞추어 간다. 로이는 분명 실력이 있고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남에게 자신을 과시해야한다는 망상과 고집때문에 항상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선 쓴맛을 보았다. 골프시합에서도 안전한 플레이로도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수 있으나 턱없는 위험한 플레이로 자신을 과시하려다 프로입문에 탈락한 것이다. 마치 미니어처라는 안전한 제작방식을 거부하고 고집을 부려 거액의 제작비로 실제 물의 나라를 건설하며 완전한 흥행실패를 맛본 [워터월드]의 케빈 코스트너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제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US오픈경기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보자.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의 정석대로 흘러간다. 우리의 주인공인 로이는 초반에 심한 부진을 겪으며 관객을 초조하게 하고, 몰리는 이 영화의 악당인 심슨의 진짜 인간성을 느끼고 결국 로이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몰리의 사랑에 힘을 얻은 로이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반격을 벌인다. 여기까진 나도 할말없다. 왜냐하면 모든 스포츠 영화가 이런 식이고 [틴컵]은 이러한 스포츠 영화의 전통을 그대로 밟으며 그야말로 안전한 플레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로이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냥 안전한 플레이로도 우승을 거둘수 있는데 고집을 부려 공을 계속 호수속에 빠뜨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무려 11번이나. 케빈 코스트너의 고집이 되살아난걸까? 아니면 론 셀튼 감독의 반전이라는 트릭일까? 암튼 12번만에 골프공을 기적처럼 호수를 건너 구멍속에 들어가고, 골프장의 관객들은 환호하고, 몰리 역시 감격했다며 로이에게 안기지만 로이는 US오픈 경기에 우승을 놓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케빈 코스트너는 이 영화를 통해 '[워터월드]는 나의 실수였어'라고 담담히 말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그래도 난 내 고집대로 살아갈꺼야'라며 관객의 뒷통수를 쳤다. 이 영화에서 분명 케빈 코스트너는 멋있었지만 아무래도 그의 반성어린 재기는 다음 영화에서 기대해봐야 할것 같다.
1997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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