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작전명 발키리] - 역사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들을 향한 시선은 바뀌었다.

쭈니-1 2009. 12. 8. 23:07

 

 


감독 : 브라이언 싱어
주연 : 톰 크루즈, 빌 나이, 케네스 브래너
개봉 : 2009년 1월 22일
관람 : 2009년 1월 28일
등급 : 12세 이상

당신의 세뱃돈은 안전한가?

제가 어렸을 땐 설날만큼 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설날만큼은 달랐습니다. 부지런히 세배를 하러 다니면 큰돈은 아니었지만 한 달 용돈에 맞먹는 짭짤한 수입이 생겼기에 저는 평소엔 그토록 가기 싫었던 고모할머니 댁에도 마다하지 않고 설날만 되면 열심히 친척 집을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어린 제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이 있었으니 그것은 세뱃돈을 외상 처리하시던 삼촌들과 세뱃돈을 저금 명목으로 갈취하시던 어머니의 미소였습니다. 로봇 장난감에 유난히 집착이 강했던(요즘도 로봇 장난감을 보면 사고 싶어집니다.) 저로써는 비싼 로봇 장난감을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세뱃돈이 그렇게 사라질 때마다 소심한 마음에 항변도 못하고 혼자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었고 세뱃돈을 받기 보다는 줘야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제겐 웅이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넙죽넙죽 절을 잘하는 우리 웅이는 올해 설날에도 무려 20만원에 가까운 세뱃돈을 타냈습니다. 구피는 저희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저금한다는 명목으로 웅이의 세뱃돈을 가로챕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비록 웅이는 그런 구피에게 별다른 항변을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상당히 섭섭해 하고 있다는 것을...
공룡 장난감에 유난히 집착을 보이는 웅이를 데리고 공항 아마트에 갔습니다. 그래도 웅이가 열심히 세배해서 번 돈인데 수고했다는 의미로 공룡 장난감이라도 사줘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웅이가 사온 2만 원짜리 공룡 게임놀이를 보며 구피는 '자꾸 장난감을 사주면 웅이 교육에 좋지 않다.'며 큰 소리를 냅니다. 저 역시 '이 정도는 사줘도 된다.'며 구피에게 맞섰습니다. 미묘하게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 언제나 그랬듯이 구피는 제 약점인 '영화 같이 안 봐줄 거야.'를 선언했고, 이번엔 저도 '치사해서 너랑 같이 영화 안 봐.'로 맞섰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구피와 저는 [작전명 발키리]를 함께 봤으며 그렇게 웅이의 세뱃돈을 둘러싼 저희 신경전은 단 하루 만에 싱겁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내가 받은 세뱃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난 전쟁영화가 싫다.

명절 후유증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설날 연후 그 다음날, 구피와 저는 한 밤중에 [작전명 발키리]를 보러 갔습니다. 설날 연휴 동안 지겹도록 설거지를 한 구피는 쉬고 싶은데 영화 때문에 못 쉰다며 극장으로 가는 내내 투덜거립니다. 그녀는 '난 나치 나오는 영화가 제일 싫단 말이야.'라며 한숨을 쉽니다. 하지만 그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치 나오는 영화'보다는 '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 영화',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전쟁영화'를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전명 발키리]를 보려고 했던 이유는 이 영화는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스릴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한 흑백논리와 과도한 영웅주의 때문입니다. 전 전쟁에서 나쁜 쪽과 좋은 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악인을 될 수 있어도 아무 것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나와 총알받이가 되는 군인들은 결코 악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전쟁의 피해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상대 군인들을 모두 악인으로 설정하고 적군을 누가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에 따라서 영웅으로 칭송합니다. 전 그것이 싫습니다.
그 중 최악은 2차 세계대전 영화인데 나치의 만행이 너무 잔악무도하여 독일군은 무조건 악당, 유대인과 연합군은 영웅으로 단순하게 분리됩니다. 사실 히틀러에 속아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대부분의 독일군들 역시 피해자이지만 이들 영화는 그런 시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전명 발키리]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독일군에 관한 영화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에 맞선 이들은 유대인과 연합군뿐만 아니라 독일의 군인들도 있다라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사실들이 영화로 그려집니다.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은 없습니다. 단지 아직도 히틀러에 속아서 진실의 눈을 뜨지 못한 이들과 진실의 눈을 뜬 이들의 치밀한 두뇌싸움만이 벌어질 뿐입니다. 그러한 것이 바로 전쟁영화, 특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작전명 발키리]에는 개봉 전부터 호감을 가졌던 이유입니다.


 

독일에는 히틀러의 만행에 맞섰던 이들도 엄연히 존재했다.


톰 크루즈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작전명 발키리]는 톰 크루즈의 영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전투로 한쪽 손과 눈, 그리고 두 개의 손가락을 잃은 클라우스 본 스타우펜버그 대령을 연기한 톰 크루즈는 별다른 감정의 기복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그러한 그를 보는 제 마음은 심장이 콩닥콩닥 뜁니다.
히틀러 암살은 물론이고, 히틀러의 군대를 역이용하여 비밀경찰들을 반역의 주모자로 처치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 스타우펜버그는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깁니다. 발각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안전마저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 하지만 스타우펜버그의 결단엔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는 내부의 암살이 아닌 전쟁에 패한 후 스스로 자결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관객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긴장됩니다. 그것은 [유주얼 서스펙트]로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줬던 브리이언 싱어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엔 오랜 연기 경력에서 품어져 나오는 톰 크루즈의 카리스마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확신에 찬 얼굴은 실패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발키리 작전이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제게 안겨줬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작전 실행에 머뭇거리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히틀러 암살에 단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그의 강인한 모습은 전쟁에서 무고한 적군을 수십, 수 백명 죽이고 영웅으로 등극하는 다른 전쟁영화의 값싼 영웅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신념이 느껴졌습니다. 왜 그가 할리우드 A급 배우인지 느끼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흙먼지를 뒤집어 써도 그의 카리스마는 결코 죽지 않는다.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스타우펜버그의 치밀한 계획은 아주 미세한 돌발 상황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맙니다.(설마 이걸로 스포일러가 되진 않겠죠?) 이로써 숨 가쁘게 돌아가던 발키리 작전은 종료되고 스타우펜버그 일행은 제압당합니다. 결말은 알고 있었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던 이야기는 그렇게 안타까운 비극으로 끝을 맺은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톰 크루즈의 카리스마가 빛을 잃음과 동시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합니다. 주인공이며 절대악 히틀러를 암살하려했던 영웅 스타우펜버그의 최후를 좀 더 멋있고 비장하게 치장할 수 있었지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치밀한 긴장감으로 2시간을 끌어왔던 영화가 너무 허무하게 끝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발키리 작전은 실패했고, 스타우펜버그 역시 실패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작전이 성공했다면 독일의 역사는 바뀌었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독일은 패전국이 되었고 소련군이 진주한 동독과 서방 연합군이 진주한 서독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었습니다. 그들의 분단은 1990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허무한 결말로 스타우펜버그의 실패한 계획을 대변합니다. 그들의 예정된 실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비극이었기에 스타우펜버그의 죽음은 영웅적이기 보다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허무한 상황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오며 구피는 '나치 나오는 영화는 싫지만 이 영화는 재밌다'라며 호감을 나타냈습니다. 직장동료들에게 추천하겠다는 것을 보며 어지간히 이 영화가 맘에 들었나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결코 역사는 바뀌지 않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춰진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는 [작전명 발키리]같은 영화들이 있기에 지나간 역사를 향한 제 시선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인정해주리라.

실제 스타우펜버그와 톰 크루즈.
스타우펜버그의 유족들은 톰 크루즈의 키가 너무 작다며 혹평했다지만 난 그의 카리스마가 만족스러웠다.


IP Address : 211.227.13.109 

이빨요정
역시 이 영화가 올라왔군요.
발키리.
완벽한 스릴러 오락물 이었습니다.
톰 크루즈 영화는 열성적인 팬이라서 항상 극장에서보지만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이후로 제 취향과는 멀어지고 있어서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괜히 영웅주의나 감상주의로 가지않고 냉정하면서도 치밀하게 암살과정을 보여준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들중에서 가장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때문에 적벽대전 2편의 재미가 많이 반감되었죠.
같이 봤던 관객들의 반응도 매우 좋더군요.
솔직히 이 정도면 설연휴 극장용 영화로써 극장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 저도 새뱃돈 많이 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줘야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답니다....
 2009/01/30   
쭈니 역시 이빨요정님의 댓글이 가장 먼저 올라왔군요. ^^
네, 완벽한 스릴러 오락물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저 역시 영웅주의나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은 점이 상당히 맘에 들었는데요... 영화를 보고 집에 오면서 만약 그들의 작전이 성공했다면...이라는 여운이 짙게 남더군요.
 2009/01/30   
액션영화광
저도 쭈니님과 같은 이유로 전쟁영화를 싫어합니다...
그냥 잔인해서 싫어 하는 이유도 있고, 아군과 적군을 확실히 내며 영웅으로 칭송받는 주인공도 저는 아군,적군 다름할것없이 모두 피해자인데...
하지만 {발키리]는 곳곳에 긴장되는 요소와 배우들의 내공있는 연기 그리고 음악까지..
저는 긴장되는 음악땜에 [본 시리즈]와 [다크나이트]와 [발키리]를 더욱이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쭈니님이 올려주신 사진에 있는 7명과 다른 반나치주의자들을 모두 존경하고 싶어진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비장미가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저도 시골에서 세뱃돈을 받았습니다.(10만원정도..... 제가 이제 중3올라가는데 많이 받은건지 적게 받은건지...) 제가 이 돈을 영화보는 거로 쓰면 안되는지 물어 봤더니 영화 보게되면 말하라고 하시면서 가져 가셨네요. ㅠㅠ
주시겠죠? 제발...
 2009/01/30   
쭈니 안주실겁니다. 포기하세요. ^^;  2009/01/30   
이빨요정
개인적으로 저는 전쟁영화를 좋아합니다.
선과 악으로 나누거나 영웅주의를 부각시키는 것들은 별로 않좋아하지만 전쟁영화만큼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을 부각시킬수 있는 장르도 없거든요.
디어헌터, 플래툰, 풀 메탈 쟈켓 등등 명작 영화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전쟁영화는 "지옥의 묵시록" 입니다.
정말 지옥을 만들어낸 영화죠.
정말 전쟁을 하면 않되는구나 라고 강력하게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2009/01/30   
쭈니 저도 [플래톤]과 [지옥의 묵시록]은 재미있게본 기억이 나네요. ^^
이빨요정님 말씀대로 전쟁영화만큼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을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장르도 없죠.
하지만 그런 의도보다는 전쟁을 통한 영웅주의 부각을 노린 영화가 더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싫어하는 영화들은 바로 그런 영화들이죠. ^^
 2009/01/31   
우드
극장에서 정말 가슴졸이며 본 영화인데 마지막에 슈타펜버그 대령이 총살 당할때는 가슴이 텅 빈 것 처럼 공허했어요. 저때 정말 성공했으면 역사는 어떻게 됬을까. 라는 생각도 무지막지하게 몰려들고...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면서 아 재밌었어... 라고 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 XX 재미 없었어" 라고 해서 놀란 기억이..  2009/03/01   
쭈니 저도 그런 기억이 많습니다.
'아! 재미있었어'라고 일어서는데 주변에선 '뭐야, 너무 재미없다'라고 하던...
비단 주변 뿐만 아니라 함께 영화를 보는 구피와도 그렇게 상반된 반응을 얻은 경우도 많습니다. ^^
 2009/03/02   
김실장
어둠의 경로를 통해 개봉하자마자 받아놓은 화질 완전 구린 캠버젼
자막이 없어 2달넘게 기다리다가 얼마전 화질 완전 좋은놈으로 다시 다운
자막도 완벽함..^^ 완전 기대하고 본영화입니다...발키리 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영화 오 긴장감도 있고 스릴도 있고 잼있네 그런데 뒤에서 같이보던 친구놈
머지 머지 영화 머 이따구야...ㅋㅋㅋ
한참 설명했어요... 이해를 못하는듯 영화보는 중간중간 머가 어떻게 돌아가느거야
수없이 질문함...머 각자 취향이 다르니까 이해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즐겁게 보았습니다...
 2009/03/20   
쭈니 저와 구피도 재미있게 봤답니다.
특히 구피는 '우와~'하며 톰 크루즈의 카리스마를 연신 칭찬하더군요.
요즘 톰 크루즈가 미국내에서 구설수에 올라 이 영화도 만족할만한 흥행실적은 못올린듯 하지만 그래도 그는 대배우이긴 배우인가봅니다. ^^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