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버그
주연 : 윌 스미스, 샤를리즈 테론, 제이슨 베이트맨
개봉 : 2008년 7월 2일
관람 : 2008년 7월 10일
등급 : 12세 이상
[핸콕]은 사랑을 싣고...
일주일간의 벼락치기 공부로 인하여 신경이 최대한으로 날카로워진 저는 그만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구피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 성질 하는 우리의 구피가 제 짜증을 받아줄리가 만무했죠. 결국 구피의 맞짜증이 작렬하며 사소한 신경전은 장기화되고 거의 일주일동안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유치한 기선제압 게임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구피와 저의 싸움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서로의 사과가 없더라도 워낙 사소한 것으로 시작된 싸움이기에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쉽사리 잊혀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단, 무언가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개 그러한 화해의 매개체는 영화입니다.
이번엔 [핸콕]이었습니다. [핸콕]이 보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먼저 [핸콕]보러 가자고 구피에게 말하기 싫었던 저는 은근슬쩍 구피에게 목요일에 [핸콕]보러 갈테니 팡팡데이(10일, 20일, 30일)에 영화 할인 팍팍 되는 네 카드로 [핸콕]을 예매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제 의도를 파악한 구피는 '그런다고 내가 너랑 [핸콕]같이 보러갈 줄 알고?'라며 콧방귀를 치더군요. 저 역시 지지 않고 '누가 너랑 같이 보고 싶대? 나 혼자 볼 꺼야. 하지만 기왕 예매할거 할인 많이 되는 카드로 예매하는 게 훨씬 좋잖아. 어차피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이니까.'라며 궁색한 변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날, 제 메일로 [핸콕] 예매 확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예매 개수는 단 한 장. 아직 화해하기엔 이른가 싶어서 포기했는데 몇 시간 후에 예매 취소 메일이 도착하더니만 제 핸드폰 문자메세지로 [핸콕]이 두 장 예매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라 오더군요. 이로써 구피와 저의 일주일간 유치한 신경전은 [핸콕]으로 인하여 마무리가 되었답니다.
구피와 쭈니의 유치한 신경전이 끝이 났음을 선언합니다.
영웅은 외롭다.
[핸콕]은 슈퍼 히어로 영화입니다. 그런데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액션 활극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핸콕]은 영웅 핸콕(윌 스미스)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는 남과는 틀린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언제나 혼자이고, 보통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귀찮아도 사람들을 위해 악당들을 잡아주지만 사람들은 이 영웅의 행위에 고마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비난합니다. 핸콕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여느 슈퍼 히어로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핸콕]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슈퍼 히어로의 영웅담이라면 올 여름 개봉할 영화의 리스트만 봐도 여름 내내 지겹도록 스크린 속에 펼쳐질 전망입니다.(물론 저는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을 테지만...) 그런데 [핸콕]은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와의 차별화를 선언합니다. 그것은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들보다 유쾌하면서도 악당과의 싸움보다는 영웅의 자아찾기를 전면으로 내세워 코믹스 영웅물의 특징인 영웅들의 개인적인 고뇌를 좀 더 구체화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핸콕이라는 영웅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과거에 대해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혼자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며 까칠한 영웅 놀음을 펼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악당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천성은 착한 놈인 것이 분명한데, 그의 삐뚤어진 심성은 보통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문을 쉽사리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즉, 소통의 부재에 빠진 불량 영웅이라는 특이한 케이스죠.
물론 [핸콕]은 그러한 특이한 영웅을 전통적인 슈퍼 히어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합니다. PR 전문가 레이(제이슨 베이트먼)와 그의 아내 메리(샤를리즈 테른)와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특이한 영웅을 보통의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 솔직히 조금은 다른 존재로써의 [핸콕]에 대해서 기대했던 저로써는 그러한 작업에 전적으로 찬성할 수는 없었지만 까칠한 영웅이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영화의 초중반에만 걸친 슈퍼 히어로의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핸콕]은 분명 영화적인 재미와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와의 차별성을 획득하였습니다.
외로운 영웅의 아스팔트 파헤치기 놀이!
2편에선 악당다운 악당이 나올 수 있을까?
하지만 [핸콕]이 다른 슈퍼 히어로 영웅들과의 차별화를 선언함으로써 포기해야 했던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당의 존재입니다. 만약 배트맨에게 조커가 없었다면? 만약 슈퍼맨에게 렉스가 없었다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할 것입니다. 그만큼 슈퍼 히어로에겐 그와 맞설 강력한 악당의 존재가 필수요건입니다. 그런데 핸콕에겐 그와 맞서 싸울 강력한 악당이 없습니다. 물론 핸콕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레드라는 은행털이범이 있었지만 그는 보통 인간으로서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핸콕에겐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영화 [핸콕]의 단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핸콕이라는 특이한 영웅의 탄생담을 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영웅의 활약담을 포기해야만 했으며, 그로인하여 필연적으로 악당다운 악당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연 관객들이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영웅들의 고뇌가 좋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웅의 고뇌만 있다면 그 영화는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슈퍼 히어로 영화는 당연히 오락 영화이니만큼 영화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악당이 없는 [핸콕]은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비교해서 액션에 의한 쾌감이 부족했고, 최강의 적과의 혈투로 인한 긴장감이 부족했습니다. 종합해보면 특이하긴 했지만 영화적 재미는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들에 비해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앞으로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1편을 핸콕이 진정한 영웅 되기에 초점에 맞추고, 2편부터 본격적인 핸콕의 활약상을 그려낼 것이라면 전 충분히 시리즈로써의 [핸콕]을 적극 지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편의 영화로만 끝을 낸다면 특이한 영웅을 보기위한 대가로 이 영화의 1억 5천만 달러라는 제작비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에도 악당은 없네. 어디 악당다운 악당 없슈?
1편보다 2편이 기대되는...
[핸콕]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1편보다 2편이 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1편이 까칠한 영웅으로써의 핸콕의 탄생비화라면 2편부터는 핸콕의 본격적인 영웅담이 펼쳐질 모든 조건이 완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속편이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핸콕]은 [점퍼]와 더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될 것입니다.
과연 핸콕과 맞설 강력한 악당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핸콕과 메리의 슬픈 인연은 1편에서 끝이 날까요? 메리는 레이의 평범한 아내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핸콕보다 메리가 더욱 매력적이었기에 전 개인적으로 2편에서 핸콕과 메리의 콤비 플레이가 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구피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악당이 없는 슈퍼 히어로라니... 확실히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은 영화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 아마도 속편 증후군에 빠진 듯...
영화에 대한 한 가지 일화...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와 메리로 출연한 여배우가 샤를리즈 테른과 닮았다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샤를리즈 테른과 닮은 것이 아니라 정말 샤를리즈 테른이더군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데 얼굴을 몰라보다니... [이온 플럭스]같은 사이비 슈퍼 히어로는 그만두고 앞으로 [핸콕]과 함께 악당들을 쳐 부셔주길... ^^
너무나 예쁜 메리... 레이에겐 아깝다.
아저씨... 내년에도 올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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