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루이스 레테리에
주연 : 에드워드 노튼, 리브 타일러, 팀 로스, 윌리엄 허트
개봉 : 2008년 6월 12일
관람 : 2008년 6월 21일
등급 : 15세 이상
[헐크] VS [인크레더블 헐크]
2003년 6월 20일 미국에서 [헐크]가 개봉하였습니다. 마블 코믹스의 오래된 영웅이며, TV시리즈로도 더욱 유명한 이 블록버스터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등 작품성 높은 영화로 명성을 드높인 이 안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헐크]는 개봉 첫 주 6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헐크]가 개봉 첫 주 제친 영화는 픽사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와 1편의 대성공의 후광을 업고 만들어진 [패스트 앤 퓨리어스 2]였습니다.
하지만 [헐크]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주차엔 1천8백만 달러로 전주에 비해 무려 69.7%의 수익률이 감소하며 2위에 그쳤고, 그 뒤로도 수익률이 뚝뚝 떨어지며 최종 스코어가 1억3천만 달러, 전세계 적으로 2억4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쳤습니다.
2008년 6월 13일 미국에서 [인크레더블 헐크]가 개봉하였습니다. 전편의 이 안 감독과는 달리 이번엔 [더 독], [트랜스포터 엑스트림]과 같은 프랑스식 저예산 액션 영화를 만들었던 루이스 레테리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개봉 첫 주 [인크레더블 헐크]는 5천5백만 달러의 성적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5년 전 개봉했던 [헐크]보다도 뒤떨어지는 성적입니다.
하지만 반전은 2주차부터 일어났습니다. [헐크]가 70%에 육박하는 수익 하락률을 기록하며 1천 8백만 달러를 기록한데 그친데 반에 [인크레더블 헐크]는 2천2백만 달러라는 성적으로 전편을 뛰어 넘었고, 개봉 3주차에 이미 1억1천5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벌써 전편의 전체 성적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흥행성적은 1억7천 9백만 달러로 이 영화가 아직 개봉한지 몇 주 되지 않았음을 상기한다면 5년 전 기록한 [헐크]의 흥행 기록이 깨지는 것은 떼 논 당상입니다.
브루스 배너... 무엇이 달라졌나?
[인크레더블 헐크]는 참 이상한 속편입니다. 대부분의 속편이 전편을 이어 받는 것에 비해서 [인크레더블 헐크]는 오히려 전편과의 단절로 시작합니다. 감독이 바뀌는 것은 속편 영화에서 일반적인 변화이지만 주인공이 바뀐 것부터 시작하여 전편의 스토리 라인을 이어 받지도 않았으며, 캐릭터에서도 일정부분 손을 대어 5년 전 만들어진 [헐크]와는 태생부터가 다른 영화임을 스스로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노력 한 가운데에는 에드워드 노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솔직히 헐크 역이 에릭 바나에서 에드워드 노튼으로 바뀐 것은 제게는 상당히 의외입니다. 당시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에릭 바나는 이후 [트로이], [뮌헨], [황금 나침반]을 거치며 할리우드의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에릭 바나는 브루스 배너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부합하는 배우입니다.
그런데 굳이 [인크레더블 헐크]는 에드워드 노튼으로 주인공을 교체합니다. 외모부터가 전혀 브루스 배너답지 않은 에드워드 노튼은 연기력은 인정받은 배우이지만 흥행성이 있는 배우는 아니었기에 이미 [트로이] 등으로 흥행성을 인정받은 에릭 바나에 비해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한 선택을 감행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헐크]와의 단절을 통해서 실패한 블록버스터인 [헐크]의 잔해를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깨끗이 지워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확실히 에드워드 노튼은 잘해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브루스 배너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그는 나약한 외모로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시킵니다. 헐크로 변신 전 브루스 배너가 관객의 동정을 받아야하는 캐릭터임을 상기한다면 건장했던 에릭 바나에 비해 비실비실해 보이는 에드워드 노튼이 더 안성맞춤이었던 셈이죠.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은 선과 악이 교묘하게 공존하는 [프라이멀 피어]의 애런 역이었습니다. 왠지 브루스 배너와 헐크의 공존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시작부터 달려라.
이렇게 주인공을 교체함으로써 전편과의 단절을 선언한 [인크레더블 헐크]는 영화의 전개방식에서도 전편과는 전혀 달리진 면모를 과시합니다.
[헐크]는 지루할 정도로 브루스 배너의 불우했던 과거를 집착합니다. 그러한 브루스 배너의 과거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영화 자체를 상당히 지루하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브루스 배너의 과거보다는 화가 나면 헐크로 변신하는 브루스 배너의 활약상을 더 보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5년 전 [헐크]에 실망하신 분이라면 [인크레더블 헐크]는 5년 전의 실망감을 확실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처음부터 달립니다. 브루스 배너의 과거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브루스 배너가 어떻게 헐크가 되었는지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단 몇 십초 만에 모두 설명해버립니다. 그야말로 [인크레더블 헐크]는 브루스 배너의 활약상 이외엔 그 무엇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그렇기에 [헐크]에서 중요하게 처리된 베티 로스와의 사랑도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그저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헐크]에서 베티 역을 맡은 제니퍼 코넬리가 영화에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서있던 것에 반에 [인크레더블 헐크]의 리브 타일러는 전형적인 영웅의 여자 친구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편이 군대와 헐크의 대결로 단순함을 보여준 것에 반에 [인크레더블 헐크]는 전쟁광 에밀 블론스키(팀 로스)가 스스로 엄청난 괴물이 되어 브루스 배너와 기가 막힌 대결을 벌입니다. [헐크]가 변변한 악당 한명 거느리고 있지 못한 것에 반에 [인크레더블 헐크]는 코믹스 영웅에게 걸맞은 막강한 악당을 주인공에게 배정해준 셈입니다.
이젠 아이언 맨 VS 헐크인 건가?
하지만 [인크레더블 헐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뜻밖의 인물이 베티의 아버지이자 군 장성인 썬더볼트(월리엄 허트)를 찾아옵니다. 바로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입니다. 그만의 특유의 능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제 최첨단 무기의 시대라며 썬더볼트를 비웃는 그는 헐크와 아이언 맨의 팀 결성을 제의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최첨단 무기를 가진 아이언 맨과 생화학 무기로 인하여 괴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헐크의 조합을... 그리고 연기파 배우인 에드워드 노튼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협연을... 이건 마치 슈퍼맨과 배트맨의 조합과 같으며, 스파이더맨과 원더우먼이 사귀는 것과 같은 코믹스 영화의 팬으로써는 대단한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물론 그러한 프로젝트가 성사될런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인크레더블 헐크]는 영화가 끝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관객에게 훌륭한 떡밥을 안겨주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본연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냈습니다.
이 안 감독의 [헐크]와 [인크레더블 헐크]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헐크]는 서양에서 동양적인 감수성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던 이 안 감독에 의해서 가장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지 못한 블록버스터가 된데 반에 [인크레더블 헐크]는 유럽에서 할리우드식 감수성으로 영화를 만들던 젊은 감독에 의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헐크]를 보며 이 영화가 시리즈 영화로 만들기엔 흥행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아쉬웠는데 [인크레더블 헐크]를 보니 내년에 또 만날 것 같아 반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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