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앤드류 아담스
주연 : 벤 반스, 조지 헨리, 스캔다 킨즈, 윌리엄 모슬리, 안나 포플웰
개봉 : 2008년 5월 15일
관람 : 2008년 5월 21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두 번째 나니아로의 여행.
2005년 12월 31일 당시 네티즌들에게 열렬한 호평을 받으며 의외의 흥행 신화를 이루어가고 있던 [왕의 남자]를 제치고 제가 고른 영화는 바로 '너무 유치한 애들 판타지'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당시는 2003년 12월 대단원의 막을 내린 [반지의 제왕]에 대한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인상이 가슴 깊이 남아 있었기에, 저는 원작만으로는 [반지의 제왕]과 필적할만한 판타지 대작이라는 [나니아 연대기]가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영화일 것이라 지레 짐작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웅장함도, 긴장감도 부족했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다른 네티즌의 평처럼 그냥 평범한 애들 판타지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판타지 영화가 [반지의 제왕]과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반지의 제왕]다운 재미가 있는 것이고, [해리 포터]는 [해리 포터]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나니아 연대기] 역시 [나니아 연대기] 특유의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니아 연대기] 특유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바로 [나니아 연대기]의 두 번째 영화인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를 기대했기에 제대로 영화 자체의 재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면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는 다른 무모한 기대감보다는 [나니아 연대기] 그 자체의 재미에 중점을 두고 볼 수 있었던 것이죠.
1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1년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의 왕자]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후 1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백색 마녀로부터 나니아를 구한 페벤시 남매들은 나니아를 뒤로 하고 다시 현실의 세계에 돌아옵니다. 하지만 나니아에서 용감한 영웅이었던 그들이 현실의 세계에서 잘 적응하는 것은 힘이 들었습니다. 첫째인 피터(윌리엄 모슬리)는 나니아에서의 영웅적인 모험을 그리워하며 현실에선 못 말리는 싸움꾼이 되어 있었고, 둘째인 수잔(안나 포플웰)은 현실의 세계에선 왕따였습니다. 그나마 셋째인 에드먼드(스캔다 킨즈)와 막내인 루시(조지 헨리)는 나니아에서의 모험으로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들은 나니아에서의 모험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영화는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현실에선 단 1년의 시간만이 흘렀지만 나니아의 세계에선 1,3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상황에서 나니아는 황금기의 종말을 고하고 텔마린족에게 점령되어 무자비한 미라즈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되돌리려합니다.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의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백색마녀와 미라즈라는 상대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비슷하지만 4남매는 1년 전의 모험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1년 전 그들은 두려워했지만 이번엔 그들은 자신만만해합니다. 자기 자신들이 이번에도 나니아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감은 뼈아픈 패배가 되어 돌아옵니다.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의 왕자]는 시리즈 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1편에서부터 이어진 상황의 연관성을 토대로 캐릭터들을 조금씩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1년 만에 여행을 펼치는 동안 페벤시 남매들은 다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원시세계와 문명세계의 전쟁
그렇다면 과연 나니아를 새로운 위기로 내몬 텔마린족은 어떤 종족일까요? 재미있게도 환상의 세계 나니아에서 온갖 말하는 동물들과 특이한 모습을 한 신화 속의 캐릭터에 익숙한 저로써는 온전하게 인간의 모습을 한 텔마린족은 나니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텔마린족은 페벤시의 남매들처럼 우연히 현실의 세계에서 나니아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인간들로써 페벤시 남매들이 나니아족을 도와 그들을 위기에서 구한 것과는 달리 텔마린족은 나니아족을 몰살하고 나니아에 인간의 왕국을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이런 나니아족과 텔마린족의 전쟁은 마치 원시와 문명의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원시적인 무기로 무장을 한 나니아족과는 달리, 투석기등 나름 문명적인 무기를 갖춘 텔마린족. 여기에 2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현실의 세계에서 대량 살상무기로 무장한 현실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문명이라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대비가 되는 것은 어린 아이들과 성인의 대결입니다. 순수한 눈으로 자기와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융합을 이루는 페벤시 남매들과 자기와 다른 모습을 하였다고 해서 야만족이라 치부하고 그들을 몰아내고 자기 자신들만의 왕국을 지르려했던 텔마린족. 이러한 대결 구도는 미라즈왕과 피터의 1대1 대결이라는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성인이라는 것이 어린 아이들보다 많이 알고, 더욱 지혜가 많은 것만은 아니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영화는 판타지 세계의 모험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그리고 이번엔 햄릿?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의 왕자]에는 페벤시 남매들 외에도 새로운 인간 캐릭터가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영화의 부제이기도한 캐스피언(벤 반스)입니다. 구피도 반하게 만든 반듯한 외모를 지닌 캐스피언은 텔마린족의 왕자이지만 왕위를 노리는 삼촌 미라즈의 음모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쯤에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햄릿]이 떠오릅니다. 미라즈는 자신의 형을 죽이고 왕좌를 강탈합니다. 이에 캐스피언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텔마린족의 적인 나니아족과 손을 잡게 합니다. [햄릿]을 고스란히 따른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선 [햄릿]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성경을 연상시킨다고 들었는데(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전 잘 모르겠지만...)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가 [햄릿]을 연상시킨다면 [나니아 연대기]의 세 번째 시리즈는 또 어떤 고전을 모티브로 삼을지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암튼 페벤시 남매들의 나니아에서의 두 번째 모험도 막을 내렸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따르면 페벤시 남매 중 첫째와 둘째인 피터와 수잔은 더 이상 나니아의 세계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이 성년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세 번째 이야기에선 에드먼드와 루시만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에드먼드와 루시가 세 번째 나니아에서의 모험에서 어떤 성장을 보여줄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암튼 기다릴만한 판타지 시리즈가 또 한편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반가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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