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8년 아쩗평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없이 안주해버린 현실이 아닐까?

쭈니-1 2018. 6. 22. 10:48



감독 : 이광국

주연 : 이진욱, 고현정

개봉 : 2018년 4월 12일

관람 : 2018년 6월 21일

등급 : 15세 관람가



확실한 것은 로맨스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고현정과 이진욱이 아니었다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제목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고현정과 이진욱이 주연을 맡았다고해도 거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보이는 영화입니다. 여자친구 현지(류현경)의 집에 얹혀살던 경유(이진욱)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지의 집에서 쫓겨나고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소설가가 된 옛 애인 유정(고현정)을 만납니다. 이것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알려진 줄거리입니다.

네이버 영화정보를 보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장르는 로맨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경유와 유정의 사랑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정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분명 로맨스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저예산 영화라 진짜 호랑이를 등장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동물원 호랑이는 왜 탈출한 것일까요?




경유를 최악의 궁지로 몰아넣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유가 처한 상황부터 이해를 해야합니다. 경우는 소설가를 꿈꿨지만 결국 등단하지 못한채 포기하고 지금은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입니다. 그는 대형서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현지의 집에 얹혀 살지만, 어느날 현지는 경유를 버리고 떠나버립니다. 경유 몰래 이사를 가버린 것입니다.

사실 현지의 그러한 선택에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현지는 경유에게 시골 부모님이 찾아오니 이틀만 집을 비워달라고 요청한 날 아침, 경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습니다. 만약 경유가 이번 기회에 현지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정식으로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면 현지는 경유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우는 현지의 마지막 기회를 발로 차버립니다. 결국 그렇게 최악의 방법으로 현지는 경유는 떠납니다.

경유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인 부정(서현우)은 결혼을 앞둔 개인적 사정 때문에 경유를 받아들일 수가 없고, 대리운전 진상 손님들은 경유를 계속해서 괴롭힙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정을 만난 것입니다. 소설가가 되어 있는 유정은 경유에게 자신의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선뜻 경유를 받아들입니다. 어쩌면 경유에게 있어서 유정은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유정은 경유를 받아들인 것일까요? 단순히 사랑 때문일까요?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진 경유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만약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경유가 유정과 뜻밖의 사랑을 이어나간다면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맞습니다. 하지만 경유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유정 또한 경유에게 접근한 이유가 있었고, 그로 인하여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경유의 분노가 폭발하고 맙니다.

이쯤되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결말이 경유의 자살로 막을 내린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유는 오히려 자살을 시도한 한 여성을 구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호랑이와 마주친 그날... 그렇게 경유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경유는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톨스토리의 <노인과 바다>같은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다던 그는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하던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아직 해야할,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경유에게 희망이 됩니다. 경유가 그토록 원했던 작가가 되었지만 더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유정과는 달리 경유의 희망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호랑이는 없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결국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경유가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영화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경유의 최악의 상황은 동물원을 탈출한 호랑이 뉴스에서 시작되었고, 경유가 호랑이와 마주하는 순간 새로운 희망이 싹틉니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호랑이는 두번 등장하는데 첫번째 등장에서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호랑이의 눈빛만 나옵니다. 경유는 호랑이의 첫번째 등장 덕분에 자살을 결심한 여성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호랑이의 등장은 호랑이 탈을 쓴 사람과 마주치면서입니다. 경유가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말입니다.

이렇게 호랑이는 경유의 처지에 대한 은유가 됩니다. 동물원이라는 안락하지만 새로운 희망이 없는 공간을 탈출한 호랑이처럼, 경유는 현지라는 희망이라고는 없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밖으로 내몰립니다. 아마 동물원을 탈출한 호랑이도 여러차례 위험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마치 현지가 떠난후 경우가 경험한 자살 충동을 일으킬만한 상황들처럼 말이죠. 이렇듯 동물원과 현지는 안전하지만 희마잉 없는 현실입니다. 호랑이와 경유는 그러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의, 타의로 밖으로 나오며 새로운 희망을 얻게됩니다. 아마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그러한 희망없는 현실에 대한 안주가 아닐까요? 솔직히 영화 자체는 저예산 독립영화답게 조용하고 심심한 편이지만 그래도 영화가 끝난 후 작은 생각할거리를 안겨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