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에바 두버네이
주연 : 스톰 레이드, 오프라 윈프리, 리즈 위더스푼, 민디 캘링, 크리스 파인
관람 : 2018년 6월 10일
개봉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할리우드의 쟁쟁한 메이저 제작사 중에서 단연 으뜸은 디즈니입니다. 디즈니는 과거 애니메이션의 명가였지만 요즘은 마블, 스타워즈 등 막강한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가진 미국내에서도 가장 흥행력이 막강한 제작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디즈니라고 할지라도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수제작비 2억5천만 달러가 투입되었지만 북미 흥행성적은 고작 7천3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2012년 개봉작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 순수제작비 1억5천만 달러가 투입되었지만 북미흥행성적은 2천1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2011년 개봉작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 순수제작비 1억9천만 달러가 투입되었지만 북미 흥행성적인 9천3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2015년 개봉작 [투모로우랜드]까지 디즈니도 가끔은 큼직큼직한 흥행 망작을 배출해냈습니다.
2018년에도 디즈니의 영화들은 북미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지만 지난 3월 9일에 개봉한 [시간의 주름]은 디즈니의 축복에서 비켜갔습니다. 순수 제작비가 1억3천만 달러로 알려진 [시간의 주름]은 북미 9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쳤습니다. 디즈니로서는 최소 1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난 영화입니다. 그래서일까요? 2018년 봄에 국내 개봉 예정이었던 [시간의 주름]은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가도 개봉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처럼 국내 개봉은 무산되고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저는 유난히 망작에 관심이 많습니다.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과 [투모로우랜드]는 극장에서 재미있게 봤고, 국내 개봉이 무산된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도 다운로드로 챙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간의 주름]의 개봉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주름]의 국내 개봉 소식을 결국 들려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저는 다운로드로 먼저 이 영화를 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망작이지만 기대가 컸다.
[시간의 주름]은 시간을 주름처럼 접는 5차원의 이동 원리를 알아낸 후 실종된 아버지 알렉스(크리스 파인)을 찾아 나선 멕(스톰 레이드)와 찰스 윌리스(데릭 매케이브) 그리고 멕의 친구인 캘빈(리바이 밀러)의 모험담입니다. 그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미세스 위치(오프라 윈프리), 미세스 왓신(리즈 위더스푼), 미세스 후(민디 캘링)의 도움으로 5차원 세계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어둠에 갇힌 알렉스를 구하게 됩니다.
처음 웅이에게 [시간의 주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웅이도 "우와, 재미있겠다."라며 소중한 일요일 오후를 저와 함께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분명 [시간의 주름]은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시간을 주름처럼 접는다는 설정도 좋았고, 5차원의 세계를 표현한 영상미도 뛰어 났습니다. 그리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위치, 왓신, 후의 각기 다른 매력도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게다가 마이클 페냐,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등 씬스틸러 조연들의 활약도 좋았고, 매들린 렝글의 시간 4부작 중 첫번째 이야기를 원작으로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리 1편이 재미없어도 앞으로의 시리즈를 기대할만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의 주름]을 보고나니 제 모든 기대감이 사그리 사라졌습니다. 제가 아무리 망작을 좋아하지만, [시간의 주름]만큼은 좋아할 수가 없네요.
총체적 난국이란 바로 이런 것을 뜻한다.
일단 [시간의 주름]은 제게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알렉스의 딸과 아들인 멕과 찰스 윌리스의 매력은 부족했고, 그들과 동행한 캘빈은 왜 그가 위험한 모험에 뛰어들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만큼 뜬금없었습니다. 그나마 오프라 윈프리, 리즈 위더스푼, 민디 캘링이 연기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신비한 캐릭터들이 눈에 띄지만, [시간의 주름]은 그녀들의 매력을 맘껏 발휘할만한 시간을 영화에 내어주지 않습니다.
어둠의 힘이 왜 알렉스를 가두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갑자기 어둠의 힘에 사로 잡힌 찰스 윌리스의 모습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멕과 찰스 윌리스, 캘빈이 알렉스를 구하는 장면도 너무 싱거웠습니다. 시간을 주름처럼 접는다는 설정은 영화에서 전혀 활용되지 못했고, 그저 5차원 세계의 환상적인 색감만이 제 기억 속에 덩그러니 남아버렸습니다.
스토리 자체가 전혀 개성이 없다보니 2편에 대한 기대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시간의 주름]이 망해버려 2편 제작은 물건너 갔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만약 2편이 제작된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의 주름]은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실화를 다룬 [셀마]와 노예 폐지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3조를 소재로한 다큐멘터리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등 주로 흑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첫번째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최소한 [시간의 주름]만큼은 모호한 메시지와 부족한 볼거리, 평범한 스토리 라인 등 실패작의 조건을 두루 갖춘 영화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만약 매들린 렝글의 시간 4부작을 만들고 싶다면 부디 심기일전해서 1편부터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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