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전고운
주연 : 이솜, 안재홍
개봉 : 2018년 3월 22일
관람 : 2018년 5월 13일
등급 : 15세 관람가
저예산 독립영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솔직히 저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제 영화적 취향이 다분히 대중적이기에 아무래도 대중적인 장르법칙에 기댄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저에산 독립영화이기에 할 수 있는 독특한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기도합니다. [소공녀]가 바로 그러한 영화입니다.
솔직히 [소공녀]가 개봉할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이 영화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프랜시스 호지스의 대포적 소설이며 부유했던 한 소녀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다는 이야기를 담은 <소공녀>와 제목이 같은 것도 별로였고, [1999, 면회]를 시작으로 [족구왕], [범죄의 여왕]을 제작하며 독립영화 제작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광화문 시네마에 대해서도 [범죄의 여왕]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지만 차기작을 기대할만큼 독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를 지키기 위해 살 집을 포기하는 미소(이솜)의 선택에 대해 궁금증이 밀려 왔습니다. 그녀는 집을 포기하고 예전에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집이 있는 그들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은 저에게도 해당하는 것이기에 저는 미소의 질문을 진지하게 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이 없어도 행복한 그녀, 집이 있어도 불행한 친구들을 만나다.
일단 미소는 가난합니다. 가사도우미로 일하지만 그녀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남자친구인 한솔(안재홍)은 웹툰 작가를 꿈꾸지만 매번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둘은 남들 다 가는 맛집 데이트는 커녕 길거리에서 꼬치나 먹으며 데이트를 합니다. 하지만 미소는 행복합니다. 하루 한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모금이 하루의 피곤을 날려주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한솔이 그녀의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의 행복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담배값도 오르고 집세도 오른 것입니다. 오른 집세 감당하기 위해서는 위스키와 담배를 끊이야만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합니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에 불과하지만, 위스키와 담배는 그녀의 행복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결국 미소는 행복을 위해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었고,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집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학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면 잠자리는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집을 가진 미소의 친구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른 이유로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
미소의 친구들은 모두 한결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소시민들입니다. 그러나 대기업에 다니는 문영은 회사의 속박 속에서 자유롭지 않고, 가정주부인 현정은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의 시댁 문화에 숨통이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결혼한지 8개월이 된 대용은 결혼을 위해 무리하게 구매한 아파트의 무게에 짓눌려 있고, 노총각 록이는 결혼을 원하는 부모님의 성화 속에 거짓된 행복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남편을 만난 정미는 남편의 눈치만 보는 노예신세입니다.
그들은 미소에 비해 가진 것도 많고, 이룬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중에서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미소가 가장 행복해보일 정도입니다. 급기야 젊은 나이에 초호화 아파트에서 사치스럽게 살던 민지는 미소의 위로를 받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가집니다. 집을 갖고, 새로나온 최신 가전제품을 갖고, 최신 스마트폰을 가집니다. 그것을 가지지 않으면 마치 사회에 뒤떨어지는 사람처럼 인식됩니다. 그것을 가져야만 행복할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내가 가진 것으로 인하여 나는 정말 행복한가?
[소공녀]는 무소유처럼 우리와는 동떨어진 철학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많은 것을 가졌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정말 행복한가요?'라고...
사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남들에 비해 소유욕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멋진 옷을 입고 싶지도 않았고, 유행하는 최신 제품을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샀고, 내가 불편하지 않다면 남들이 모두 가지고 있어도 저는 갖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삽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의 조건은 더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으며 내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조건이 아닐까요? 영화의 마지막에 텐트를 치며 노숙을 하는 미소. 하지만 그녀는 행복했을 것입니다. 비록 위스키와 담배를 위해 이번엔 핸드폰을 포기해야 했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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