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리에 유
주연 : 후지와라 타츠야, 이토 히데야키, 나카무라 토오루
개봉 : 2018년 1월 17일
관람 : 2018년 4월 30일
등급 : 15세 관람가
* 이 글은 [내가 살인범이다], [22년 후의 고백]의 스포 덩어리임을 미리 밝힙니다.
[내가 살인범이다]의 일본 리메이크
2012년 11월에 개봉한 정병길 감독의 스릴러 [내가 살인범이다]는 꽤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17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곡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이두석(박시후)이 '내가 살인범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혀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인 15년이 지나 법적처벌을 받을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독특했던 것은 연곡 연쇄살인사건으로 고통을 받은 유가족의 복수극이었습니다. 정병길 감독은 굉장히 영리하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결국 잔혹한 연쇄살인범에 대한 유가족의 복수극을 완성했습니다.
[내가 살인범이다]가 일본에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내가 살인범이다]의 일본 리메이크인 [22년 후의 고백]은 2017년 6월 10일 일본에서 개봉하여 23주차부터 25주차까지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1월 17일 개봉하여 1,732명의 관객만 동원한 후 곧바로 다운로드로 직행하였습니다.
제가 [22년 후의 고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살인범이다]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연 일본에서 [내가 살인범이다]를 어떻게 리메이크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한 몫을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리메이크는 기본적인 설정은 그대로 놔두고, 세부적인 사항을 살짝 수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22년 후의 고백]은 [내가 살인범이다]를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잘 만들어진 일본식 리메이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2년 후의 고백]을 보며 저는 [내가 살인범이다]를 일본식으로 잘 리메이크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22년 후의 고백]은 [내가 살인범이다]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구성을 리메이크 영화답게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공소시효가 지나고 자신의 범행 사실을 책으로 공개한 대범한 연쇄살인범 소네자키 마사토(후지와라 타츠야)가 사실은 진짜 연쇄살인범을 자극하기 위해 담당 형사인 마키무라 코(이토 히데아키)와 함께 벌인 가짜라는 것은 두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설정입니다. 혹시라도 반전을 바꾼다며 소네자키가 진짜 범인으로 설정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소네자키와 미키무라의 자작극으로 인하여 진짜 연쇄살인범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설정까지도 같습니다. 그러면서 연쇄살인사건으로 고통을 받은 유가족이 연쇄살인범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게됩니다. 결국 [내가 살인범이다]와 [22년 후의 고백]은 공소시효가 지난 연쇄살인범의 고백이라는 소재와 유가족의 복수라는 주제를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22년 후의 고백]은 [내가 살인범이다]를 고스란히 배경만 옮긴 게으른 리메이크 영화는 아닙니다. 세부적인 사항에서 한국식 정서를 일본식으로 바꾸었습니다. 특히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내가 살인범이다]의 연곡 연쇄살인사건과는 달리 [22년 후의 고백]은 1995년 벌어진 고베 지진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영화의 바탕으로 깔아둡니다.
세부적인 사항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영화로 탄생하다.
스릴러 영화를 리메이크하는데 있어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마지막 반전입니다. 리메이크 영화가 원작의 반전을 그대로 재현할 경우 관객이 이미 반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결말에 김이 빠질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무턱대고 반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2년 후의 고백]은 이러한 딜레마를 현명하게 대처합니다. 일단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 소네자키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대로 놔둠으로써 원작의 주제를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진범에 대한 정체를 살짜 바꿈으로써 [내가 살인범이다]를 본 저조차도 "아~"라며 탄성을 지르게합니다.
[22년 후의 고백]은 그러면서 진범에 대한 스토리를 좀 더 꼼꼼하게 만들어놓습니다. [내가 살인범이다]의 진범은 그냥 미치광이 강간 살인마이지만, [22년 후의 고백]의 센도(나카무라 토오루)는 전쟁터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동료인 독일 기자가 반군 세력에 붙잡혀 목이 졸려 살해당한 것을 목격하고, 그 트라우마로 인하여 일본으로 돌아와 연쇄살인을 벌어게 됩니다. 꽤 그럴듯한 범행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극적으로 포장된 공소시효 기간이 옥의 티
단지 [22년 후의 고백]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센도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너무 극적이라는 점입니다. 일본에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15년이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에 중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법안이 통과되어 살인죄의 공소시효과 폐지됩니다. 단 1995년 4월 28일 자정 이후 발생한 중범죄에 대하여 해당 법안이 적용되지만, 센도가 저지른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범행은 1995년 4월 27일 밤이었기 때문에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센도에 의해 살해된 마키무라의 동생 미카의 죽음은 4월 28일 자정을 아슬아슬하게 남기는 시점이었습니다 단 몇 초만에 센도의 법적 처벌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 부분이 억지스러웠던 것은 처음엔 소네자키도, 마키무라도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점입니다. 그저 진범이 공개한 비디오를 보고나서 나중에 알게 되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인범이다]에서는 담당형사 최형구(정재영)은 연곡 연쇄살인범의 밝혀지지 않은 범행 중 아직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는 범행이 있음을 알고 치밀하게 계획을 합니다. 그 부분이 [22년 후의 고백]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저는 [22년 후의 고백]에 만족했습니다. 후지와라 타츠야가 연기한 소네자키에게서 [데스노트]의 키라가 엿보였다는 점도 이 영화의 흥미를 복돋아줬습니다. 이쯤이면 [22년 후의 고백]은 잘 만들어진 일본식 리메이크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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