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주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빅키 크리엡스, 레슬리 맨빌
개봉 : 2018년 3월 8일
관람 : 2018년 4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싫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좋다.
영화를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각자의 취향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재미있다고 강추해도 나 혼자 재미없는 영화가 있고, 세상 모든 사람이 걸작이라 칭송해도 나 혼자 졸작인 영화도 분명 존재합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는 몇몇 거장의 영화들이 저와 취향이 전혀 맞지 않는데, 그 중 대표적인 감독이 폴 토마스 앤더슨입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로 주목받은 이후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등의 영화로 일찌감치 미국의 거장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영화에서 그 어떤 작품성도, 영화적 재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특히 [펀치 드렁크 러브]는 2002년 제5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제겐 1시간 3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마치 3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루한 로맨틱 코미디에 불과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2018년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중 유일하게 [팬텀 스레드]를 극장에서 놓친 이유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이미 저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외면한 적이 있지만 [팬텀 스레드]의 경우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 은퇴를 선언한 영화라서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1990년 [나의 왼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2008년 [데어 윌 비 블러드], 2013년 [링컨]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긴 배우입니다.
완벽한 삶을 사는 남자, 그 삶을 무너뜨리려는 여자
[팸턴 스레드]는 1950년 런던을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왕실과 사교계의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은 완벽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혼은 그의 완벽한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철학으로 누나인 시릴(레슬리 맨빌)과 함께 독신을 고집하는 그에게 있어서 여자는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뮤즈이지만, 예술적 영감이 사라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소모품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그에게 젊고 당찬 알마(빅키 크리엡스)가 끼어듭니다. 레이놀즈는 언제나 그렇듯 알마를 자신 인생의 최고 뮤즈 대접을 해주고 그녀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알마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녀는 레이놀즈가 자신을 뮤즈 따위가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길 원했고, 그녀가 레이놀즈에게 집착하면 할 수록 알마에 대한 레이놀즈의 반감은 더욱 커져만갑니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완벽한 삶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지만, 레이놀즈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알마는 어떻게해서든 레이놀즈의 완벽한 삶을 누너뜨리려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다른 뮤즈가 그랬던 것처럼 쫓겨날 위기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녀는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레이놀즈가 마시는 차에 독버섯을 몰래 갈아 넣음으로써 레이놀즈를 무너뜨리고, 무너진 레이놀즈는 정성껏 간호함으로써 그와의 결혼까지 성공시킵니다.
그녀의 사랑,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마가 레이놀즈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독버섯을 먹이는 장면에서 저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레이놀즈를 향한 알마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 집착처럼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레이놀즈에게 일부러 독버섯을 먹이는 행위는 범죄입니다. 그렇기에 레이놀즈가 언젠가 알마의 행위를 알게되고, 알마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끝나길 저는 바랬습니다.
하지만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제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레이놀즈가 알마와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낄때마다 알마는 레이놀즈에게 독버섯을 먹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당신이 쓰러져주길 원해요. 힘없이 나약하게 무방비 상태로 내 도움만 기다리며... 그리고 다시 강해지길 원해요. 죽진 않을거예요. 당신이 죽고 싶어도 안 죽을 거예요. 당신은 좀 쉬어야 돼요."
레이놀즈를 향한 알마의 집착적인 사랑은 결국 레이놀즈를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레이놀즈도 그녀의 사랑을 더이상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팬텀 스레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저는 사랑에 대한 훈한함, 혹은 감동 따위는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비정상적인 사랑에 불쾌감만 느껴야했습니다.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사랑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팬텀 스레드]를 보고나서의 제 첫 느낌은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봐서는 안되는 거였다'입니다. 레이놀즈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에게 독버섯을 먹이는 알마의 행위를 저는 사랑이라고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좀 더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것 역시 사랑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어머니를 향한 레이놀즈의 그리움이 부각되었습니다. 아마도 레이놀즈는 요즘 말로 하면 마마보이이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것을 시릴에게 기대며 대체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알마가 파고든 것은 바로 그러한 레이놀즈의 약점입니다. 알마는 시릴을 대신하여 레이놀즈에게 어머니 역할을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 레이놀즈의 의상실이 예전과는 다른 처지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장면도 눈여겨볼만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의 드레스를 만들어야 하는 레이놀즈. 하지만 이제 시대는 유행에 의한 기성복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럼으로써 한사람을 위한 맞춤 드레스를 만드는 레이놀즈의 의상실을 쇠퇴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알마는 어차피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레이놀즈의 완벽한 삶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해서 독버섯같은 둘의 사랑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레이놀즈에게 독버섯을 먹이면서 짓던 알마의 가증스러운 미소가 역겹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앞으로도 피하겠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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