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8년 아쩗평

[게이트] - 감독의 그릇이 그것밖에 안되니 어쩔 수가 없구나.

쭈니-1 2018. 4. 12. 11:05



감독 : 신재호

주연 : 정려원, 임창정, 정상훈, 이경영, 이문식, 김보민, 김도훈, 선우은숙

개봉 : 2018년 2월 28일

관람 : 2018년 4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신재호 감독의 영화를 믿어도 될까요?


신재호 감독...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조금은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2000년 [동감]의 원작자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2004년 하지원 주연의 [내 사랑 싸가지]로 데뷔한 베테랑 감독입니다. 그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개명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명 이전의 이름은 신동엽으로 개그맨 신동엽과 이름이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코미디 영화들로 시작하였습니다. [내 사랑 싸가지], [서유기 리턴즈], [웨딩 스캔들]을 연출했고, 이후엔 액션, 스릴러로 장르를 바꿔 [응징자], [치외법권], [대결]을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 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단 한편도 없습니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두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애초에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은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거나, 아니면 영화계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언젠가는 포텐이 터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거나. 확실히 신재호 감독의 영화는 작가주의 영화는 아니니 후자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계가 기다리고 있는 그의 포텐은 언제쯤 터질까요?

이름을 신동엽에서 신재호로 바꾸면서 내놓은 첫번째 영화 [게이트]는 그의 야심작이라 할만합니다. 케이퍼 무비답게 캐스팅이 꽤 화려합니다. [치외법권]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임창정을 비롯하여 정려원, 정상훈 등 스타급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고, 2016년 연말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은 국정농단 사건을 소재로 택하는 과감한 도전도 선보였습니다. 이쯤되면 신동엽 감독의 영화는 못미더워도, 신재호 감독의 영화는 믿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거대한 소재를 이따위로 밖에 활용을 못하는 구나.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게이트]는 확실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신재호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임창정과 정상훈이 주연을 맡은 [로마의 휴일]과 비교한다면 조금 낫긴합니다. (그만큼 그 영화들이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내 돈내고, 1시간 30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며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소재는 좋았습니다. [게이트]는 2014년 벌어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연상시키는 오프닝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은 박근혜 정부에서 정윤회라는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담긴 청와대 작성 문건이 세계일보와 박지만에서 유출된 사건입니다. 검찰은 이 문건이 허위라고 결론내렸지만 그러면서도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을 기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박관천 행정관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100여장의 문건을 복사해 언론사에 유출한 인물로 지목된 최경위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합니다.

[게이트]에서는 검사인 규철(임창정)이 누군가에게 USB를 받고 차로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며 기억상실증에 걸립니다. 그리고 규철에게 USB를 넘겨준 사람은 차 안에서 자살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1년후 이번엔 최순실을 연상하게 하는 애리(정경순)라는 여성이 등장하고 의상실 직원 소은(정려원)은 애리의 갑질에 부당해고를 당합니다. 이쯤되면 국정농단 사건을 잘 활용하여 속이 뻥 뚫리는 케이퍼 무비로의 완성을 기대하게됩니다.




감독의 그릇이 그것밖에 안되니 어쩔 수가 없구나.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규철과 막다른 길에 몰린 소은은 팀을 모아 악덕 사채업자 민욱(정상훈)의 금고를 털기로 합니다. 사실 그들의 계획은 허술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저 어머니 옥자(선우은숙)의 수술비가 필요한 천재 해커 원호(김도훈)와 절도혐의로 감옥에서 막 출소한 소은의 아버지 장춘(이경영)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입니다. 케이퍼 무비의 치밀함은 이렇게 처음부터 결여됩니다. 그렇게 그들은 너무 어이없게 민욱의 금고 털기에 성공하고, 또 너무 어이없게 민욱에게 잡힙니다.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어차피 민욱의 금고는 본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욱은 비선실세 애리의 내연남으로 소은의 팀을 이용해서 애리가 숨겨놓은 거액의 비자금을 털 계획을 세웁니다. 이건 한낱 사채업자의 금고를 터는 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소은 일행은 아무런 사전 계획도 없이 곧바로 작전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리고 유일한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경비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번엔 원호의 어머니 옥자의 도움으로 금고를 엽니다. 그리고 그곳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5만원권 지폐가 쌓여 있습니다.

이게 끝입니다. 결국 돈이 전부입니다. 국정농단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소재로 했으면서 결론은 고작 돈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은 돈보다 더 중요한 대한민국의 가치가 훼손되었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탄핵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게이트]는 이 거대한 소재를 가지고 결국 돈으로 마무리합니다. 그게 신재호 감독의 조그마한 그릇입니다.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만약 내게 [게이트]의 각본, 연출이 맡겨진다면 저는 영화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단 규철의 기억상실은 위장인 것으로 드러내 마지막 반전을 주겠습니다. 규철은 청와대 문건 유출이라는 거대 권력의 비리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USB를 건네 받았고, 이 USB를 빼앗으려는 자들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규철에게 USB를 건네준 자는 자살로 위장된채 살해됩니다. 이쯤되면 규철 역시 자신도 위험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거대 권력의 하수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바보로 위장합니다.

규철이 소은의 곁을 맴돈 것은 소은의 아버지가 장춘임을 알기 때문으로 설정하겠습니다. 규철은 장춘이 출소하면 그를 이용해서 처음부터 애리의 비밀 금고를 열 계획을 세웠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소은에게 접근, 장춘과 함께 일을 꾸밉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1년이라는 세월을 참고 기다린 규철의 철저한 복수극이 되는 것입니다.

애리의 금고엔 수백, 수천억의 돈 대신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논란을 밝힐 서류들이 쌓여 있는 것으로 바꾸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소시민에 불과한 소은, 장춘, 철수(이문식), 원호, 미애(김보민)가 대통령이라는 거대 권력을 무너뜨린 조력자임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를 선사하겠습니다. 물론 제게 영화의 각본, 연출이 맡겨질리는 없지만, 최소한 과감하게 국정농단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소재를 택했다면 그깟 돈이 아닌, 그 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훔치는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답답한 생각에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