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놀라운 결말로 귀결된다.

쭈니-1 2018. 4. 18. 16:18



순전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때문에 선택했다.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을 회사 책장에서 발견했을 때 저는 그저 그런 추리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우연히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를 쓴 더글러스 애덤스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그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라는 이상한 제목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마술을 경험했습니다.

솔직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 2005년 국내에 개봉하기도 했지만 게으른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치고, 화질이 아주 안좋은 다운로드 파일로 대충 관람했기에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SF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적극 추천하시더군요.

하지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총 여섯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적극적인 추천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뜻 서점에서 구매하기엔 조금 부담이 따릅니다. 그렇기에 우선은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를 먼저 읽고, 재미가 있으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처음엔 도대체 이게 뭔 소설인지 모르겠더라.


잔뜩 기대를 하고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도대체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탑처럼 보이는 이상한 구조물과 주변 풍경을 설명하더니, 전자 수도사라는 이상한 존재를 등장시켜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바람을 맞은 수잔이라는 여행의 기다림, 케임브리지 대학의 만찬에 초정된 컴퓨터 프로그래머 리처드 맥도프의 이상한 하루가 두서없이 펼쳐집니다.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의 초반은 제가 기대했던 SF도 아니었고, 그렇다고해서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과 같은 추리 소설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읽는 진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책을 덮고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습니다.

이쯤되면 책을 덮어버리고 '이건 내 취향의 소설이 아냐.'라고 포기할만한데, 2018년 들어서 무려 스물다섯권의 책을 읽으며 단련이 된 듯, 저는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중, 후반부에 펼쳐지는 재미에 푹 빠질 수가 있었습니다. 



더크 젠틀리가 등장하자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388페이지 중 106페이지에 이르러서야 고든 웨이의 죽음으로써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하지만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가 진정으로 재미있어지는 부분은 고든 웨이의 살해 혐의를 받게된 리처드 맥도프가 대학 동창인 더크 젠틀리의 탐정 사무소를 찾아가는 173페이지부터입니다. 더크 젠틀리는 돈 개념이 부족하고, 엉뚱하며, 약간은 사기성까지 농후한 캐릭터로 등장과 동시에 제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더크 젠틀리의 등장과 더불어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의 이야기는 갑자기 앞으로 내달립니다. 이미 고든 웨이의 죽음과 동시에 고든 웨이의 유령이 등장하며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이에 그치지 않고 최면, 빙의, 타임머신까지 등장하며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려고 하는지 종잡을 수 없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외계인 유령이 등장합니다. 40억년전 폭력적이고, 말썽이 끊이지 않던 사락사라 행성을 떠나 그들만의 신세계를 만들으려 했던 아홉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동료 모두가 죽자 유령이 되어 40억년 동안 지구를 떠돈 외계인 유령은 타임머신의 존재를 알게 되고, 타임머신의 소유자인 리즈 교수에게 40억년전으로 돌아가 그들의 비극을 막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놀라운 결말로 귀결된다.


유령과 타임머신, 외계인까지 등장하는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는 마지막에 가서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락사라 행성인들의 비극적 착륙선 폭발이 지구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에서처럼 기발한 이야기는 또 처음입니다.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는 여러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SF와 판타지, 그리고 코미디와 추리소설의 묘미가 다양하게 살아 있으면서 인류의 기원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물론 이 놀라운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초반의 혼란스러운 지루함을 견뎌야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를 읽고나니 이제 남은 것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주말엔 YES24 중고서점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찾아봐야 겠습니다. 이거 무슨 보물찾기같아서 벌써부터 마음이 설랩니다. 아참... 넷플렉스에서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를 모티브로 한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 시즌 2>가 서비스 중이라고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보시길... 더크 젠틀리라는 캐릭터가 워낙 엉뚱하고 매력적이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