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라르 크라브지크
주연 : 사미 나세리, 프레데릭 디팡달
개봉 : 2007년 7월 5일
관람 : 2007년 7월 6일
등급 : 12세 이상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영화이지만...
솔직히 [택시 시리즈]는 1, 2편을 재미있게 봤지만 3편에서 완벽한 실망을 경험한터라 4편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는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영화가 거의 없어서 그냥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택시 4]를 봤습니다.
별 기대 없이 [택시 4]를 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뤅 베송의 영화인데 기본은 하지 않을까?'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뤅 베송... 그가 누굽니까? 자만에 젖어 관객을 무시하다가 어느새 할리우드에게 점령당한 프랑스의 영화 시장에서 [서브웨이], [그랑블루], [니키타], [레옹] 등을 감독하며 프랑스관객들을 다시 프랑스영화로 돌아오게 했던 프랑스영화시장을 구한 영웅입니다. 그는 예술영화에만 몰두하던 당시 프랑스영화를 상업적인 측면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이끌어 냈고, 이후 [제 5원소], [잔다르크] 등 블록버스터에서도 프랑스감독 중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감독입니다.
그런 그가 후배양성을 위해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은 1998년 [택시]에서부터 입니다. 당시 [택시]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할리우드에서 [택시]의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하여 [택시 : 더 맥시멈]을 제작하기까지 했습니다. [택시]의 감독이었던 제라르 피레스는 이후 [스틸], [마하 2.6 : 풀 스피드]를 감독하며 프랑스영화의 새로운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택시]의 성공이후 [키스 오브 드래곤], [와사비], [트랜스포터], [더 독] 등을 제작하며 관객을 위한 영화에 몰두하고 있는 뤅 베송 감독. 그는 '유럽영화는 어려워'라고 생각하는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유럽의 영화감독입니다. 그런 그가 제작한 영화중 가장 흥행적으로 성공한 영화인 [택시 시리즈]. 과연 [택시 4]는 [택시 3]의 실망을 발판삼아 더 재미있는 영화로 발 돋음 할 수 있을까요?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에밀리앙
결론부터 말한다면 [택시 4]는 제가 2007년 극장에서 봤던 수십 편의 영화중에서도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입니다. 원래 최악이라는 표현을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택시 4]만은 최악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왜 시간을 낭비하며 이곳에 앉아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더군요.
[택시 4]는 정말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한 오락영화입니다. 액션 코미디 장르를 표방했으면서 액션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고, 유치한 슬랩스틱 코미디만 난무하다보니 웃기기보다는 어이가 없기만 합니다. 어쩌다가 뤅 베송의 영화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 정말 처참하군요.
[택시 시리즈]는 어리숙한 사고뭉치 경찰 에밀리앙(프레데릭 디팡달)과 초특급 총알택시 운전사 다니엘(사미 나세리)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1편에서 서로 아웅다웅 싸우며 완벽한 파트너쉽을 보여줍니다. 할리우드 버디무비의 프랑스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2편에 와서는 이러한 아웅다웅하는 에밀리앙과 다니엘의 모습을 더 이상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1편의 마지막에서 화해를 한 그들이기에 2편부터는 그러한 버디무비적인 재미를 발휘할 수 없었던 거죠. [택시]의 시리즈 영화적인 한계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에밀리앙과 다니엘의 버디무비적인 캐릭터의 흥미로운 점을 없애고 나니 이 둘은 평범한 캐릭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일까요? 2편에서부터 감독을 맡은 제라르 크라브지크는 에밀리앙을 점점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에밀리앙의 바보스러움은 4편에 와서 극에 치닫습니다.
물론 코미디적인 요소가 함유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저건 해도 해도 너무 바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편에서부터 에밀리앙은 어리숙한 경찰이었지만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며 그는 점점 바보가 되어 갑니다. 저렇게 바보 같은 주인공을 응원해야하는 제 자신이 한심할 정도로 말입니다.
스피드는 어디에?
에밀리앙이 조금 바보 같은 캐릭터라는 사실은 [택시 4]의 코미디적인 요소에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정서에는 잘 맞지 않지만 프랑스 코미디는 주인공 캐릭터의 바보스러움을 코믹 요소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전 프랑스 코미디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에밀리앙의 캐릭터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 스피드가 빠져 버린 것은 도무지 이해불가입니다. [택시 시리즈]의 원래 재미는 버디무비적인 요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도심을 가로질르는 총알택시의 짜릿한 스피드에 있으니까요.
다시 1편부터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1편은 최신형 벤츠를 몰며 유럽 전역의 은행을 터는 독일 갱단을 상대로 다니엘의 총알택시가 실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스피드한 카체이서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2편에선 일본의 야쿠자 조직이 등장하고 다니엘의 총알택시는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스피드한 닌자 갱단과의 한판 승부가 벌어집니다. 3편의 악당은 익스트림 스포츠 갱단입니다. 이처럼 [택시 시리즈]는 지금까지 스피드를 잃지 않고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4편의 악당은 유럽 최악의 초특급 살인마입니다. 스피드가 끼어들을 자리가 없어진 거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니엘의 총알택시는 이번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합니다. 오프닝씬에서 세계적인 축구스타 지브릴 시세를 경기장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택시의 임무는 거의 끝입니다.
[택시 시리즈]에서 스피드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 어이없는 결과는 바로 액션은 없고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만 남은 것이며, 그 코미디의 한가운데엔 앞에서 이야기한 바보 같은 에밀리앙이 우뚝 서있습니다.
제가 [택시 4]에 그나마 약간의 기대를 가졌던 이유는 극장에서 초스피드한 영상을 즐기는 것인데 이젠 그것마저 사라졌으니... 도대체 제라르 크라브지크는, 뤅 베송은 무슨 생각으로 [택시 4]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 [택시 5]가 만들어진다면 다시는 극장에서 시간 낭비하는 짓은 안하겠습니다.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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