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허리케인 하이스트] - 허리케인은 막강한데, 하이스트는 허술하다.

쭈니-1 2018. 3. 16. 17:34



감독 : 롭 코헨

주연 : 토비 켑벨, 매기 그레이스, 라이언 콴튼

개봉 : 2018년 3월 14일

관람 : 2018년 3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 영화, 기대해도 좋을까?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서 기대하기에도,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도, 가장 애매한 영화가 [허리케인 하이스트]입니다. 솔직히 B급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허리케인 하이스트'라는 제목부터가 못미덥습니다. 게다가 주연을 맡은 토비 켑벨과 매기 그레이스는 아직 단독 주연을 하기엔 인지도가 부족해 보입니다. 토비 켑벨은 최근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판타스틱 4],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콩 : 스컬 아일랜드] 등 블록버스터 영화에 이름을 올렸지만 별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거나 특수분장으로 인하여 얼굴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매기 그레이스의 경우는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의 딸로 출연했을뿐, 아직 미완의 대기입니다.

북미 흥행 성적도 벌써 폭망 수준이라고합니다. 지난 3월 9일 북미에서 개봉한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개봉 첫주 3백만 달러라는 처참한 성적을 올리며 9위에 그쳤습니다. 순수 제작비가 3천 5백만 달러로 그리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가 아니지만 이미 제작비의 대부분을 허공 속에 날려버릴 영화로 낙인 찍힌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허리케인 하이스트]를 두고 고민하는 이유는 감독이 롭 코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롭 코헨 감독은 2005년 [스텔스]로 흥행을 제대로 말아먹은 이후 [미이라 3 : 황제의 무덤], [알렉스 크로스]까지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 쌓아올린 흥행감독으로써의 명성에 금이 간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의 최고 히트작 [분노의 질주], [트리플 엑스]는 물론 그의 초기작인 [드래곤하트]와 [데이라잇]을 좋아했기에 아직 롭 코헨 감독의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허리케인 하이스트]에 대해서 긴가민가하면서도 결국 극장으로 향한 이유입니다.


나는 [드래곤 하트]에서 보여준 롭 코헨 감독의 따뜻한 감성이 좋다.

그리고 [분노의 질주], [트리플 엑스]에서 보여준 짜릿한 액션 쾌감도 기억한다.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이미 북미에서 흥행 실패작 판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허리케인으로 아버지를 잃은 형제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재난영화의 일반적인 오프닝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1992년 아버지와 두 아들은 허리케인의 위험 속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합니다. 동생은 이 모든 것이 형 탓이라고 투덜거립니다. 형이 연을 날린다며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때 아버지가 몰던 트럭은 작은 사고를 일으켜 도랑에 빠져 버리고, 아버지는 어른 두 아들은 빈 집으로 대피시키고 차를 도랑에서 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때 허리케인이 이들을 급습하고 아버지는 두 아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일반적인 재난영화들은 항상 이런 식입니다. 주인공에서 재난에 의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겨주고, 성인이된 주인공이 스스로 재난을 헤쳐나가며 트라우마를 이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허리케인 하이스트]도 마찬가입니다. 허리케인으로 아버지를 잃은 윌(토비 켑벨)은 기상학자가 되어 있습니다. 동료들은 그에게 허리케인을 무서워하면서 기상학자가 되었다며 놀립니다. 하지만 그는 이상 기온으로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허리케인의 위력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연구를 계속 하고 있으며, 그럴수만 있다면 아버지와 같은 무고한 희생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최악의 허리케인이 해안 도시 걸프포트를 급습하는 상황. 윌은 빨리 허리케인을 피해 대피해야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걸프포트에서 술에 찌든 삶을 살고 있는 형, 브리즈(라이언 콴튼)를 구하기 위해 오히려 걸프포트로 방향을 틉니다. 이제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최악의 허리케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윌과 브리즈의 활약을 보여주며 허리케인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와 서로에 대한 화해를 보여주면 됩니다. 


허리케인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잃은 윌

그는 허리케인과 맞서 싸우기 위해 기상학자가 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 이건 재난영화의 공식이다.



작전 실패 경험이 있는 재무부 특수요원


만약 [허리케인 하이스트]가 윌이 허리케인에 대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형, 브리즈와 화해를 한다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재난영화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허리케인에 대한 재난영화가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얀 드봉 감독의 1996년작 [트위스터]가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과거 토네이도로 아버지를 잃고 기상학자가 된 조(헬렌 헌트)의 이야기로 [허리케인 하이스트]의 설정과 매우 비슷합니다. 2014년에 개봉한 [인투 더 스톰]은 실버톤이라는 작은 마을에 불어닥친 슈퍼 토네이도에 의한 재난을 보여주며 [트위스터]보다 진일보한 특수효과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최악의 허리케인에 한가지 요소를 더합니다. 바로 허리케인으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틈타 미연방 재무부 금고의 6억 달러를 훔치려는 범죄 조직의 음모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재무부 특수요원 케이시(매기 그레이스)가 끼어듭니다. 그녀는 첫 등장부터 돈을 재무부 금고로 이송하기 위해 도로를 막고 있는 민간인 차를 들이박고, 담배밭을 가로지르는 터프함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작전 실패로 동료를 잃은 경험이 있다는 조금은 뻔한 과거 이력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설정도 처음은 아닙니다. 1998년 영화 [하드 레인]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습니다. [하드 레인]은 현금운송용 차량이 폭우로 인한 강의 범람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자 현금을 노린 범죄 조직이 현금운송 차량을 공격한다는 내용입니다. [하드 레인]에서는 현금운송 차량의 운전기사 톰(크리스챤 슬레이터)이 범죄조직으로부터 현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자! 이쯤되면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새로운 영화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의 이전 영화보다 재미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롭 코헨 감독은 [트위스터], [인투 더 스톰], [하드 레인]을 넘어서는 [허리케인 하이스트]만의 영화적 재미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예쁜데 터프하기까지한 케이시.

그녀는 남자형제가 여섯이나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여자 형제만 둘있는 내가 터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하다.



살상을 금지하는 착한(?) 악당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제게 기본적인 재미는 안겨줬습니다. 특히 걸프포트를 급습한 강력한 허리케인 장면은 꽤 좋았습니다. 물론 [트위스터], [인투 더 스톰]의 토네이도처럼 특별한 볼거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소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화면 가득 불어닥친 허리케인 장면은 충분히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퍼킨즈(랄프 이네슨)가 이끄는 범죄 조직은 허술했습니다. 폐기처분할 6억 달러를 보관하고 있는 미연방 재무부 금고가 그렇게 허술할리가 없는데, 퍼킨즈 일당은 해커 두명의 용병 몇 명으로 미연방 재무부 금고의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군인들을 감금하여 점령하기까지합니다.   

글쎄요. 롭 코헨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퍼킨즈 일당은 극악무도한 범죄 조직은 아닙니다. 그들은 미연방 재무부 금고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마취총을 쏘며 살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기까지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브리즈가 퍼킨즈 일당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윌과 케이시의 활약으로 퍼킨즈 일당이 죽어 나가지만, 퍼킨즈는 극한의 인내심을 보이며 케이시를 마지막까지 살려줍니다.

무려 6억 달러를 노리는 범죄 조직입니다. 총으로 무장을 했고, 미연방 재무부 금고를 지키고 있는 특수부대와 총격전도 벌여야합니다. 그러한 퍼킨즈 일당이 살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다니 조금 긴장감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롭 코헨 감독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후반부에 퍼킨즈가 모레노를 쏴 죽이는 장면을 넣으며 긴장감을 높이려 하는데, 저는 오히려 이러한 장면이 더 이상했습니다. 잔인하려면 처음부터 잔인하던가, 그렇지 않다면 끝까지 잔인하지 않던가, 금고를 연 이상 케이시를 살려둘 필요가 없었는데 모레노만 죽이고, 케이시를 인질로 잡는 퍼킨즈의 선택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수 많은 범죄 스릴러 영화를 봤지만

이렇게 살상을 금지하는 착한(?) 악당은 처음이다.

급기야 자신의 연인을 죽인 케이시를 끝까지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장면에서는

얘가 왜 이러는지 속사정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허리케인은 막강한데, 하이스트는 허술하다.


전체적으로 저는 [허리케인 하이스트]를 제법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단 최악의 허리케인에 의한 볼거리가 영화 내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습니다. 퍼킨즈 일당이 좀 더 극악무도했다면, 그래서 사람 죽이는 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마구 총을 쏴댔다면 영화의 긴장감이 훨씬 높아졌을텐데 롭 코헨 감독은 어찌된 영문인지 긴장감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포기해버립니다. 그 결과 재난영화로써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재미있었지만, 범죄 스릴러로써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긴장감이 부족한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태풍의 눈을 이용해 현금수송 차량을 타고 도주하는 퍼킨즈 일당을 윌과 브리즈의 양면 작전으로 막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6억 달러를 세대의 현금수송 차량에 실은 퍼킨즈 일당. 그런데 그들을 막아내는 윌과 브리즈의 작전이라는 것이 현금수송 차량 지붕으로 올라가 운전석을 점령하는 것 뿐입니다. 치밀한 범죄 스릴러 영화라고 하기엔 뭔가 허술합니다.

물론 이 장면에서도 온화한 태풍의 눈과는 달리 마주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태풍의 벽은 무시무시했습니다. 대형 현금수송 차량 따위는 종잇장처럼 날려버리는 어마무시한 위력이라니... 결국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막강한 허리케인과 허술한 하이스트를 보여주며 영화를 끝내고맙니다. 그래도 롭 코헨 감독에게 위로한 말을 전한다면... 최소한 [스텔스], [미이라 3 : 황제의 무덤], [알렉스 크로스]보다는 재미있었으니 차기작인 [스피드 헌터]는 좀 더 나은 영화적 재미를 보이지 않을까요? 아직 저는 롭 코헨 감독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보여준 롭 코헨 감독의 연출력이라면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이보다 훨씬 재미있을 수 있었다.

도대체 살상을 금지하는 착한 악당 컨셉은 왜 넣어서 스스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지...

그래도 난 아직 롭 코헨 감독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