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앨리스 죽이기> - 다음 지구가 좋은 곳이기를...

쭈니-1 2018. 3. 15. 16:35



착한 소설은 이제 그만!!!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있다> 이른바 프레드릭 배크만 3부작을 연달아 읽었더니 더이상 착하기만한 무자극 소설은 한동안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브릿마리 여기있다>를 읽은 후 제가 선택한 매튜 펄의 <디킨스의 최후>라는 역사 추리소설입니다. 하지만 주말에 웅이와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앨리스 죽이기>라는 이상한 제목의 추리소설을 발견하면서 <디킨스의 최후>는 뒤로 밀렸습니다.

그동안 집과 회사에 있던 책 위주로 2018년의 독서 목록을 채워나갔습니다. 그렇기에 제한된 책 목록에서 읽어야할 책을 골라야 했지만 제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들어서 처음으로 <앨리스 죽이기>를 구입한 것입니다. 솔직히 조금 충동적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살짝 비튼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착한 소설에 지친 제게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연쇄살인마 누명을 쓴 앨리스


<앨리스 죽이기>는 우선 독특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앨리스 죽이기>의 이야기는 앨리스가 도마뱀 빌과 이상한 대화(이상한 나라에서의 대화는 전부 이상하다)를 나누는 사이 달걀 험프티 덤프티가 여왕의 정원 담 위에서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3월 토끼와 미치광이 모자장수는 살인사건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그 사이 희토끼가 사건현장에서 앨리스를 봤다고 증언하며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의 살인자로 누명을 씁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매일 밤 이상한 나라의 꿈을 꾸는 대학원생 아리의 꿈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상한 나라의 꿈에 의문을 갖던 아리. 그런데 같은 대학의 연구원 오지가 옥상에서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되고, 동기 이모리도 자신과 같은 이상한 나라의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이모리는 오지가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였다며 이상한 나라와 지구의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7일 안에 진범을 잡아야 한다.


험프티 덤프티에 이어 그리핀, 그리고 흰토끼까지 살해되자 3월 토끼와 미치광이 모자장수는 앨리스가 범인임을 확신합니다. 만약 미치광이 모자장수가 이 사실을 여왕에게 보고한다면 앨리스는 사형될 것이 분명하고,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죽는다면 지구의 아리 역시 죽게 될 것입니다. 미치광이 모자장수가 앨리스에게 진범을 밝히라고 허용한 시간은 단 7일 뿐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앨리스를 도와주던 도마뱀 빌마저 살해되고, 도마뱀 빌과 연결된 이모리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모든 것을 혼자 해야만 하는 앨리스, 그리고 아리. 그때 도마뱀 빌이 죽으며 남긴 다잉 메시지가 큰 힌트가 됩니다. 도마뱀 빌은 죽으면서 '공작 부인이 범인일리 없다'라는 다잉 메시지를 남겼는데, 이를 토대로 앨리스와 아리는 결국 진범을 밝혀낸 것입니다. 하지만 진범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진범의 함정에 빠진 앨리스는 죽을 위기에 빠집니다.



영리한 반전, 그리고 잔인했던 묘사 (마지막 반전 언급)


<앨리스 죽이기>는 마치 동화같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처럼 동화 느낌의 대사와 상황이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주요 소재이다보니 중간 중간 잔인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그래도 살해된 것이 사람이 아닌 의인화된 동물이라서 어느정도 참고 넘어갈 수준은 됩니다. 문제는 마지막에 진범이 여왕에게 처형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굉장히 잔인한 고어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앨리스 죽이기>의 동화같은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던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꽤 좋았습니다. <앨리스 죽이기>는 이상한 나라의 캐릭터와 지구의 캐릭터가 누구일지 알아맞추는 것에 추리하는 재미가 있는데, 처음부터 앨리스가 아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끔 속임으로써 마지막 완벽한 반전을 만들어냅니다. 조금만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지구의 히로야마 부교수가 공작부인이 아닌 메리 앤임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아리 역시 앨리스가 아닐 수도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을텐데... 솔직히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고, 지구가 붉은 왕의 꿈이라는 설정은 상식을 깬 신선한 설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체셔 고양이의 한마디도 여운이 남았습니다. "다음 지구가 좋은 곳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