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브릿마리 여기있다> - 지긋지긋한 숙제를 끝낸 뒤의 홀가분함

쭈니-1 2018. 3. 12. 15:20

 

 

 

 

드디어 내가 프레드릭 배크만 소설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

 

구피와 웅이가 그토록 추천해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제게 지루함만 안겨줬습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지루했고,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질질 늘어지는 소설의 전개 때문에 지루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집에 있는 마지막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인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읽지 않고 넘어가려했습니다.

하지만 <브릿마리 여기있다>의 첫 부분을 읽은 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40년동안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는 60대 여성 브릿마리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후 낯선 동네에서 독립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 소설의 첫 부분은 직장을 얻어야하는 브릿마리와 직업소개소 직원의 신경전이 담겨져 있는데, 저는 브릿마리의 엉뚱하면서도 원칙적인 모습이 너무 웃겨 내가 <브릿마리 여기있다>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 확신을 하며 소설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는 달리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뻔해지더니 후반부엔 끝날듯 끝나지 않는 질질끄는 전개 때문에 "왜 이렇게 안 끝나?"라며 화를 내야만 했습니다. 결국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보다 훨씬 실망스러운 소설이었습니다.

 

 

몰락해가는 작은 마을, 그리고 축구

 

우리나라에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부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너무 소소하고, 너무 착하고, 너무 길기까지한 프레드릭 배트만의 소설은 아무래도 제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나봅니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경제위기로 몰락해가는 보르그라는 작은 마을에 브릿마리가 레크레이션 센터의 관리자로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타고난 결벽증 때문에 까다롭고, 늘 과하게 솔직하여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 브릿마리. 그녀는 축구가 인생의 전부인듯한 보르그 사람들과 동화되어가며 닫혀진 마음을 알고 한층 성숙해집니다. 사실 브릿마리라는 캐릭터는 꽤 매력적입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초, 중반까지도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였는데, 후반에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언니의 죽음으로 어릴때부터 끊임없이 눈치보며 어떻게든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만 했던 그녀의 사연은 충분히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할머니가 미안하나도 전해달랬어요> 덕분에 주인공 캐릭터를 설명해야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요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브릿마리 여기있다>의 이야기는 몰락해가는 작은 마을과 축구라는 너무 평범해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전 축구를 싫어하기까지하니 <브릿마리 여기있다>를 사랑할 그 어떤 건덕지도 없었던 셈입니다.

 

 

이제 나는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몰두하련다.

 

<브릿마리 여기있다>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저는 "더럽게 재미없네. 빨리 좀 끝내."라며 책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브릿마리의 남편이 브릿마리를 찾아와 용서를 구하는 중후반 부분부터 저는 이미 이 소설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어서 <브릿마리 여기있다>를 빨리 읽고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나니 지긋지긋한 숙제를 끝낸 뒤의 홀가분함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제 저희 집에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남아 있지 않고, 설령 구피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새로운 소설을 구입하더라도 당당하게 "난 안 읽을래."라고 선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지난 일요일, 영풍문고에 들린 저는 진정 제가 읽고 싶은 제 취향의 소설을 고르고 또 골랐습니다. 항상 집에, 회사에 있는 소설 중에서 선택을 했는데, 대형서점의 수 많은 책들 속에서 고르려니 힘들더군요. 그 결과 동화와 추리소설의 교묘한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이는 <앨리스 죽이기>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겉보기만 봐서는 제 취향의 소설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2018년에 처음으로 제 돈으로 구입한 책이 되겠습니다. 지긋지긋한 숙제를 끝냈으니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