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BOOK STORY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 이제 나도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과 점점 친해지려나보다.

쭈니-1 2018. 3. 6. 11:11



프레드릭 배크만은 나하고 안맞나보다.


솔직히 저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못했습니다. 이미 영화로 봤기 때문에 내용을 거의 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베라는 남자>를 읽는데 무려 8일간이나 소요해야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구피와 웅이는 "어떻게 <오베라는 남자>가 재미없을 수 있냐?"며 의아해하지만... 영화마다 취향이 다르듯, 소설 역시 자신의 취향이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오베라는 남자>에 이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입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영화를 통해 내용을 미리 알고 있지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오베라는 남자>와는 달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522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의 첫 장을 넘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저는 <오베라는 남자>만큼이나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역시 제겐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만 읽으면 어느새 눈꺼플이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단 4일만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일요일 아침부터 제 왼쪽 발등이 너무 아파 집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책을 읽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여덟살이 되는 괴짜 꼬마 엘사의 모험


<오베라는 남자>가 59세 남자 오베를 통해 소시민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전했다면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이제 곧 여덞살이 되는 일곱살 꼬마 여자아이 엘사를 통한 이야기입니다. 엘사는 오베만큼이나 괴짜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괴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엘사의 유일한 친구가 누구든 미치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 할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죽음을 맞이하고, 엘사에게 남겨진 것은 아파트 주민에게 전달해야할 할머니의 미안하다는 편지 뿐입니다.

분명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흥미로운 요소가 꽤 많은 소설입니다. 할머니가 엘사에게 들려준 깰락말락 나라의 이야기는 판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깰락말락 나라의 등장 인물인줄 알았던 캐릭터들이 현실속 엘사의 아파트 주민임이 밝혀지는 장면은 꽤 치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후반에는 <오베라는 남자>에는 없던 위협이 엘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잔잔한 <오베라는 남자>와는 달리 프레드릭 배크만은 흥미 요소를 꽤 많이 만들어 넣은 셈입니다.

게다가 엘사는 일곱살 꼬마아이답게 '해리포터'와 '스파이더맨', '엑스맨'을 좋아합니다. 그러한 부분들도 제게 흥미를 이끌어냈습니다. 저는 40대 중반의 아저씨이지만, 저 역시도 엘사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이야기인가?


분명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오베라는 남자>보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등장 인물은 많지만, 내용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기에 300~400페이지 가량으로 이야기를 줄였다면 훨씬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을 것 같습니다. 후반 내용이 뻔히 예상되는데, 그렇게 예상되는 후반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양새가 저를 지루하게 만든 셈입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읽는 도중, 저는 엘사의 아파트 주민 중에서 브릿마리라는 여성이 가장 짜증스러웠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증오받고 싶어 안달이 난 브릿마리를 보며 제가 다음에 읽어야할 소설이 <브릿마리 여기 있다>라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브릿마리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책의 후반에 밝혀지며 그녀에 대한 호감도가 약간 높아졌습니다. 그 덕분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읽은 후 <브릿마리 여기 있다>를 곧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통해 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과 맞지 않다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첫 부분을 읽은 이후에는 그의 소설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이제 고작 50페이지를 읽었는데 뒷부분이 궁금해졌거든요. 이제 저는 슬슬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과 친해지려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