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폴 킹
주연 : 휴 그랜트, 브렌단 글리슨, 샐리 호킨스, 휴 보네빌
더빙 : 벤 위쇼
개봉 : 2018년 2월 8일
관람 : 2018년 2월 10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우리말 더빙은 싫다.
토요일 아침, 일찌감치 저희 가족 모두 [조선명탐정 : 흡혈괴마의 비밀]을 보고 왔습니다. 이제 주말에 봐야할 영화는 [패딩턴 2]만 남았습니다. 일단 [조선명탐정 : 흡혈괴마의 비밀]을 토요일에 봤으니 [패딩턴 2]는 일요일에 봐야만 했습니다. 구피는 엄격하게 웅이만큼은 하루에 한편의 영화만 봐야한다고 주장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일요일에 [패딩턴 2]를 볼 수 있는 마땅한 시간대가 없다는 점입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서 일요일 낮 시간대에 영화를 봐야 하지만 대부분의 낮 시간대엔 [패딩턴 2] 우리말 더빙버전만이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말 더빙버전으로 영화를 본다면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없을 뿐더러, 극장 안을 가득채운 어린 관객들의 시끄러움을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피의 '1일 1영화' 원칙을 깨고 토요일 저녁에 [패딩턴 2]를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말 더빙 버전이 아닌 자막 버전을 본다는 안도감도 잠시, 극장 안에는 어린 꼬마 관객 한명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꼬마 관객의 부모가 '쉿 조용히해.'라고 간혹 주의를 주긴 했지만 부모의 주의에 신경쓰지 않을만큼 꼬마 관객의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극장 안에는 성인 관객이 대부분이었고, 모두들 눈쌀을 찌푸렸지만, 꼬마 관객의 부모는 요지부동이더군요. 다른 관객에게 이처럼 피해를 줄 정도면 데리고 나갈 법도 한데...
영화가 끝나고 웅이는 '더빙 버전에도 시끄러운 꼬마 관객은 있네요.'라며 한숨을 내쉽니다. 저 역시 웅이가 어렸을 적부터 극장에 데려갔었습니다. 어린 꼬마 관객이 대부분인 우리말 더빙 버전의 애니메이션을 보러갈 땐 웅이도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떠들긴 했지만, 성인 관객이 많은 자막 버전의 영화를 볼 땐 웅이에게 철저하게 사전 교육을 시킴으로써 다른 관객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영화를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잘 알지만, 그래도 남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면 안된다는 에티켓을 먼저 교육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그게 안된다면 다른 꼬마 관객들과 함께 우리말 더빙 버전의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극장은 시끌벅적한 축제 현장이 아니다.
비싼 관람료를 내고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이다.
그러한 타인의 영화 감상을 지켜줄 자신이 없다면
집에서 맘껏 떠들며 영화를 보면 된다. 제발...
3년 만에 돌아온 말하는 곰 '패딩턴'
예상하지 못했던 시끄러운 꼬마 관객 때문에 영화에 대한 제 집중력은 조금 흐트러졌지만 그래도 [패딩턴 2]는 감히 전편의 재미를 넘어섰다고 장담할 수 잇을 정도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2015년에 개봉한 [패딩턴]은 페루의 정글을 떠나 홀로 영국에 도착한 꼬마 곰 '패딩턴'의 모험을 담았습니다. '패딩턴'은 영국에서 동화 삽화가인 매리(샐리 호킨스)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패딩턴'을 박제하려는 밀리센트(니콜 키드먼)의 위협으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패딩턴]은 말 하는 곰이 영국 런던에서 모험을 한다는 다소 만화적인 설정을 저와 같은 어른 관객에게도 완벽하게 어필하며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북미 7천6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2억6천8백만 달러)
[패딩턴 2]는 '패딩턴'이 영국에 온지 3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엿한 런던생활 3년차로 현지 적응에 완료한 '패딩턴'은 매리 가족과도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패딩턴'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페루의 은퇴한 곰 쉼터에 있는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고르는 것입니다. 굉장히 특별한 생일 선물을 해주고 싶지만, 좀처럼 특별한 선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영국의 랜드마크를 소재로한 팝업북이 눈에 띈 것입니다. 영국에 오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루시 숙모를 위해 '패딩턴'은 팝업북을 루시 숙모의 선물로 찜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팝업북'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 '패딩턴'을 이발소 보조, 아쿠아리움 청소, 창문 닦기 등 닥치는 알바를 하며 돈을 모읍니다. 그런데 팝업북을 갖고 싶었던 것은 '패딩턴'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슈퍼스타였던 피닉스(휴 그랜트) 역시 팝업북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피닉스는 변장한채 팝업북을 훔치고, 피닉스의 범죄 현장을 목격한 '패딩턴'은 피닉스를 쫓다가 오히려 팝업북 도둑 누명을 씁니다. 감옥에 갇힌 '패딩턴'. 그에겐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알바 마스터가 된 '패딩턴'
그가 알바를 하면서 벌이는 귀여운 소동극은
'패딩턴'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순진한 '패딩턴', 흉악범이 득실거리는 감옥에선 어떻게 버틸까?
[패딩턴]은 순진하고 귀여운 아기곰 '패딩턴'이 영국 런던이라는 삭막한 도시에서 적응하며 매리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패딩턴 2]는 영국 런던으로도 모자랐는지 아예 '패딩턴'을 감옥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곳으로 밀어 넣습니다. 아무리 런던이 삭막한 도시라고해도 흉악범만 모아 놓은 감옥과 비교한다면 천국과도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귀엽고 순진한 아기 곰 '패딩턴'은 무시무시한 감옥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패딩턴 2]의 재미는 바로 '패딩턴'과 감옥의 죄수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은 극과 극의 존재가 서로 어우러지는 과정을 재미있게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감옥에서 세탁일을 하게된 '패딩턴'은 빨간 양말 하나 때문에 죄수복을 전부 핑크색으로 물들여 놓고, 아무도 건드려서는 안될 취사담당 죄수인 너클스(브렌단 글리슨)에게 식사가 맛 없다는 옳은 소릴 했다가 최악의 고비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패딩턴'의 태도와 극강의 무기 마멀레이드입니다. '패딩턴'이 항상 모자 안에 숨겨 놓은 마멀레이드 샌드위치를 맛본 너클스는 마멀레이드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패딩턴'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사실 서로 상극인 귀여움과 감옥을 먼저 매치시킨 것은 [슈퍼배드 3]였습니다. [슈퍼배드 3]는 귀여운 미니언을 감옥에 가둠으로써 미니언의 또다른 매력인 터프함을 찾아냈습니다. 그와는 달리 [패딩턴 2]는 '패딩턴'을 감옥에 넣음으로써 오히려 '패딩턴의 기존 매력을 극대화시킵니다. 루시 숙모의 가르침을 받아 어디에서건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패딩턴'. 그러한 그의 순진한 행동은 처음엔 위험천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감옥의 다른 죄수들 또한 '패딩턴'의 순진함에 매료되어, '패딩턴'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줍니다.
핑크색 죄수복을 입은 흉악범들.
그들은 처음엔 '패딩턴'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으르렁거리지만
결국엔 '패딩턴'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다.
이건 모두 마멀레이드의 힘???
니콜 키드먼에 이은 휴 그랜트의 악당 연기
'패딩턴'이 한층 강화된 귀여움으로 관객의 마음을 녹이는 동안, 영화의 또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악당 피닉스는 팝업북에 숨겨진 보물의 단서를 찾아 신들린 변장술을 선보입니다. [노팅힐]의 전세계적 흥행성공으로 한때 로맨틱 코미디의 왕자로 군림했던 휴 그랜트의 악당 연기가 돋보이는데, 피닉스의 변장술은 마치 2005년에 개봉한 [레모니 스니캣의 위험한 대결]의 울라프 백작(짐 캐리)을 보는 것만 같아 반가웠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짐 캐리는 무얼 하고 있는지...)
이렇듯 개성강한 악당은 [패딩턴]에서부터 이어진 시리즈의 전통입니다. [패딩턴]의 악당은 박제사인 밀리센트는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패딩턴'에게 집착합니다. 그러한 말리센트를 연기한 배우는 무려 니콜 키드먼입니다. 니콜 키드먼은 [황금 나침반]에서 악당을 연기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패딩턴]에서처럼 처참하게 망가지진 않았습니다. 매력적인 배우를 망가뜨리는 재미. 그것은 [패딩턴]의 말리센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패딩턴 2]의 휴 그랜트 역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특히 휴 그랜트가 수녀로 변장하는 장면에서 극장안은 잠시 술렁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수녀로 변장했다가 위기의 순간 추기경으로 모습을 바꾸는 놀라운 임기웅변도 대단했습니다. 피닉스의 놀라운 활약은 감옥에서 해피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는 '패딩턴'과 더불어 [패딩턴 2]의 최고 재미입니다. 참고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 중간에 펼쳐지는 피닉스의 감옥에서의 뮤지컬 쇼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악당 연기와 깜짝 놀랄 변장, 그리고 화려한 뮤지컬 쇼까지... 확실한 것은 [패딩턴 2]에서 휴 그랜트의 매력은 그의 최근 영화 중에서도 최고였습니다.
2007년에 개봉한 [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이후
휴 그랜트는 [패딩턴 2]의 피닉스처럼 한물간 배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연기를 보니
조만간 휴 그랜트에게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액션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패딩턴 2]의 마무리는 액션입니다. 사실 영화 초반 떠돌이 개를 타고 부랑자로 변장한 피닉스를 쫓는 장면에서 이미 [패딩턴 2]만의 아기자기한 액션은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에서 기차 액션을 연상하게 만드는 '패딩턴'과 피닉스의 마지막 대결은 [패딩턴]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케일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리고 '패딩턴' 혼자가 아니라, 매리 가족 개개인의 도움이 하나씩 덧붙여져 피닉스를 무찌르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짜여져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던 저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아쉽게도 [패딩턴 2]의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은 전편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평가와 관람객의 만장일치 호평을 받고 있지만 북미 흥행성적은 현재까지 고작 3천8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성적은 2억5백만 달러입니다. 분명 [패딩턴]에 비해 제작비가 늘어났을텐데, 오히려 흥행성적은 [패딩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3편이 제작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패딩턴 2]를 너무 재미있게 본 저로써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삭막한 대도시 런던을 훈훈하게 만든 낙천적인 꼬마 곰 '패딩턴'의 모험은, 하루 하루 전쟁과도 같은 일터에서 상사 눈치를 보며 버텨야 하는 저와 같은 직장인에겐 꿀맛같은 휴식과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물론 압니다. 말 하는 곰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패딩턴'처럼 인간들과 어우러져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들 어떻습니까? 영화를 보며 잠시동안이라도 행복감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저는 충분합니다. [패딩턴 2]는 그런 영화입니다. 감옥의 죄수들이 '패딩턴'으로 인하여 행복을 느끼듯, 감옥과 다름없는 사회 속에서 지친 제게도 영화를 보는 동안 행복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가끔 나는 소위 말하는 애들 영화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은 비단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삭막한 현실과는 너무 다른 낙천적인 영화속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은 영화처럼 낙천적이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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