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염력] - 너무 가벼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쭈니-1 2018. 2. 6. 10:40



감독 : 연상호

주연 : 류승룡, 심은경, 박정민, 김민재, 정유미

개봉 : 2018년 1월 31일

관람 : 2018년 2월 3일

등급 : 15세 관람가



[염력]은 왜 [부산행]이 되지 못했을까?


저희 가족의 2018년 2월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에서 최고 기대작은 [염력]이었습니다. [부산행]으로 충격적인 한국형 좀비 영화를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부산행]의 프리퀼인 [서울역]에서 더빙에 참여하며 부녀로 호흡을 맞추었던(반전이 있긴 하지만...) 류승룡과 심은경이 이번엔 진짜로 부녀로 출연합니다. 최근 [그것만이 내 세상]의 흥행 성공으로 한창 뜨고 있는 젊은 배우 박정민과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정유미의 악역 연기까지 출연진이 매우 화려합니다. 게다가 한국형 좀비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어낸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한국형 초능력 히어로 영화를 만든다고해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쯤되면 [염력]은 [부산행]의 흥행 신화를 다시한번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염력]이 개봉되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개봉 첫날엔 수요일임에도 불구하고 26만 관객 동원이라는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던 [염력]은 이후 호불호가 갈리면서 일일 관객수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결국 주말동안 47만, 누적관객 84만이라는 기대이하의 흥행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개봉 5일차인 일요일에는 [그것만이 내 세상]에게 일일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줬으니, 현재 분위기로는 반등의 여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염력]은 제 2의 [부산행]이 되지 못한 것일까요? 이미 재미없다는 소문이 나돌던 지난 토요일 오후, 저희 가족은 [염력]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염력]이 제 2의 [부산행]이 되지 못한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하고 왔습니다. 분명 초능력 영웅 이야기와 대한민국의 현실을 교묘하게 맞춰놓은 연상호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영화가 너무 가볍게 만들어져 그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부산행]처럼 처절한 분위기였다면 이토록 실망스럽지는 않았을텐데...


네이버 영화에서는 [염력]의 장르를 코미디로 소개하고 있다.

SF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고, 코미디라니...

안타깝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현주소이다.



평균이하 아빠가 슈퍼 히어로가 되기까지...


[염력]은 은행 경비원 석헌(류승룡)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염력]의 공식 줄거리에는 석현을 '평범한 은행 경비원'이라고 표현했지만 제가 보기엔 그에게 평범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평균 이하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약간은 한심합니다. 은행에 배치된 인스턴트 커피를 몰래 빼돌리고, 청소 아주머니가 모든 것을 뒤집어써도 나몰라라 도망치기도 합니다. 그의 한평 남짓 방에는 먹다남은 음식 쓰레기와 술병 등 온갖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특히 그가 한심한 것은 10년전 아내와 딸을 버리고 야밤도주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보증을 잘 못서주는 바람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딸 루미(심은경)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아빠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유성으로 인하여 오염된 약수물을 마시고 '염력'이 생깁니다. 과연 평범한 사람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이 궁금하다면 조쉬 트랭크 감독의 2012년작 [크로니클]을 보시면 됩니다. [크로니클]의 평범한 10대 고등학생들은 우연히 발견한 땅굴에서 이상한 물체를 본 후 초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초능력을 장난치는데 사용을 하다가 점점 제어할 수 없을만큼 강력해진 초능력 때문에 결국 도시를 혼란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그래도 다행히 석헌은 철없는 10대 고등학생이 아닌 성인이기에 자신에게 생긴 초능력으로 위험한 장난을 하기보다는 돈을 벌 궁리부터합니다. 기억하시나요?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도 그랬었습니다.

문제는 10년만에 딸 루미에게 연락이 오면서부터입니다. 석헌이 집을 나간 후 루미는 엄마와 함께 재래시장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루미의 가게가 있는 시장이 재개발되며 루미는 길거리로 내쫓기게 됩니다. 이에 루미와 시장 상인들은 내쫓기지 않기 위해 버텼고, 그러한 과정에서 루미의 엄마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루미에게 보호자는 석헌뿐. 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석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초능력을 시장 철거민을 위해 사용합니다.


10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어린 나이에 애어른이 된 루미.

조금은 전형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은경과 너무 잘 어울렸다.

심은경은 [수상한 그녀]처럼 애어른과 귀여움 사이를 잘 조율한다.



후반를 위해 중반부터 분위기를 심각하게 끌어올렸어야 했다.


영화의 초반이 평균이하로 조금 한심한 석헌으로 인하여 조금은 가벼웠다면 석현이 루미로 인하여 철거민 문제와 마주하게 되는 중반부터는 심각한 분위기로 변환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연상호 감독은 중반을 오히려 초반보다 더 가볍게 이끌어냅니다. 철거 용역업체의 민사장(김민재) 일당이 철거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석헌이 '염력'으로 용업 깡패들을 물리치며 영웅이 되는 과정은 분명 속시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위기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염력]은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난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사건입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철거민이 보상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불법적인 시위를 벌였고,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으로 화재가 났다고 발표하며 여론은 오히려 철거민에게 안좋은 쪽으로 흘러 갔습니다. 결국 철거민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이 구속되어 4년형을 받는 등 철거민 20명이 기소되었습니다. 용산 참사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1월 25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에 담겨져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염력]이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한 연상호 감독의 연출 방향은 저 역시 공감합니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다면 영화 자체가 관객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분위기입니다. 용산 참사라는 묵직한 소재를 시종일관 너무 가볍게 풀어나간 것입니다. 물론 영화의 후반는 중반과는 달리 진지해졌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석헌이 루미의 문제에 뛰어 들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서서히 심각해지고, 후반부에 클라이막스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염력]은 중반까지 너무 가볍게 이끌어가다가 후반에 가서 갑자기 분위기를 심각하게 만드니 그러한 심각한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오히려 헛웃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염력]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

민사장 등 용역 깡패들이 이렇게 웃겨주니,

영화 후반 장면에서 긴장감이 느껴질리가 없다.



인상적인 악당 홍상무는 더 악독했어야 했다.


[염력]의 분위기가 너무 가벼워진 근본적인 문제는 악역이 너무 말랑말랑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민사장과 민사장 부하(태항호)가 코믹한 분위기를 이끌어낼 때부터 불안불안했습니다. 현실의 용역 깡패는 그들보다 휠씬 무시무시할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연상호 감독은 그들을 마치 [나홀로 집에]의 2인조 강도처럼 용역 깡패들을 코믹하게 만들어냈습니다. 그러한 민사장보다 더 큰 문제는 홍상무(정유미)입니다. 홍상무는 첫 등장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해맑은(?) 악역의 이미지를 악역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우 정유미는 완벽하게 재현해 놓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홍상무를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과 비교했는데, 과연 그에 필적할만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홍상무가 석헌을 타깃으로 삼으며 석헌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석헌은 은행 경비원으로 있을때 훔친 인스턴트 커피로 인하여 절도죄로 유치장에 갇힙니다. 그것은 철거민과 석헌을 떨어뜨리려는 홍상무의 계략입니다. 그러면서 언론은 석헌을 위험한 인물이라며 여론조성을 합니다. 군사전문가는 석헌의 뒤에 북한이 있을 것이라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해댑니다. 유치장에서 석헌과 마주앉은 홍상무는 석헌에게 있는 자들의 노예임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살라고 협박합니다. [엑스맨]에서 사람들이 돌연변이들을 무서워하듯이, [염력] 역시 석헌은 초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 위험한 존재, 죽여야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홍상무는 일반인들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석헌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입니다. 석헌이 경찰서를 탈출해서 루미를 구히기 위해 폭주하는 장면에서부터 홍상무의 위협은 더이상 없습니다. 그저 해맑은 표정으로 '우와'하며 박수를 쳐줄 뿐입니다. 석헌이 이미 위험 인물로 여론이 조성되어 있다면 경찰은 석헌에게 발포를 하며 제압하려 했어야 하지만, 석헌이 스스로 자수할때까지 그저 석헌의 활약을 멍하니 바라볼 뿐입니다. 악당이 약하면 슈퍼 히어로도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염력]의 악당 민사장과 홍상무는 약하다못해 귀엽고, 해맑습니다. 그러니 석헌의 활약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밖에요.


해맑은 악당 홍상무

분명 연상호 감독은 독특한 악당 캐릭터를 만들어 냈지만

홍상무를 악당다운 악당으로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홍상무가 악당다워야 석헌의 활약이 더욱 빛나보일텐데...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특수효과를 구축했어야 했다.


석헌이 경찰서를 탈출하는 장면부터가 [염력]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습니다. 철거민을 향한 경찰 특공대의 과잉진압, 루미를 살리기 위해 폭주하는 석헌. 이 두가지 요소가 합쳐져 관객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중반까지 그럭저럭 코믹한 분위기로 영화를 유지하던 [염력]은 클라이막스에 와서는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석헌이 하늘을 나는 어색한 특수효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루미가 위험에 빠져 석헌이 능력을 각성했다고는 하지만 석헌이 갑자기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심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석헌이 하늘을 나는 특수효과 장면이 그다지 잘 구축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수효과에 익숙해진 관객 입장에서는 이 어색한 특수효과에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 역시 잘 압니다. 우리나라 특수효과가 할리우드 특수효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억지로 어색한 특수효과로 클라이막스를 구축하기 보다는,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특수효과 장면을 조정했어야 했습니다. [부산행]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엄청난 특수효과 때문이 아닌 좀비 분장이 실감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의 흥행 성공으로 더 많은 제작비를 손에 넣었고, [염력]에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과한 욕심을 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과한 욕심은 중반까지 이어진 코믹한 분위기, 해맑은 악당, 그리고 어색한 특수효과가 한데 어우러져 [염력]의 클라이막스를 총체적 난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염력]을 보고나서 연상호 감독은 한국형 초능력 히어로의 속시원한 활약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극으로 끝난 용산 참사를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염력]을 보고나서 한국형 초능력 히어로의 속시원한 활약보다는 '아직은 한국형 초능력 히어로 영화는 이르다.'라는 한계만 느꼈습니다. 어쩌면 [염력]은 한국형 초능력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기만합니다.


석헌은 보통 사람들을 넘어서는 초능력자이다.

언론은 이미 석헌을 위험인물로 규정했고,

석헌은 루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위험인물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4년형에 감옥을 나와서 루미와 함께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비현실적인 소재의 영화일수록 내용은 현실적이어야한다.

하지만 [염력]은 비현실적인 소재에 비현실적인 전개로 일관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