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올 더 머니] - 가족의 가치에 가격을 매기려 했던 남자.

쭈니-1 2018. 2. 5. 13:01



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미셸 윌리엄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마크 월버그, 찰리 플러머

개봉 : 2018년 2월 1일

관람 : 2018년 2월 2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오죽 답답했으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했을까?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가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극장환경에서 흥행과 동떨어진 영화를 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물론 저도 잘 압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상업적인 측면과 직결되어 결정되며, 흥행성이 없는 영화가 상영관을 적게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영화가 관객과 만날 기회를 제공한 후 흥행성의 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관객과 만날 기회조차 박탈해놓고 흥행성이 없어서 상영관이 적다라고 한다면 이것 자체가 불공정한 경쟁이 됩니다. 

몇년전까지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멀티플렉스의 횡포가 점점 흉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 주전 [1급기밀]이 개봉했을 때에도 개봉 전날에서야 예매가 오픈되지 않아 저를 당혹스럽게 하더니 예매율이 낮다는 이유로 [1급기밀]을 상영하는 극장을 찾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2월 2일에 개봉한 [올 더 머니]도 마찬가입니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인데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 의혹으로 그가 나오는 장면을 모두 없애고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캐스팅하여 9일간 재촬영한 일화 등 화제성도 풍부했습니다. 하지만 [올 더 머니]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올 더 머니]의 상영관을 찾다보니 대부분의 극장에서 아침 일찍, 혹은 새벽 시간대에 [올 더 머니]를 상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올 더 머니]가 보고 싶어도 도저히 볼 수 없는 시간입니다. 이에 저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처음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최소한 개봉 일주일만이라도 교차 상영없이 하루종일 제대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즘은 관객이 영화를 직접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플렉스가 선택해준 영화를 관객이 볼 수 밖에 없게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최소한 동등한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어야 하는데, 시작 전부터 금수저와 흙수저 영화로 구분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돈만 많으면 뭐하나?

가족들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인생인 것을...

멀티플렉스도 돈만 많이 벌면 뭐하나?

영화팬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게티 3세 유괴사건


물론 제 국민청원은 하루에도 수백개씩 쏟아지는 청원 속에 금새 파묻혔습니다. 사실 먹고 살기도 퍽퍽한 요즘, 그깟 영화보기 권리에 관심을 기울여줄 사람들이 있을리가 없죠. 그래도 뭐 답답한 마음을 청와대 게시판에 하소연하고나니 속은 시원하더군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당장 영화 교차상영 금지법을 발의할텐데... 암튼 다행스럽게도 [올 더 머니]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샅샅히 뒤지다보니 금요일 저녁 6시 50분 상영을 찾아냈습니다. (전날까지는 없었는데...)  회사에서 칼퇴근을 해야하고, 저녁식사는 당연히 걸러야 하지만, 그래도 [올 더 머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급하게 예매를 완료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당연한 권리를 쟁취해놓고 들뜬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네요.

앞서 언급한대로 [올 더 머니]는 1973년 벌어진 게티 3세 유괴사건을 바탕으로한 영화입니다. 게티 3세의 할아버지는 석유 사업가이자 대부호인 진 폴 게티입니다. 24살의 나이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96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남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던 게티는 불모의 땅이라고 불리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유전을 개발시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습니다. 특히 그는 미술품 수집에 광적으로 집착했는데, 수억 달러에 해당되는 미술품을 수집, 1953년 LA 근처에 게티 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문난 수전노였습니다. 특히 손자인 게티 3세가 이탈리아에서 유괴되었을때 범인이 1,7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진 폴 게티는 단 한푼도 줄 수 없다며 단번에 거절합니다. 그에게 1,700만 달러는 푼돈에 불과했을테지만, 그는 자신이 돈을 준다면 다른 손자, 손녀들도 유괴될 것이라며 유괴범들에게 돈을 줄 생각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올 더 머니]를 연출하며 "이 이야기는 현대판 비극이며, 동시에 매우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돈이 많은 것과 없는 것, 그 사이의 공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연출변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제가 [올 더 머니]를 보고 싶어한 이유입니다.


할아버지가 자신보다 돈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을 게티 3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게티 3세는 사건 이후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았고(나라도 그랬을 듯)

그로인해 뇌졸증, 사지마비, 간부전 및 부분 시력 상실증을 앓았으며,

사건 이후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하다가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소문난 수전노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유괴범들에게 손자인 게티 3세(찰리 플러머)의 몸값을 지불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는 동안 게티 3세의 부모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한심하게도 게티 3세의 아버지인 게티 2세(앤드류 뷰찬)는 마약에 찌들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없이 가난하게 자란 게티 2세는 뒤늦게 아버지를 만나 엄청난 부를 손에 넣지만, 그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결국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됩니다. 

몸값을 지불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게티, 마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어 버린 게티 2세. 결국 게티 3세를 살리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은 어머니인 게일(미셸 윌리엄스)입니다. 게티 2세와 이혼한 게일은 아이들의 양육권을 갖기 위해 게티의 재산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에겐 게티 3세의 몸값을 지불할 돈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게티를 찾아가 몸값을 내달라고 애원하는 일 뿐입니다. 하지만 게티는 게일을 만나주지도 않고, 협상가인 플래처 체이스(마크 월버그)만 게일 앞에 던져 놓습니다.

[올 더 머니]는 돈 밖에 모르는 게티와 강한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게일을 비교하며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유괴범과의 통화에서 오히려 배짱을 튕기는 플래처를 수화기로 한대 후려치는 장면이라던가, 게티 3세로 보이는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게일이 시체를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게티 3세가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 등, 게일은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만큼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유괴된 그 힘든 시간을 꿋꿋히 버텨내는 그녀의 모습은 진정 멋졌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서 섹시한 마를린 먼로를 연기했던 그녀.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서 착한 마녀를 연기했던 그녀.

하지만 [위대한 쇼맨], [올 더 머니]에서 연기한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

미셸 윌리엄스를 진정 아름답게 만들었다.



현실의 유괴는 모두가 무기력하더라.


유괴를 소재로한 영화는 꽤 많습니다. 대부분의 유괴영화들은 유괴범을 상대로 아이를 구출해낸 영웅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에 개봉한 [키드냅]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키드냅]은 눈 앞에서 아들이 납치당하자 엄마 카를라(할리 베리)가 끝까지 유괴범을 뒤쫓아 처단하고 아들을 구출한다는 내용입니다. 아들 납치, 엄마의 활약이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키드냅]은 [올 더 머니]와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키드냅]의 카를라와 [올 더 머니]의 게일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올 더 머니]의 게일은 아들을 구해야한다는 간절함은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직 CIA 출신 협상가인 플래처는 어떨까요? 솔직히 저는 플래처의 활약을 기대했습니다. 플래처를 연기한 마크 윌버그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배우이고, 토니 스콧 감독의 [맨 온 파이어]처럼 전직 CIA요원 존 크리스(덴젤 워싱턴)가 고용인이 딸 피타(다코타 패닝)를 유괴범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극한의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플래처는 게일에게 자신은 그저 협상가일 뿐이라며 선을 긋습니다. 실제 그는 처음에 게티 3세의 유괴가 자작극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며, 오히려 게일을 더욱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경찰은 또 어떨까요? 저는 [올 더 머니]를 보며 도대체 경찰은 사건 해결을 위해 무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억만장가의 손자가 유괴된 만큼 경찰 입장에서도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유괴범의 전화를 녹음하는 것 뿐입니다. 유괴를 소재로한 영화를 보며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을 느낀 경우는 처음입니다. 유괴범이 요구하는 돈 외엔 게티 3세를 구할 방도가 전혀 없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난 플래처가 뭔가 대단한 활약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게일을 다독이고,

게일과 게티의 연결 역할을 하는 것 뿐이다.

마크 윌버그를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무기력.

어쩌면 그것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이유가 아닐까?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게티의 돈이 아닐까?


[올 더 머니]가 답답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게티가 몸값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몸값이 한 푼도 없으니 게티 3세를 구하기 위한 어떤 협상도 진행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괴범은 1,700만 달러의 몸값을 700만 달러로, 나중엔 400만 달러로 낮추었지만 게티는 요지부동입니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입니다. 그가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게티 3세가 유괴된 상황에서 게티가 고가의 미술품을 사는 장면을 보여주며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의 이중적인 면모를 부각시킵니다.    

어쩌면 그러한 게티의 모습은 모든 것엔 제 값이 있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게티에게 있어서 게티 3세의 제 값은 얼마였을까요? 유괴범이 게티 3세의 귀를 잘라 보내자 그제서야 게티는 몸값을 지불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가 게일에게 보낸 돈은 100만 달러입니다. 게티는 미국의 세법상 100만 달러까지만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손자의 몸값으로 세법이 비용으로 인정하는 범위까지만 산정한 게티의 계산법. 결국 게티에게 있어서 게티 3세의 제 값은 100만 달러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올 더 머니]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유괴범으로부터 구출되는 게티 3세의 모습과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티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대부분 유괴 소재 영화의 후반부에서 유괴범에 대한 단죄를 보여준다면 [올 더 머니]는 게티의 쓸쓸한 죽음을 보여주며 영화의 진정한 악당은 유괴범이 아닌 가족의 사랑조차 돈으로 가격을 매기려 했던 게티였음을 역설합니다. 세계의 모든 돈을 가졌다고 평가받던 남자. 하지만 단 한푼의 돈도 제대로 쓸 줄 몰랐던 남자. 과연 그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고나서 게티 역시 한낱 돈의 노예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케빈 스페이시 대신 단 9일만에 게티 역을 재촬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진정으로 그가 아카데미를 거머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올 더 머니]에서 게티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