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홍기선
주연 : 김상경, 김옥빈, 최무성
개봉 : 2018년 1월 24일
관람 : 2018년 1월 24일
등급 : 12세 관람가
박대익 중령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1급기밀]은 참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입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홍기선 감독이 이번엔 방산비리를 소재로한 영화 [1급기밀]을 연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1급기밀]은 이명박 전대통령 재임 당시 민감한 소재 탓에 모태펀드 투자를 거부당했습니다. 모태펀드란 정부가 기금 및 예산을 직접 투자하지 않고, 벤처 캐피탈에 출자하여 벤처 캐피탈이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중소규모 영화가 모태펀드로 제작비를 충당한다고 할 수 있으니 모태펀드 투자 거부로 [1급기밀]은 제작자체가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기선 감독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역영상위원회와 개인 투자자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촬영에 돌입했고, 2016년에 촬영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 12월 15일 홍기선 감독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함으로써 [1급기밀]은 두번째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홍기선 감독의 뜻을 이어 이은 감독이 후반 작업을 마침으로써 무사히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세번째 위기입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 당시 모니터 평점 9.5점의 높은 점수를 받으며 재미와 메시지 면에서 호평을 얻어냈지만 공룡급 거대 배급사가 버티고 있는 영화들에 밀려 이번엔 제대로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일찌감치 [1급기밀]을 이번주 기대작 1순위로 선정한 후 평일 저녁에 보기 위해 예매를 서둘렀지만 [1급기밀]을 상영하는 곳을 찾지 못해 좌절해야 했습니다. 결국 [1급기밀]은 개봉 하루 전에서야 극장 예매가 오픈되었고, 저는 조금만 늦어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가 사라질 것을 예감해서 개봉 당일 저녁 시간대 예매를 서둘러 마쳤습니다. 다행히 평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극장 안에는 관객이 꽤 있었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횡포가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최소한 개봉 일주일만이라도
영화에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온전한 기회를 부여되어야하지 않을까?
개봉 전날 예매가 오픈되고, 개봉 당일부터 교차 상영을 해버리면
그건 관객의 영화보는 권리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써 우리가 가장 분노해야할 비리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면서도 우리의 주적일 수 밖에 없는 북한이 우리의 코앞에 있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전쟁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국방의 의무를 위해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에 군대에 입대하며 스스로를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힘있고 돈있는 자들은 그러한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며 특권만 노리려합니다. 그것이 우리와 같은 소시민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큰 분노를 느껴야 하는 것은 방산 비리입니다.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내는 세금의 상당 부분이 무기를 구입하는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자들이 국민의 목숨과 직결된 돈 마저 뒤로 빼돌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권력형 비리사건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산비리는 단순한 비리를 넘어 대한민국의 안보에 구멍을 뚫는 이적 행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1급기밀]은 방산비리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부임한 박대익(김상경) 중령은 전투기 부품 공급 업체 선정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의문은 미국의 에어스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원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 그리고 불량부품의 돌려막기 행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박대익에게 에어스타의 의혹을 제기한 강영우(정일우) 대위의 전투기가 불량부품으로 추락하지만 군수본부의 천장군(최무성)은 이 사건을 조종사의 과실로 만들어 은폐시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던 박대익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천장군은 자신의 비리가 국가를 위한 것이고,
강영위 대위의 비극은 어쩔 수 없는 작은 희생이라 말한다.
그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변명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워졌다.
과연 자신의 사리사욕과 애국심을 혼동하는 저런 자들이 실제로
대한민국 군대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방산비리... 영화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1급기밀]은 영화의 시작 전에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우리나라의 방산비리 사례를 자막으로 소재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방산비리는 어떤 사건들이었을까요? 시간은 2002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인 ‘F-X사업’의 시험평가를 책임지고 있는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이던 조주형 대령은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특정기종(F-15K)을 선택하고 시험평가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보했습니다. 이 제보로 미국 내에서도 사실상 단종된 F-15K의 선정을 위해 부당한 압력을 넣은 사실과 국방부가 평가 기준을 조작하려 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조주형 대령은 군사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해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고, 대법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이 확정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2009년 10월에는 MBC <PD수첩>이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습니다. 현역 해군 장교인 김영수 소령은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 없이 출연해, 육해공군 통합기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 간부들이 최소 9억 4000만원을 빼돌린 정황을 2006년 군 수사기관에 신고했으나 '수사 불가' 또는 '혐의 없음'이라는 답변만 들었고 국고 손실을 확인한 뒤에도 관련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폭로했습니다. 방송 이후 재수사로 해군 간부 등 현역과 군무원 등 31명이 사법처리 됐으나 김영수 소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전전하다 스스로 전역을 택했습니다.
이 두가지 사례는 [1급기밀]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내부고발자인 조주형 대령과 김영수 소령은 영화에서 박대익 중령이 되었고, 2009년 당시 김영수 소령을 만나 취재한 현 MBC 신임사장 최승호 PD는 영화에서 <PD 25시>의 기자 김정숙(김옥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문민정부 당시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린다 김은 [1급기밀]에서 캐서린 김(유선)으로 패러디(?) 되었습니다.
군바리들이 잔뜩 나오는 칙칙한 영화의 분위기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예쁜 여기자라는 설정이 조금 낯간지러웠지만
그래도 김옥빈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하며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현실은 영화보다 언제나 냉혹하다.
[1급기밀]은 상업영화답게 박대익 중령의 승리로 영화를 마무리합니다. 자신의 비리가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던 천장군은 방송에서 결국 자신의 비리를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 되어 버렸고, 박대익과 김정숙은 승리의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만약 박대익이 에어스타의 계약서를 손에 넣지 못했다면, 그래서 군 내부의 자료를 폭로할 수 밖에 없었다면 현실의 조주형 대령이 그랬던 것처럼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오히려 기소되었을 것입니다. 영화니까 박대익 중령은 에어스타의 계약서를 손에 넣고 군사기밀 누설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영화가 좀 더 진행되었다면 박대익 중령은 동료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혀 현실의 김영수 소령처럼 한직에 전전하다가 쓸쓸히 전역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군인이 되고 싶다는 박대익 중령의 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내부고발자가 되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1급기밀]은 거기까지는 영화 속에 담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냉혹합니다. 현실의 내부고발자들 덕분에 방산비리가 밝혀졌지만, 내부고발자들은 곧바로 국민에게 잊혀졌고, 오히려 폐쇄적인 군대 문화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아내에게, 어린 딸에게 진정한 멋진 군인으로 인정받으며 활짝 웃는 일은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과연 군인인 그들이 강제 전역 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조주형 대령은, 김영수 소령은 자신이 했던 행위를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이들이 앞으로도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대익은 그들이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그들에게 서로의 비리를 눈감아주고
그로인한 떡고물을 나눠먹자는 올가미가 된다.
그것을 거부한 박대익에게 황주임은 배신자라며 욕하지만,
과연 국민을 배신한 진짜 배신자는 박대익일까? 천장군일까?
이 영화가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지 않기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한때 KA(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회사)I의 방산비리 사건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9월 김인식 KAI 부사장이 숨진채 발견되며 KAI 방산비리 사건에 대한 언른의 관심은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KAI 구매본부장 공모씨 외 2인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시는 방산비리가 이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합니다. 몇 년후면 웅이가 군대에 가야하기 때문에 이건 내 일, 혹은 우리 자녀들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1급기밀]이 거대 멀티플렉스의 횡포 속에 관객과 제대로 만날 기회도 갖지 못한채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진다면 [1급기밀]은 웰메이드 영화는 아닙니다. 천장군처럼 주도면밀한 인물이 아무런 대비없이 이제 막 항공부품구매과에 온 박대익에게 강영우 대위 사고 은폐를 노출시켰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박대익이 에어스타 계약서를 너무 쉽게 손에 놓은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통쾌한 마무리를 위한 설정이라는 것을 잘 알겠지만, 차라리 현실을 반영해서 박대익의 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것이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줬을텐데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첫 걸음마를 뗀 것 뿐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방산비리 사건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를 영화화하지 못했던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소재의 영화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우리 군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조용히 덮어놓으면 상처부위가 곪아서 더 큰 상처가 될 뿐입니다. 당장 아프더라도 도려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1급기밀]을 시작으로 방산비리, 그리고 군대 내 문제를 담은 영화들이 더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1급기밀]을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방산비리 척결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일부 부패한 군인이 저지르는 비리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안보가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잊혀지면 안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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