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다키스트 아워] - 세계 역사를 바꾼 한 사람의 신념

쭈니-1 2018. 1. 18. 20:52

 

 

감독 : 조 라이트

주연 : 게리 올드만,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릴리 제임스, 벤 멘델슨

개봉 : 2018년 1월 17일

관람 : 2018년 1월 17일

등급 : 12세 관람가

 

 

영국인이 뽑은 위대한 영국인 1위는 윈스턴 처칠이다.

 

2002년 BBC가 영국인 1백만명을 대상으로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설문조사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튼,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인물이 바로 윈스턴 처칠이라는 점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독일에 의하여 유럽 전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1940년 5월 10일 영국 총리로 임명된 후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정치인입니다. 당시 네빌 체임벌린 전 총리를 중심으로 독일과의 전쟁이 아닌 평화협정을 주장했지만 윈스턴 처칠은 독재자에게 굴복할 수 없다며 독일과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끝내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만약 윈스턴 처칠이 독일과 평화협정을 맺었다면 과연 세계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아마도 독일의 나치는 지금까지 유럽을 지배하며 세계 최강국으로써 온갖 만행과 학살을 저질렀을 것이며, 우리나라의 독립 또한 물거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전세계는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중심으로한 파시즘이 성행했을지도 모릅니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독일에 패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음으로써 세계 역사를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고, 제국주의, 파시즘은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독일의 나치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끝까지 싸워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는 영국인의 자부심으로 이어졌고, 영국인들이 아이작 유튼,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아닌 윈스턴 처칠을 위대한 영국인 1위로 선정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다키스트 아워]를 보기 전, 윈스턴 처칠이 위대한 영국인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키스트 아워]를 보고나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전 유럽이 나치에 짓밟히고 굴복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웠던 윈스턴 처칠.

그에 대한 자부심이 BBC의 설문조사에서 읽혀졌다.

 

 

위기의 순간 영국의 총리가 된 처칠의 긴박했던 시간들

 

[다키스트 아워]는 야당에 의해 네빌 체임벌린(로널드 픽업) 총리가 물러나고,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이 새로운 총리로 임명되면서 시작됩니다. 여당인 보수당은 할리팩스(스티븐 딜레인)를 총리로 임명하고자 하지만 야당의 반발이 예상되자 어쩔 수 없이 여당 내에서도 괴짜 독불장군으로 통하는 처칠을 총리로 지목합니다. 처칠을 차기 총리로 지목했다는 체임벌린의 보고를 들은 영국의 국왕 조지 6세(벤 멘델슨)는 왜 하필 처칠이냐고 물을 정도로 그는 그다지 인기있는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그의 정치적 위상이 위태로웠기에 처칠은 거국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자신의 정적들을 대거 끌어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며 독일과의 결사항쟁을 주장하는 처칠과 이대로라면 패망이 뻔하다며 독일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여당 정치인들의 공세가 주요 내용입니다. 아무리 괴짜 독불장군인 처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대로만 밀고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상황은 시시각각 영국에서 불리하게 돌아가고 그러면 그럴수록 독일과의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보수 여당의 주장은 힘을 얻습니다.

2017년 7월에 개봉한 화제작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로 유명해진 다이나모 작전도 [다키스트 아워]에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영국군 30만명이 프랑스의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자 처칠은 칼레에 주둔중인 영국군 수천명을 희생시켜 시간을 벌었고, 민간인 배를 동원하여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영국군을 무사히 구출합니다. 어쩌면 잔인하고, 무모한 계획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칼레의 주둔한 영국군을 희생시키는 결단을 내리며 괴로워하는 처칠의 모습은 영화 초반 괴짜 독불장군이 아닌,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한 힘 없는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영국, 아니 세계의 운명이 걸린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

처칠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과연 이것을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그 순간 처칠의 모습은 나약하고 무기력한 노인처럼 보였다.

 

 

처칠이 다시 처칠다워지는 순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처칠은 영화 초반 새로온 비서 엘리자베스 레이튼(릴리 제임스)에게 사소한 문제를 꼬투리잡아 막말을 퍼붓는 괴짜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처칠에게 아내인 클레멘타인 처칠(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은 사람들을 너무 막대한다며 나무랍니다. 처칠의 괴짜다운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수상으로 임명된 후 조지 6세와 만난 처칠은 매주 월요일 오후 4시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조지 6세의 제안에 그 시간은 낮을 자는 시간이라고 대답해 그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되는 거요? 라고 묻는 조지 6세에게 "제가 밤 늦게까지 일을 해서요."라고 대답하는 처칠의 모습은 당당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세가 점점 불리해지며 독일과의 평화협정 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여당 내에서 처칠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통해 총리 자리에서 쫓아내려합니다. 그러자 영국 국왕앞에서도 당당하기만 했던 처칠의 모습은 점점 위축됩니다.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전화해서 도와달라며 애원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알던 처칠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내인 클레멘타인 앞에서 어린애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총리 전용 화장실에 앉아 홀로 처량하게 고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새로운 모습을 관객에게 선보입니다.

그러나 나약한 처칠의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조지 6세가 뜻밖에도 처칠을 지지한다며 응원을 보내고 지하철에서 영국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 처칠은 다시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특히 지하철에서 일반 시민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모든 국가 권력은 국민의 목소리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지하철에서 직접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감을 되찾는 처칠의 모습은 의미하는 바가 컸습니다.

 

아내인 클레멘타인 처칠에게

귀여운 꿀돼지라 불리우는 윈스턴 처칠.

그의 그러한 인간적 모습이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놀랍기만 하다.

 

사실 제 블로그에 여러번 언급했듯이 저는 전쟁영화, 특히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키퍼스 와이프]를 봤고, [다키스트 아워]를 봄으로써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한 영화를 두 편이나 연달아 본 셈이 되었습니다. 물론 [주키퍼스 와이프], [다키스트 아워]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영웅주의를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전쟁영화는 아닙니다. 특히 [다키스트 아워]는 전쟁의 현장이 아닌, 그 밖에서 벌어지는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을 담아 냄으로써 전쟁의 또다른 이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가 [다키스트 아워]를 선택한 것은 그러한 전쟁의 또다른 이면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윈스턴 처칠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연기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개봉 당일, 상영관이 몇개 되지도 않는 악조건을 뚫고 극장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실제로 게리 올드만이 [다키스트 아워]의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봤다면 처칠을 연기한 배우가 게리 올드만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게리 올드만은 날씬한 체격에 신경질적인 악역이 잘 어울리는 배우였는데,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만은 뚱뚱한 체구에 항상 시가를 입에 물고 사는 고집불통 괴짜 정치인입니다.

지난 1월 7일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게리 올드만은 [다키스트 아워]로 드라마 부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더 포스트]의 톰 행크스, [팬텀 스레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이너 시티]의 덴젤 워싱턴 등 각종 영화제에서 다수의 남우 주연상을 거머쥔 쟁쟁한 배우들과의 경합에서 이뤄낸 뜻깊은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그의 수상은 유력해 보입니다. 아직 어떤 영화, 어떤 배우가 노미네이트될런지 잘 모르지만, [다키스트 아워]를 보고나니 이번에야말로 게리 올드만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키스트 아워]에서 게리 올드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완벽하게 윈스턴 처칠이 되었다.

진정 아무런 정보없이 [다키스트 아워]를 본다면

화 속 윈스턴 처칠이 게리 올드만이라는 사실을 그 누가 알수 있겠는가?

 

 

그의 신념이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

 

[다키스트 아워]는 놀라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처칠의 모습을 끈질기게 따라갑니다. 이러한 전기영화의 경우 마치 위인전을 읽는 지루함이 관객을 엄습할 법도 한데 조 라이트 감독은 빠른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지루함을 느낄 새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분명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처칠의 결정 하나 하나에 긴장하며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게리 올드만은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 외에는 달리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기품있는 연기와 게리 올드만과 비교되는 릴리 제임스의 부드러운 연기도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런 허점을 찾을 수 없게끔 만듭니다. 처칠과 반대의 편에 서서 끊임없이 처칠을 압박하는 보수 여당 정치인 체임벌린과 할리팩스를 연기한 로널드 픽업과 스티븐 딜레인의 연기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순간 처칠의 명연설이 울려 퍼지고, 영국이 독일과의 평화협정이 아닌 전쟁을 선택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그 시절 영국인이 된 것만 같은 가슴 벅찬 기분을 느낀 것입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후 1945년 7월 5일 총선에서 처칠의 보수당이 패배하며 총리직을 사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키스트 아워]는 영화의 마지막에 처칠의 명언 중 하나인 '성공도 실패도 영원한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굴복하지 않는 용기다.'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를 끝냅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서며 그의 골복하지 않은 용기가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총리가 된 처칠은 장관들을 만나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탐욕과 비리와 범죄만을 남기고 떠난 정치인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