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최성현
주연 : 이병헌, 박정민, 윤여정, 한지민
개봉 : 2018년 1월 17일
관람 : 2018년 1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비슷한 영화가 너무 많이 떠오른다.
2018년 1월도 어느덧 절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네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영화들 리스트를 보다가 아직 한국영화를 한편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017년에는 [마스터]로 시작해서 두번째 영화도 한국영화 [사랑하기 때문에]였는데... 결국 2018년 극장에서 선택한 다섯번째 영화에 이르러서야 한국영화인 [그것만이 내 세상]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2017년 첫번째 한국영화도 이병헌 주연의 [마스터]이고, 2018년 첫 한국영화로 이병헌 주연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네요. 게다가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고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영화는 2017년 두번째 영화인 [사랑하기 때문에]였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차태현 주연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적당히 관객을 웃기고,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적당히 관객을 울립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러합니다. 영화는 내내 적당히 웃기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적당히 울립니다.
물론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것 외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영화가 많았습니다. 한물간 권투선수 김조하(이병헌)가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서번트증후군 동생 오진태(박정민)을 만나 형제애를 다진다는 설정은 톰 크루즈,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레인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레인맨]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가출한 자동차 중개상 찰리(톰 크루즈)가 아버지가 엄청난 재산을 형에게 물려주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 자폐증 형 레이먼드(더스틴 호프만)을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레이먼드이 숫자를 모조리 외우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는 설정도 [그것만이 내 세상]과 비슷합니다. 굳이 미국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이정재, 이범수 주연의 영화 [오! 브라더스]도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성격의 형제가 타격태격하면서
결국 형제애를 깨닫는다는 내용의 영화는 굉장히 많다.
과연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들 영화와 어떤 차별화를 보여줄 것인가?
그냥 그냥 적당하다.
솔직하게 [그것만이 내 세상]을 평가하자면 크게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망스러웠던 영화도 아닌, 딱 중간 어느 지점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한때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지만 경기도중 심판을 폭행해서 퇴출된 후 지금은 오갈데 없는 한심한 처지가 된 전직 복서 조하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잘 곳이 없어서 만화방을 전전하던 처량한 신세의 조하는 우연히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엄마 주인숙(윤여정)을 만나게 됩니다.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 조하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도망친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지만 며칠간 인숙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 진태를 만난 것입니다.
당연히 조하와 진태의 관계가 좋을리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조하는 인숙, 진태와 함께 하며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정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조그마한 행복을 느끼게됩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조하와 진태가 서서히 친해지는 모습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잡아냄으로써 관객이 공감을 삽니다.
문제는 이 가족의 행복이 그리 오래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3개월후 전세 보증금 천만원을 올려줘야 하는 인숙. 결국 그들은 집에서 쫓겨날 처지입니다. 제대로된 직업이라고는 가져 본 적이 없는 조하는 집주인인 홍마담(김성령)에게 호스트바에 스카웃 제의를 받습니다. 진태는 피아노 천재이지만 정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서번트 증후군인 그가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인숙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이병헌의 코미디 연기와 박정민의 서번트증후군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주려하지만 그들의 행복이 오래갈 수 없음을 알기에 웃음은 시원하게 터지지 못합니다.
그들은 행복하게 웃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의 행복이 오래갈 수 없음...
그렇기에 관객의 웃음 또한 빵빵 터지지 못한다.
영화이기에 가능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습니다. 조하와 진태 형제가 행복을 맞이하려면 기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들에게 딱 필요한 뻔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조하가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그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가 과거 유명 피아니스트인 한가율(한지민)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런데 하필 사고 후 한번도 하지 않았던 운전을 그날 갑자기 미친 듯이 하고 싶어졌고, 그런데 하필 운전을 하던 중 술에 취한 조하가 차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한가율은 진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였던 것입니다. 영화가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0.0001% 확률의 기적입니다.
일단 한지민의 특별출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한쪽 다리를 보여주는 장면은 임팩트가 꽤 강했습니다. 한지민의 특별출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영화 속 그녀의 비중에 꽤 높아서 놀랬습니다. 이쯤되면 주연으로 이름을 올려도 되었을 듯...
하지만 그녀의 임팩트 강한 특별출연과는 별도로 조하와 진태, 가율의 인연은 너무 인위적이었습니다. 진태 덕분에 가율은 마음의 문을 열고 피아노 앞에 앉을 것이며, 가율 덕분에 진태는 피아니스트로 첫 발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이건 굳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이었던 전개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러한 제 예상을 한치의 어긋남 없이 그대로 따릅니다. 그렇기에 영화 후반 소율의 도움으로 음악경연대회 갈라쇼 무대에 오른 진태의 데뷔 장면은 감동보다는 '그럼 그렇지'라는 냉소 속에 펼쳐집니다.
한지민의 특별출연은 정말 놀라웠다.
특히 그녀가 불구된 자신의 다리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당혹스러워하는 조하 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내게도 예상하지 못한 당혹감을 안겨줬다.
준비된 감동, 그리고 인숙의 진심
[그것만이 내 세상]은 후반부에 가서 준비된 감동을 꺼내 놓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숙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너무 빨리 인숙의 죽음을 관객에게 암시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인숙이 조하에게 부산에 한달간 일하러 내려간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이미 후반부의 감동코드는 관객 앞에 숨김없이 펼쳐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저는 조하와 진태에 대한 인숙의 진심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기에 가족의 보호가 필요한 진태. 그렇기에 인숙은 자신이 없어도 누군가 진태를 돌봐줄 수 있는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우연히 조하를 만난 것입니다. 물론 인숙은 조하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조하가 진태를 돌봐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하가 조금이라도 진태를 잘못 돌보면 조하에게 버럭 화를 냅니다. 당연히 조하 입장에서는 그러한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숙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아픈 손가락은 없어도 더 아픈 손가락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더아픈 손가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더 조심스럽게 보호하는 법입니다. 진태가 바로 더 아픈 손가락입니다. 조하는 지금까지 자신의 앞가림을 하며 혼자 잘 살아 왔지만, 진태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인숙은 진태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인숙이 조하에게 '다음 생에서는 너만 사랑해줄께.'라며 울먹이는 모습에서 저는 그녀의 진심을 보았고, 그러한 그녀의 진심은 너무 준비된 듯한 그녀의 죽음보다 더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혼자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소원은
자식보다 늦게 죽는 것이라고 한다.
인숙의 마음이 그러지 않았을까?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울린다.
분명 [그것만이 내 세상]은 명절 저녁, 온가족이 TV앞에 오손도손 둘러 앉아 함께 즐기기에 딱 알맞은 영화입니다. 웃음과 감동이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보기엔 조금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합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도 그러했습니다. 극장에서 볼 땐 조금 심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전 특선영화로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봤을 땐 멍허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거든요.
물론 [그것만이 내 세상]에는 몇가지 인상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조하가 인숙과 와인을 나눠 마시다가 춤을 추는 장면(이병헌의 춤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한가율의 당혹스러웠던 의족, 진태와 조하에 대한 인숙의 진심. 그리고 진태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도 인상깊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정민이 진짜 피아노를 치는 것인지, 아니면 전문가가 피아니스트의 손과 박정민을 합성한 것인지 알 수가 없더군요. 만약 박정민이 직접 피아노를 친 것이라면 정말 대단한 솜씨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울려 퍼지는 전인권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도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편적인 것만이 인상적이라는 것은 영화의 아쉬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해운대], [국제시장]의 흥행 감독에서 요즘은 JK필름의 대표이자 제작자로 더 활발하게 활동중인 윤제균이 제작한 영화인만큼 [그것만이 내 세상]은 흥행성을 염두에 둔 영화임에 분명해 보였지만, 너무 무난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가 안전하게 흥행에 안착하려는 의도가 보였습니다. 뭐 적당히 웃기지도, 울리지도 못하는 영화들도 수두룩하니 이 정도면 중간 이상은 간 것일테지만 그래도 2018년 첫 한국영화인만큼 좀 더 특별함을 기대했던 저로써는 만족하긴 힘들었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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