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알렉산더 페인
주연 : 맷 데이먼, 크리스토프 왈츠, 홍 차우, 크리스틴 위그
개봉 : 2018년 1월 11일
관람 : 2018년 1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최강 한파를 이용하다.
지난 금요일은 올 겨울 최강의 한파로 대한민국이 꽁꽁 얼었던 날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저희 어머니는 "바람이 안부니 햇볕이 따스하고 좋기만 하네."라며 구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나가셨고, 저는 너무 빵빵한 회사의 히터 때문에 눈이 따끔거려 제 뒷자리 창문을 한동안 열어두어서 다른 직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춥다며 움추리고 따뜻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었습니다. 저와 비교해서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구피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춥다며 웬만하면 켜지 않는 가스 보일러를 한동안 켜놓더군요.
최강 한파가 밀려오기 하루 전날 저녁, 느닷없이 장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은 춥다고 하니 웅이, 태권도장에 보내지 말거라." 장모님의 전화를 받은 구피는 이건 분명 웅이가 하루 쉬고 싶어서 외할머니한테 부탁한 것이라 의심했지만 웅이는 아니라며 발뺌을 합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구피도 금요일 하루 웅이가 태권도장에 가지 않는 것을 허락하고 맙니다. 최강 한파를 이용한 웅이의 땡땡이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는 순간입니다.
웅이의 작전 성공을 목격한 저도 최강 한파를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태권도장에 안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시간이 널널한 웅이와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것입니다. 구피는 최강 한파가 몰려온 한 밤중에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저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저는 나름의 논리로 구피를 설득했습니다. 어차피 내 차로 갈테니 최강 한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집에 있어도 웅이가 12시 전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에 그럴바엔 차라리 주말 낮에 볼 영화를 금요일 밤에 미리 보고, 주말에는 집에서 공부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주말에는 상영시간대가 거의 없는 [다운사이징]을 금요일 밤에 웅이와 함께 보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극복하며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동물이다.
지구환경오염을 '다운사이징'으로 극복하려는 영화 속 사람들처럼,
최강 한파 따위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적응하며 극복할 수 있다.
(철없이 최강 한파를 뚫고 영화를 보러 간 쭈니의 헛소리!!!)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SF영화를???
아마도 웅이가 [다운사이징]을 보러 가자는 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이유는 이 영화가 흥미로운 SF영화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다운사이징]은 인간 축소를 소재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축소 소재의 영화는 [다운사이징]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애들이 줄었어요]가 있습니다. 괴짜 과학자의 전자 자기 축소기 때문에 8mm로 줄어든 아이들의 모험을 다룬 영화입니다. [애들이 줄었어요]는 흥행에 성공해서 [아이가 커졌어요], [아빠가 줄었어요]가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너 스페이스]도 있습니다. 초소형화 실험에 참가한 자유분방한 성격의 공군 조정사가 평범한 남자의 몸 속에 들어가 모험을 한다는 내용으로 데니스 퀘이드와 멕 라이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최근에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 [앤트맨]이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 축소 소재의 영화들은 기발한 상상력과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을 담고 있는 오락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다운사이징]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입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 [디센던트] 등 주로 잔잔하고 감동이 있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감독입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SF 오락 영화에 뛰어 들었을리가 없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 [다운사이징]은 앞서 제가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영화일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다운사이징]은 [애들이 줄었어요], [이너스페이스], [앤트맨]처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는 아닙니다. 사실 [다운사이징] 역시 처음엔 오락영화처럼 시작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상당히 난해한 주제를 관객앞에 펼쳐 놓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북미에서 [다운사이징]에 흥행에 실패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맷 데이먼 주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상영하는 곳을 찾기 어려운 이유일 것입니다.
[다운사이징]에 맷 데이먼 주연의 SF 오락영화를 기대해선 안된다.
이 영화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중년의 로맨스를 주로 선보였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다운사이징]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펼쳐보인다.
그들은 왜 '다운사이징'을 할 수 밖에 없었나?
[다운사이징]은 인구과잉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인간축소프로젝트 '다운사이징' 개발이 성공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지구상 거의 모든 동식물의 무게를 2,744분의 1 비율로 줄이고, 부피는 0.036%로 축소가 가능한 이 기술은 각종 기후 문제와 환경오염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지구는 인간이 배출한 오염 물질로 인하여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 환경오염의 주범인 인간의 크기가 확기적으로 줄어든다면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다운사이징'을 한 소인 36명이 4년간 배출한 비가연성 폐기물의 양이 비닐봉지 한 개뿐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구와 인류를 구원할 획기적인 기술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다운사이징'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부는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줍니다. 일단 축구장 크기의 땅에 소인이 살 수 있는 현대적 도시를 건설하고, '다운사이징'을 선택하는 순간 재산이 120배의 가치가 된다고 홍보합니다. 평상시에는 꿈도 꿀 수 없는 호화로운 저택은 6천3백만원에 살 수 있고, 가족의 두 달 생활비는 고작 8만원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다운사이징'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입니다.
폴 샤프라넥(맷 데이먼)이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것 역시 경제적 혜택에 혹했기 때문입니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하는 아내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도 대출조건이 되지 않아 포기해야 했던 그는 동료가 '다운사이징'으로 평소 꿈꾸었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오드리와 함께 '다운사이징'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그는 꿈에도 그리던 대저택에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막상 대저택에서 살고 싶다고 징징대던 오드리는 '다운사이징'이 두려워 마지막 순간 도망가 버립니다.
함께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했지만
머리카락과 눈썹을 밀어버린다는 이유로 도망친 오드리.
그녀의 이기적인 선택은 폴을 불행에 빠뜨린다.
'다운사이징'에 의한 경제적 혜택은 폴에게 행복의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운사이징'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만약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운사이징'을 선택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환경오염문제, 주택문제, 식량 문제 등이 단번에 해결될테니까요. 하지만 오드리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다운사이징'을 두려워하고, 거부합니다. 오드리 뿐만이 아닙니다. '다운사이징'에 의한 경제적 혜택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부유층은 굳이 '다운사이징'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다운사이징'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일부 독재정권은 자신의 체제에 반기를 든 반정부 인사들을 강제로 '다운사이징'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다운사이징' 기술을 개발한 요르겐 박사는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다며 절망합니다. 지구는 나날이 병들어가고, 언젠가 지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밀어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당장 닥쳐올 현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외면합니다. 당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기후변화는 일부 과학자들의 음모라며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으니까요. 그가 바보라서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경제에 이익이라는 계산에 의한 것이겠죠.
이렇게 [다운사이징]은 인간축소라는 다분히 SF적 소재를 끌어 들였지만, 정작 영화는 지금 현재 우리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당장은 아니더라며 우리의 후손들은 더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장 환경오염을 줄이는 노력을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귀찮고, 불편하니까요. 영화속에서 '다운사이징'을 하지 않는 전체 인구의 97%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다운사이징]은 마냥 편안하게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지구는 수십억년의 세월동안 아름다운 자연을 조각하여 인류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인류는 고작 수천년만에 지구의 선물을 야금야금 파괴했다.
언젠가 지구가 인류의 만행을 참지 못하고 밀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인류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외면한다.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중년의 사려깊은 로맨스가 이 영화에도 펼쳐진다.
분명 [다운사이징]은 인간 축소를 소재로한 오락영화와는 전혀 다른, 조금은 불편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너무 심각한 영화일 것이라 질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각한 영화 또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소소한 소품으로 인간축소라는 소재의 부담없이 이끌어냅니다. 예를 들어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은 직후 폴이 받은 기념품인 거대한 크래커라던가, 이웃에 사는 두샨 미르코비치(크리스토프 왈츠)의 집에 가져간 거대한 장미 등, 영화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관객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영화 속에서 잠시나마 우리나라의 풍경이 담겨진 것 또한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역시 [다운사이징]의 최고 재미는 폴과 베트남의 반체제 인사 녹 란 트란(홍 차우)의 상상초월 로맨스입니다. 우유부단해도 너무 우유부단한 폴과 그러한 폴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부려 먹는 녹 란 트란의 모습은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었지만, 나중엔 그들의 사랑에 흐뭇해졌습니다. 아무리 지상낙원과도 같은 소인의 도시 레저랜드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는 이미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매일 파티를 즐기며 놀고 먹고, 누군가는 외진 빈민가에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 나가야 합니다. 부유한 삶을 꿈꾸며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폴이 결국엔 녹 란 트란과 함께 빈민을 도우며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폴과 녹 란 트란의 사랑은 과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다웠습니다.
영화 후반부 폴은 요르겐 박사 일행과 함께 지하 세계로 들어가 인류 보존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합류하려합니다. 하지만 결국 폴은 그냥 레저랜드에 남아 녹 란 트란과 함께 빈민을 돕는 일을 선택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다운사이징]을 통해 관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요? 우리 모두 전 인류적 재앙을 막아내는 영웅이 될순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면 어쩌면 우리에게도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을 아닐까요?
영화를 본 후 진지하게 나는 과연 '다운사이징'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비록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있다고해도
남들과는 다른 소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충분히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면?
[다운사이징]은 관객에게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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