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 - 전혀 공감되지 않는 <흥부전>의 탄생비화

쭈니-1 2018. 2. 20. 14:36



감독 : 조근현

주연 : 정우, 김주혁, 정진영, 천우희

개봉 : 2018년 2월 14일

관람 : 2018년 2월 17일

등급 : 12세 관람가



김주혁을 떠나 보내며...


2017년 10월 30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김주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공개된 사고 당시 장면들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음주운전도 차량결합도 아니었다고하는데, 왜 갑자기 김주혁의 차가 인근 아파트 중문 벽을 들이받고 계단 아래로 추락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직 김주혁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된 영화팬들에게 김주혁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사극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와 범죄액션 [독전]입니다. (김주혁은 판타지액션 [창궐]에서도 특별 출연할 계획이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김태우가 대신한다고 합니다.)

그 중 설 연휴에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가 개봉하였습니다. 이미 [블랙 팬서]와 [골든슬럼버]를 보기로 구피, 웅이와 약속이 되어 있는터라 솔직히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까지 보는 것은 약간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김주혁의 영화인데 봐야하지 않겠어?"라며 오히려 저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블랙 팬서]에 이은 설 연휴 두번째 영화로 [골든슬럼버]가 아닌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극장입니다.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블랙 팬서]가 다수의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었고, [조선명탐정 : 흡혈괴마의 비밀]과 [골든슬럼버]도 어느정도 상영관을 확보해놓은 상황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만이 개봉 첫 주부터 몇 개되지도 않는 상영관에서 교차 상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의 배급사인 롯데가 소유하고 있는 롯데 시네마에서는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를 교차상영하지 않고 한 개의 상영관에서 하루종일 온전히 상영하더군요. 그러한 이유로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를 보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메가박스가 아닌 집에서 먼 롯데 시네마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나마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롯데가 배급을 했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일지도 모릅니다. 극장 체인을 소유하지 못한 중소 배급사에서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의 배급을 맡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김주혁의 유작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를 떠나 보내야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길...

때론 순진하고 정감있는 모습으로, 때론 표독스러운 악당의 모습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그대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고전 전래소설 <흥부전>을 재해석하겠다고?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 전래소설인 <흥부전>을 재해석한 영화입니다. <흥부전>은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 흥부와 부자지만 못된 형 놀부의 이야기로 흥부는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얻은 박에서 나온 금은보화를 얻었고, 놀부는 제비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얻은 박에서 나온 도깨비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겨 알거지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가 이러한 <흥부전>의 내용을 영화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면 너무나 유명한 내용 탓에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제작진도 잘 알기에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흥부전>의 탄생비화라는 새로운 볼거리를 꺼내듭니다.

원래 <흥부전>은 누가 썼는지, 언제 쓰여졌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흥부전>의 탄생에 대해 상상력을 덧입히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조선 말기 헌종 14년을 배경으로 설정했습니다. 조선의 24대 왕인 헌종은 순조가 죽자 8세에 즉위하여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안동김씨와 풍양조씨라는 두 외척의 세력 다툼이 거셌는데 그로인하여 백성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갔다고 합니다. 

어릴 적, 형 놀부(진구)와 헤어진 흥부(정우)는 형을 찾기 위해 글로써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합니다. 그가 쓰는 소설은 남녀의 음탕한 사랑을 담은 소설들이지만, 그의 천재성 덕분에 제법 이름도 알려지고, 제자 선출(천우희)까지 두는 등 사정도 넉넉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유명해져도 형 놀부를 찾는 일은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그때 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니는 김삿갓(정상훈)이 흥부에게 놀부의 행방을 알려줍니다. 놀부는 반군이 되어 쫓기는 상황이고, 그의 행방은 반군의 정신적 지도자 조혁(김주혁)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흥부는 조혁을 찾아가지만 조혁은 흥부에게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쓰면 놀부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흥부전>이라는 설정입니다.


조선 최고의 음탕한 연애소설 작가 흥부는 어쩌다가 <흥부전>을 쓰게 되었을까?

이 영화는 <흥부전>을 통해 헌종 14년이라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풍자하려한다.



 전혀 공감되지 않는 <흥부전>의 탄생비화


자! 이제부터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가 상상력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흥부전>의 탄생 비화가 왜 제 공감을 받지 못했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선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흥부와 놀부는 영화 속에서 실존 인물입니다. <흥부전>의 내용과는 달리 흥부와 놀부는 어린 시절 홍경래의 난 때문에 헤어져 서로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흥부는 조항리(정진영), 조혁 형제를 빗대어 자신의 이름과 형의 이름이 들어간 소설 <흥부전>을 완성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는 "흥부가 잘못했네. 원래 놀부는 착한데 <흥부전>에서 놀부를 못된 욕심쟁이로 썼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의견에 저 역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흥부가 조혁의 제안으로 조항리, 조혁 형제의 이야기를 쓰려 했다면 소설에 굳이 자신과 자신의 형의 이름을 갖다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웅이의 말대로 형의 이름만 더럽힌 꼴이 되었습니다.

<흥부전>이 유명해지자 이것이 조항리, 조혁 형제의 이야기라고 유추하는 장면도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흥부전>이 조항리, 조혁 형제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조혁이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맞는 장면이 <흥부전>에 그대로 재현된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흥부전>을 읽자마자 이것이 조항리, 조혁 형제의 이야기라고 입을 맞춥니다. 도대체 어딜봐서 <흥부전>이 조항리와 조혁의 이야기라는 것인지...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흥부전>만으로는 조항리와 김응집(김원해)의 세력 다툼을 극대화시키는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을 끼워넣습니다. 그럼으로써 <흥부전>의 탄생비화는 흐지부지되고 조항리, 김응집의 세력 다툼과 그로인하여 희생되는 민초의 삶만 부각됩니다. 이럴바엔 굳이 <흥부전>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의 더 큰 문제는 <정감록>에 의한 파국도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놀부는 진구이지만, 소설 속 놀부는 정진영이다.

영화 속 놀부는 반군의 장수이지만, 소설 속 놀부는 파렴치한 세도가이다.

이렇게 서로 배치되지 않으니 영화를 통한 <흥부전>의 탄생비화는 공허한 헛소리가 된다.



나가도 너무나갔다.


<흥부전>의 탄생비화라는 애초의 목표는 영화 속 놀부와 소설 속 놀부가 전혀 매치되지 않으며 흐지부지됩니다. 이 영화의 내용이 왜 <흥부전>의 탄생비화인지 알쏭달쏭해집니다. 그러한 가운데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좀 더 큰 야망을 내비칩니다. 부제 그대로 흥부가 글로써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처음엔 <정감록>을 내세웁니다. 조항리는 흥부에게 <정감록>의 마지막 부분을 쓰라고 사주합니다. 숙적인 김응집을 없애려는 음모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라면 은밀히 진행해야합니다. 흥부처럼 널리 알려진 작가를 통해서 드러나게 진행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흥부의 글 솜씨가 필요했다면 흥부가 <정감록>을 쓴 이후 그를 제거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조항리의 사주로 <정감록>이 쓰여졌다는 것이 밝혀지면 조항리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조항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글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는 이유로 조항리의 위험한 제안을 덥썩 받아들인 흥부도 이상하지만, <정감록>을 쓴 것이 흥부라는 사실을 김응집이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영화에선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 영화에서는 크나큰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얼렁뚱땅 처리가 되었으니 영화를 보는 제 입장에서는 헛웃음만 터져나올 뿐입니다.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의 최악은 흥부가 조항리에 대한 복수를 기획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흥부는 조항리에게 궁전 연회에 <흥부전>을 하게 하면 헌종이 <흥부전>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에 거사를 치루라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더 말도 안되게 조항리는 덥썩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궁중에서는 역모 작전은 허술해도 너무 허술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말도 안되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헌종이 허수아비 왕이라고 할지라도

궁전 연회에 왁자지껄 <흥부전>을 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

그것을 이용해 역모를 꾀하려는 조항리도 말이 안되고,

또 그것을 이용해 조항리에게 복수하려는 흥부도 말이 안된다.



빈약한 상상력이 불러온 참사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와 [방자전]을 비교해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엉터리 영화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두 영화는 모두 조선시대 전래 소설을 바탕으로한 사극영화입니다. [방자전]은 <춘향전>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춘향전>은 신분차가 엄격한 조선시대에 기생의 딸과 암행어사의 사랑이라는 당시로는 불가능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방자전]은 춘향(조여정)을 짝사랑한 방자(김주혁)가 신분상승을 꿈꾸는 춘향의 소원을 이뤄주지 위해 춘향과 몽룡(류승범)의 사랑이 이뤄지는 소설을 만들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충분히 가능성있는 이야기이기에 [방자전]의 내용은 오히려 불가능한 사랑을 담은 <춘향전>보다 제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와는 달리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허술한 상상력으로 흥부가 <흥부전>을 통해 당대 최고의 세도가 조항리를 물리쳤다는 순진한 이야기로 일관합니다. 사실 천민에 불과한 흥부가 궁에서 세도가 조항리의 역모를 막아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박에서 금은보화가 나왔다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조항리의 사병들이 궁을 공격하고, 흥부를 따라는 천민들이 막대기로 무기를 든 사병들을 막아내고, 흥부의 한마디에 조항리의 사병들이 무기를 내려 놓고, 아니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짓인지...

솔직히 헌종 시대 조항리의 역모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면 조금이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나고 간절한 마음으로 조항리의 역모에 대해 검색을 해봤지만 조항리의 역모는 없을 뿐더러 조항리라는 캐릭터조차도 국정농단 세력을 모델로 한 가상의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의 24대왕 헌종을 내세우고, 헌종을 상대로한 역모로 스토리를 전개시킬려면 최소한 헌종 시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쓸 자신이 없다면 이렇게 크게 벌려놓으면 안되죠. 이쯤되면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그냥 김주혁을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빈약한 상상력이 불러온 참사와도 같은 영화일 뿐이었습니다. 


P.S.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 중간에 강하늘이 카메오 출연한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영화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쿠키영상까지는 봐야 그나마 덜 본전생각이 날 듯합니다.


조항리가 궁에서 헌종을 향해 벌인 역모는 정사(正史)이어야 마땅하다.

결코 알량한 영화적 상상력으로 덮어버릴만한 사항이 아니다.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이렇게 정사와 야사(野史)도 구별못한다.

그래서 더욱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