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를 재미있게 읽은 후 한국 소설에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소설에 알게 모르게 거부감이 있었던 저는 <노서아 가비>를 재미있게 읽은 후에 그런 쓸데없는 선입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노서아 가비>에 이어 이번엔 최제훈의 장편소설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선택했습니다. 솔직히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책 표지 그림이 워낙 비호감이라서 읽고 싶지 않았지만, 부담없는 추리소설인데다가 언젠가 서점에서 독특한 제목 덕분에 제 이목을 끌었던 <퀴르발 남작의 성>의 최제훈 작가의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저를 선택하게끔 이끌었습니다.
분명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꽤 흡익력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마 동호회 카페 회원들이 카페 주인인 악마의 초대의 외딴 산장에 모였다가 하나씩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여섯번째 꿈', 다섯 인물이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 '복수의 공식', 어느 가난한 번역가와 묘령의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π', 우연히 도서관에서 추리 소설을 발견한 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소설의 뒷부분을 만들어가던 한 소설가의 이야기 '일곱개의 고양이 눈'까지...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각기 독립적인 네개의 단편 소설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조금은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흡입력있는 이야기와는 별도로 책을 덮은 이후 뭔가 기분 나쁜 기운이 저를 덮쳤고, 악몽까지 꾸게 만들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두번다시 읽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공포영화같은 소설...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읽고나서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네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야기들
앞서 언급했듯이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네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편들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선 '여섯번째 꿈'은 외딴 산장에 모인 여섯명의 연쇄살인마 동호회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을 초대한 닉네임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여섯명의 남녀는 술에 취해 각자의 방에서 잠을 청합니다. 그리고 한명씩 죽음을 당합니다. 눈보라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에게 한명씩 죽어가는 상황등은 마치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셧번째 꿈'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다른 것은 명확한 논리적 설명없이 범인의 정체도 살인방법도 밝히지 않은채 어정쩡하게 끝을 맺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 이야기인 '복수의 공식'은 사로 다른 다섯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틀어놓고 죽음을 미리 선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남자, 나비문신의 건달에게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생을 망친 남자, 샛강모텔에서 눈을 뜬 무명의 여배우와 킬러, 코스모스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 평생 되는 일 하나 없는 남자에게 끔찍한 우연으로 날아든 새 인생 등.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거나 복수를 당합니다.
세번째 이야기인 'π' 역시 '여섯번째 꿈'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연우를 연상시키는 번역가 M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연우가 '여섯번째 꿈'에서 고백했듯이 원서의 내용을 아무도 모르게 바꿔서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며 쾌락을 느끼는데, 그런 그에게 묘령의 여인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M은 묘령의 여인이 해주는 이야기 속에 빠져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됩니다.
이들 이야기는 기묘하게 연결되어있다.
마지막 네번째 단편이자 소설의 제목과 같은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며 미처 읽지못한 뒷부분을 상상력으로 완성시키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 다른 듯이 보이는 네개의 단편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일단 '복수의 공식'의 주인공들은 마치 '여섯번째 꿈'의 등장 인물들을 살짝 변형시킨 캐릭터로 보입니다. 그리고 'π'의 M은 '여섯번째 꿈'의 연우를 연상키시며, M이 번역을 했던 작품은 '일곱개의 고양이 눈'이고, 새롭게 번역을 하는 작품은 '여섯번째 꿈'입니다. 그리고 묘령의 여인이 M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는 간질병을 앓고 있으며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부분에서 '복수의 공식'에 등장하는 킬러를 연상시킵니다. 마지막 '일곱개의 고양이 눈'에서 화자가 읽은 소설 속 주인공은 '여섯번째 꿈'의 세나, 혹은 '복수의 공식' 속 무명 여배우의 반복 재생처럼 느껴집니다.
이 네개의 단편의 공통점은 사로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외에도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π과 같기도합니다. 이러한 소설의 구성은 상당히 실험적이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만큼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살기 위한 식인과 명확하지 않은 결말 등으로 결코 기분 좋은 뒷끝을 남기지는 못합니다. 그로인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읽은 후,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빠뜨립니다. 아! 매력적이지만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이야기. <일곱개의 고양이 눈>이 정확히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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