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새해들어서 책을 많이 읽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읽을 책을 사기 위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간 것은 아닙니다. 일단 제 주위에 제가 읽지 않는 책들부터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책과 회사에 있는 책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예요>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집에 있는 책들이고, <탐정 갈릴레오>, <츠나구>, <스노우맨>은 회사에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2018년 들어서 일곱번째로 읽은 <변신> 또한 회사의 책장에 있던 소설입니다.
그러고보니 일곱권의 책 중에서 무려 세권이 일본의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네요. <탐정 갈릴레오>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재미있게 읽은 저로써는 <변신>에 큰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변신>은 평범하고 소심한 20대 청년 나루세 준이치가 어느날 우연히 강도의 총에 맞은 후 뇌 이식수술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뇌 이식 수술을 받은 준이치는 자신의 성격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분명 뇌이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라면 재미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변신>을 읽으며 저는 <탐정 갈릴레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는 달리 이야기 전개의 미숙함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변신>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1년에 쓴 초기작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탐정 갈릴레오>는 1998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2012년에 집필했습니다.)
내 머릿속에 다른 사람의 뇌가 들어 있다.
<변신>은 나루세 준이치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며, 미술용품점에서 만난 히무라 메구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준이치. 하지만 강도의 총에 맞아 뇌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그는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됩니다. 타인에 대한 공격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고, 그림이 아닌 피아노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이상 메구미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이 변한 이유가 뇌 일부를 차지한 도너(뇌 제공자)의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 준이치는 도너의 정체를 밝혀 나가고, 결국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에게 뇌의 일부를 제공한 도너가 자신에게 총을 쏜 강도 교고쿠 슌스케였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정신병까지 앓고 있는 슌스케의 의식은 점점 강해져 준이치의 의식을 밀어냅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준이치는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괴물이 되어갑니다.
<변신>이 준이치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 까닭에 준이치의 변화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준이치에게 뇌를 제공한 도너가 슌스케라는 사실은 너무 싱겁게 밝혀지고 (소설 초반 도너의 뇌를 보관한 유리 용기에 도너 No 2라고 적혀 있다는 부분에서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던...) 극단으로 치닫는 준이치의 범죄 행각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뇌 이식 수술 이면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준이치가 도겐 박사의 치료를 거부하는 순간 그에 대한 납치와 강제 실험이 일어났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마지막 순간 암살자의 등장이라니...
나는 과연 여전히 나인가?
분명 <탐정 갈릴레오>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인하여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읽은 <변신>은 기대이하의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흥미로운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특히 뇌이식의 부작용으로 슌스케의 의식을 갖게된 준이치가 스스로에게 "나는 과연 여전히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 하는 모습은 뇌이식에 대한 오랜 화두입니다. 과연 나라는 존재가 뇌의 기억에 의한 것이라면 바뀐 육체에 내 뇌를 이식한다면 여전히 나일까요? 그렇다면 준이치는 더이상 준이치가 아닌 슌스케인 것일까요?
아쉽게도 이런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서 <변신>은 평범한 범죄물로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슌스케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이식받은 뇌의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준이치의 마지막 선택은 분명 인상적이었습니다.
<변신>은 타미키 히로시, 아오이 유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변신]의 영화 정보를 보니 2007년 7월 12일에 국내 개봉까지 했더군요. 아쉽게도 저는 당시 같은 날 개봉한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시단]을 보기 위해 [변신]을 보지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소설 <변신>과 영화 [변신]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지...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봐야할 영화가 점점 늘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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