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8년 아쩗평

[여배우는 오늘도] - 그녀의 의미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쭈니-1 2018. 1. 5. 11:11

 

 

감독 : 문소리

주연 : 문소리

개봉 : 2017년 9월 14일

관람 : 2018년 1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8년의 첫 영화

 

2018년 새해 결심이 작심3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2018년의 시작을 영화가 아닌 소설책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로 시작했습니다. 3일만에 책을 전부 읽고나니 이제 2018년 첫 영화를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에서의 볼 첫번째 영화는 [쥬만지 : 새로운 세계]로 이미 확정이 된 상태. 그렇다면 oksusu 다운로드로 볼 첫번째 영화는? 바로 문소리 감독, 주연작 [여배우는 오늘도]가 선정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짝짝짝~ (^^;)

제가 [여배우는 오늘도]를 선택한 이유는 솔직히 7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입니다. 목요일 저녁에 자투리 시간을 내서 봐야하는 영화인만큼 러닝타임이 길어지면 이틀에 걸쳐서 영화를 봐야합니다. 하지만 [여배우는 오늘도]는 장편영화로는 드물게 1시간 1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루만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중 한명인 문소리가 주연 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맡았다는 점과 영화에선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 세계에선 그저 똑같은 아줌마에 불과한 여배우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 제 호기심을 잡아 땡겼습니다.

 

 

 

1막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가 연출한 세 개의 단편을 모아 장편으로 완성한 영화입니다. 그 중 1막에 해당되는 [여배우]는 2014년 제작된 18분짜리 단편영화입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배우인 소리(문소리)는 기다렸던 영화에 캐스팅이 불발된 심란한 상황에서 친구 경선(김경선), 숙(강숙)과 함께 겨울 북한산행에 나섭니다.

산행을 마친후 친구들과 주점에서 회포를 풀고 있는데, 하필 영화제작사 원대표(원동연)을 만나게 되고, 원대표 일행과 원치 않는 합석을 하고 맙니다. 얼굴이 알려진 여배우인 탓에 원대표 일행의 술주정을 참을 수 밖에 없는 소리. 원대표가 제안한 대학생 자녀를 둔 정육점 여주인 캐릭터도 소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원대표가 제안한 캐릭터가 국내 최고의 감독 안감독의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원대표의 제안에 시큰둥했던 소리는 매니저를 통해 그것이 안감독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좋아서 소리를 치며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러한 소리의 모습은 조금은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배우의 커리어는 좋은 영화를 만났을때 쌓이고, 좋은 영화는 좋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2막 여배우는 오늘도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단편은 영화의 제목과 같은 2막 [여배우는 오늘도]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한껏 민감해져 있는 소리가 차에서 내려 소리를 치며 밖으로 내달리는 장면에서부터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렇게 민감해져 있었던 것일까요? 영화는 소리의 일상을 뒤쫓습니다.

그녀는 피곤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칭얼거리는 연두(윤초희)를 딸을 둔 엄마, 문소리가 병원에 찾아와 기념 사진을 찍어준다면 반값에 임플란트를 해준다는 치과의사의 제안을 덥썩 받아들인 철없는 엄마(성병숙)의 딸, 그리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성정선)를 둔 며느리와 영화 감독 남편(장준환)을 둔 아내입니다.  그녀는 여배우이기를 원하지만 변변치 않은 독립영화의 우정출연과 그리고 대작 영화 [명랑]의 시사회 참가가 여배우로써 그녀에게 들어온 제안의 전부입니다.

이는 한국 영화계에서 연기력을 출중하지만 매력은 '나름'이라는 평가밖에 받지 못하는 중년 여배우가 처한 현실입니다. 남편은 힘들면 역할을 줄이라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1년에 작품 한개가 전부인데 뭘 줄이냐고 대답합니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많아서가 아닌 일이 없어서인 셈입니다. 어쩌면 문소리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로 문소리는 2018년에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개봉을 앞두고 있고, 김지훈 감독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장률 감독의 [거위를 노래하다](가제)를 촬영중이라고 합니다. 실제 문소리는 [여배우는 오늘도]의 문소리보다 훨씬 바쁘고 작품 활동도 활발하네요.

 

 

 

3막 최고의 감독

 

1막, 2막과는 달리 3막의 분위기는 조금 무겁습니다. 문소리가 2015년 연출한 29분짜리 단편 [최고의 감독]은 어느 무명 감독의 장례식에 참가한 문소리의 모습을 담아 냅니다. 기자 한명 찾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소리는 옛 동료 박정락(윤상화)과 신인 여배우 이서영(전여빈)과 만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고인의 예술세계에 대한 뜻밖의 논쟁이 벌어집니다.

소리의 말에 의하면 고인의 영화는 졸작 중의 졸작입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쓰레기라며 융단 폭격을 가했고, 그로인하여 영화에 출연했던 소리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였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영은 고인이 진정한 예술가였다며 맞서고 지금은 단역 배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정락도 서영의 편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그때 고인의 아내(이승연)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며 분위기는 역전합니다.

롱테이크로 찍은 그들의 논란은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소리가 고인의 어린 아들(서효승)과 함께 고인이 개인적으로 찍은 소소한 일상을 담은 필름을 보는 장면에서 저도 찡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영화계에선 무명의 쓰레기 감독이라 욕을 먹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았던 그 순간만큼은 '최고의 감독'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중년 여배우의 이야기

 

[여배우는 오늘도]는 사실 영화의 재미를 담보로한 상업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1999년 제작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으로 혜성과도 같은 나타나 18년이 넘는 세월동안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로 군림한 한국의 메릴 스트립 (영화에서 문소리는 굳이 아니라고 손사래칩니다.) 문소리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모든 중년 여배우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진솔했고, 그렇기에 현실적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영화계는 남배우의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여배우가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고 하네요. 실제 2017년 개봉한 영화 중에서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영화는 [악녀], [장산범]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소리의 자력갱생 포로젝트 [여배우는 오늘도]는 의미있는 영화입니다.

러닝타임이 짧아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고,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세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재미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소리의 의미있는 용감한 도전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치며 2018년 나의 첫 영화 관람은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