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50가지 그림자 : 심연] - 그레이의 그림자는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리다.

쭈니-1 2017. 12. 7. 15:44

 

 

감독 : 제임스 폴리

주연 : 다코타 존슨, 제이미 도넌, 킨 베이싱어

개봉 : 2017년 2월 9일

관람 : 2017년 12월 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제 순수한 사랑은 그만, 변태적 사랑이 온다.

 

요며칠동안 저를 사로 잡은 것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 제 관심은 [내 사랑 왕가흔]으로 끝났습니다.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해버린 미모의 극장 매표원 왕가흔을 찾기 위해 나선 천인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내 사랑 왕가흔]은 순수함이 어떨땐 너무 바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순수함의 양면성을 알려준 영화였습니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지친 저는 '그렇다면 순수한 사랑의 반댓말과도 같은 변태적인 사랑 이야기는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보고 싶었지만 계속 미뤘던 [50가지 그림자 : 심연]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50가지 그림자 : 심연]은 2015년에 개봉해서 전세계적인 흥행열풍을 일으켰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속편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순진한 여대생 아나스타샤 스틸(다코타 존슨)이 20대의 매력적인 억만장자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크리스찬은 어릴적의 상처 때문에 가학적 섹스에 빠져 있었고, 크리스찬과의 가학적 섹스를 나눈 아나스타샤는 그 충격으로 크리스찬과의 이별을 선언하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끝을 맺습니다.

2년만의 속편인 [50가지 그림자 : 심연]은 출판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아나스타샤에게 크리스찬이 찾아와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고 간청하며 시작됩니다. 크리스찬은 아나스타샤를 위해 자신의 가학적 섹스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겠다고 매달립니다. 결국 아나스타샤는 크리스찬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찬 주위를 맴도는 그의 과거 여자들 때문에 아나스타샤는 또다시 위기에 빠집니다.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를 맞춰 나가는 것.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주인공인 크리스찬이 가학적 섹스에 빠져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담은 평범한 사랑 영화였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아나스타샤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억만장자 크리스찬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은 오랜 세월을 지탱해온 사랑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가학적 섹스라는 변태적 요소 하나가 툭 하고 끼어듭니다. 그럼으로써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평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은밀하면서도 섹시한 사랑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0가지 그림자 : 심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헤어졌던 두 연인이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가끔 크리스찬의 전 애인(애인이라기 보다는 성노예에 가깝기는 하지만) 레일라가 느닷없이 등장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크리스찬이 가학적 섹스에 빠지게끔 이끈 엘레나 링컨(킴 베이싱어)가 나타나 갈등을 유발시키지만, 그녀들은 크리스찬과 아나스타샤의 관계에 균열을 줄만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놀라운 것은 크리스찬과 아나스타샤의 변화입니다. 크리스찬은 아나스타샤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가학적 섹스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버립니다. 그런데 아나스타샤 역시 크리스찬과 다시 시작하며 그의 가학적 섹스에 대한 취향을 어느정도 받아들입니다. 다시말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나간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맞춰 나가며 사랑을 이루는 것, 그것은 사랑 영화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맞춰나가야 하는 것이 가학적 섹스라니... 과연 [50가지 그림자 : 심연]다운 설정입니다.

 

 

 

여전히 크리스찬의 그림자는 펼쳐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스토리에 가학적 섹스라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재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50가지 그림자 : 심연]은 굉장히 새로운 멜로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부족했던 것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크리스찬이 어렸을 적의 상처 때문에 가학적 섹스에 빠졌다고 설명하지만, 그의 어렸을적 상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크리스찬 그레이의 캐릭터에 대한 매력은 절반밖에 담아내지 못했었습니다.

당시 저는 2편에서 크리스찬의 과거 상처가 상세하게 표현될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50가지 그림자 : 심연]에서도 크리스찬의 과거 상처는 거의 생략되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그를 가학적 섹스로 이끈 엘레나가 등장하며 기대를 걸었지만, 그녀는 아나스타샤에게 크리스찬과 헤어지라고 징징거리다가 크리스찬의 어머니에게 뺨을 맞으며 퇴장해버립니다. 킴 베이싱어라는 왕년의 섹시 아이콘을 캐스팅해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퇴장시키다니...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50가지 그림자 : 심연]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비교해서 캐릭터 간의 갈등 구조가 약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느닷없이 크리스찬의 헬기 추락사고가 등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나타난 크리스찬과 아나스타샤가 사랑을 재확인하며 영화는 급하게 끝맺음을 합니다. 

 

 

 

[50가지 그림자 : 해방]에 대한 기대감은 반감되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분명 아쉬웠던 영화이지만 크리스찬의 그림자가 속편에서는 관객 앞에 보여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 2편을 기대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50가지 그림자 : 심연]을 보고나니 3편에서 크리스찬의 그림자가 펼쳐 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네요. 그냥 이대로 크리스찬의 그림자는 대충 넘어가고 크리스찬과 아나스타샤의 사랑이 완성될듯 합니다. 그렇기에 [50가지 그림자 : 해방]을 기대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지금 고민 중이랍니다.

샘 테일러 존슨 감독에 이어 2편의 메가폰을 잡은 제임스 폴리 감독은 전편에 비해 크리스찬과 아나스타샤의 에로틱한 섹스씬에 꽤 긴 러닝타임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전편에서 단 한걸음도 더 나아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갈등구조는 약하고, 서둘러 봉합됩니다. 3편인 [50가지 그림자 : 해방] 역시 제임스 폴리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합니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아나스타샤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크리스찬에 의해 출판사에서 해고된 잭 하이든(에릭 존슨)이 복수를 다짐하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제임스 폴리 감독은 저처럼 3편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는 관객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해보라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듯한... 하지만 레일라와 엘레나에 의한 갈등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제임스 폴리 감독이 잭 하이든의 복수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런지... 또다시 얼렁뚱땅 대충 마무리하지는 않을런지... 어쩌면 기대감은 반감되었지만, 잭 하이든의 복수가 궁금해 또다시 [50가지 그림자 : 해방]을 보게 될런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