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 현대판 스크루지는 자신은 물론 주변인도 변화시킨다.

쭈니-1 2017. 9. 28. 15:15

 

 

 

감독 : 마크 펠링톤

주연 : 셜리 맥클레인, 아만다 사이프리드

개봉 : 2017년 7월 19일

관람 : 2017년 9월 2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인간은 언제 변할 결심을 하는가?

 

1843년 발표된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자린고비 구두쇠의 대명사와도 같은 스쿠루지 영감이 등장합니다.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입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밤 유령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돌아본 후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깨닫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일생을 통해 몸에 밴 삶의 방식이 한순간에 변할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도 갑자기 변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한 마법은 스크루지처럼 그동안 자신이 잘못 살았었음을 깨닫게 될때 벌어집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변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자신의 미래 무덤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를 평가하는 말들을 들은 후입니다. 살아생전 스크루지의 돈 때문에 굽신되던 사람들도 그의 무덤 앞에서는 냉정하게 그를 평가합니다. 그들의 인색한 평가가 스크루지의 인생이었고, 그가 일생을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뒤늦게라도 스크루지는 변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보기 전 저는 해리엇(셜리 맥클레인)이라는 스크루지가 자신의 사망기사를 미리 받아보며 스스로가 잘못 살았음을 깨닫고 변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해리엇은 분명 스크루지였지만 그녀를 통해 잘못된 삶의 방식을 깨닫고 변화를 선택한 것은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망기사 전문기자 앤, 최악의 의뢰인을 만나다.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해리엇의 일생을 찬란했던 일생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실제 해리엇을 연기한 셜리 맥클레인은 1955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미스터리 랙 코미디 [해리의 소동]으로 데뷔한 이래 50, 6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입니다. 마크 펠링톤 감독은 리즈 시절 셜러 맥클레인의 모습을 시작으로 이젠 노년의 배우가 된 주름진 그녀의 모습을 담아내며 해리엇솨 셜리 맥클레인을 동일화시킵니다. 한때는 광고계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이젠 은퇴해서 아무도 찾지 않는 저택에 쓸쓸한 노년을 보내던 해리엇, 그녀는 노년의 여배우 셜리 맥클레인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해리엇은 우연히 앤이 쓴 사망기사를 보게 됩니다. 해리엇이 알기에는 분명 최악의 인간들이었지만 앤의 글을 통해 완벽한 인생을 살다간 주인공으로 치장된 것을 본 해리엇은 앤에게 자신의 사망기사를 미리 쓰줄 것을 요구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기사를 쓴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 사망기사를 본인에게 컴펌을 받아야한다면 더욱더... 문제는 해리엇의 시망기사를 쓰려면 해리엇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야하는데, 해리엇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리엇에게 저주만 퍼붓는다는 점입니다.

난감해하는 앤에게 해리엇은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완벽한 사망기사를 위해서는 네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고인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고,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며, 누군가에게 우연히 영향을 끼쳐야 하고, 자신만의 와일드 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가지 요소를 함께 찾자는 것이 해리엇의 제안이었고, 앤은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정말 해리엇의 인생은 최악이었던가?

 

그렇다면 정말 해리엇은 앤이 생각한것처럼 최악의 인생을 살아온 고집불통 마녀였을까요? 해리엇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저주를 들은 앤은 해리엇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지만 그녀와 함께 하면서 선입견을 점차 벗어버립니다. 사실 해리엇은 여자의 사회 진출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남자들보다 두배는 노력하고, 두배는 더 똑똑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인생이 해리엇을 깐깐한 마녀로 만든 것입니다. 

문제아동 보호 시설에서 해리엇은 이런 말을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어리석은 일을 하겠는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대단한 일을 하겠는가?' 여자의 몸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던 해리엇은 그것을 딛고 대단한 일을 해낸 여장부였던 것입니다. 이제 해리엇은 문제아동인 브랜다(앤쥴 리 딕슨)를 변화시키기려합니다. 그렇다면 완벽한 사망기사를 위해 필요한 네가지 요소 중 한가지는 해결된 셈입니다.

가족의 사랑을 위해 오랜 세월동안 연락을 끊고 살아온 딸 엘리자베스(앤 헤이시)를 만난 해리엇은 그녀가 자신의 예상관느 달리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그렇게 최악의 엄마가 아니었음을 안도하고, 너무 완벽한 엘리엇의 업무 스타일을 경계한 사회 간부들이 그녀를 회사에서 내쫓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존경하는 회사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동료의 칭찬도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그리고 엘리엇은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로 일하며 그녀만의 와일드 카드도 완성합니다. 이제 해리엇이 원하던 완벽한 사망기사의 요건이 모두 갖춰진 셈입니다.

 

 

 

인생을 바꾼 것은 해리엇이 아닌 앤이다.

 

사실 해리엇은 스크루지처럼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나름대로 그녀만의 완벽한 삶을 살았으니까요. 단지 무기력한 노년을 보내기 보다는 라디오 DJ가 되고, 브렌다를 위한 멘토가 되고, 죽기 전에 딸을 만나고, 이혼한 전남편과 화해를 하며 80년 인생을 천천히 정리합니다. 오히려 해리엇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맞이한 것은 앤이었습니다.

앤은 어린 시절 떠난 엄마를 원망했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앤의 어머니는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남편의 곁을 떠났고, 그러한 영향으로 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게됩니다. 그러한 앤에게 해리엇은 충고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차라리 어마어마하게 실패해라. 실패해야 배울 수 있다.'라고... 해리엇이 앤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 엄마가 떠나버린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비행기 티켓인 것은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앤의 마음을 이해한 해리엇의 배려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엇과 앤의 관계는 마치 모녀 같았습니다. 꿈을 위해 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앤의 엄마처럼, 해리엇 또한 일 때문에 딸과 함께 하지 못했으니까요. 비록 해리엇은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엘리자베스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앤 또한 엄마와 재회하지 못했지만 해리엇과 앤은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 것입니다. 현대의 스크루지 해리엇은 이렇게 자신을 뒤돌아보고 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년의 지혜로움으로 주변 사람들 또한 변화로 이끕니다. 어쩌면 그것이 마크 펠링톤 감독이 원햇던 현대판 스크루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