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시오타 아키히코
주연 : 나가오카 타스쿠, 마미야 유키
개봉 : 2017년 5월 25일
관람 : 2017년 9월 1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로망 포르노를 아는가?
일본 영화 중에서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로망 포르노는 1970년대 일본 영화시장의 40%를 차지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 일본의 기존 핑크 영화들과는 달리 시나리오가 있었고, 제작비와 영화기술을 더 사용했다고합니다. 특히 10분에 한번의 성애 장면만 넣어준다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감독의 창의력을 허용한 덕분에 당시 능력있는 젊은 감독의 등용문이 되었습니다. 로망 포르노로 영화계에 입문한 감독 중에는 상당수가 이후 일본 영화계를 이끄는 거장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일본 5대 메이저 영화사 나카츠 스튜디오는 로망 포르노 제작 45주년을 맞아 '로포리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이번 '로포리 프로젝트'로 다섯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달빛 속삭임], [환생] 등을 통해 국내에도 익숙한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바람에 젖은 여자]도 그 중 한편입니다.
특히 [바람에 젖은 여자]는 제69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젊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제45회 몬트리올누보시네마영화제, 제27회 싱가폴국제영화제, 제17회 샌디에고아시안영화제, 제22회 에뜨랑제영화제, 그리고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금욕적인 생활을 선택한 초식남, 성적 욕망에 거침없는 육식녀를 만나다.
[바람에 젖은 여자]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파격적입니다. 저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오 있는 고스케(나가오카 타스쿠) 앞에 한 자전거를 탄 한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전거를 탄 채로 바다속으로 직행하더니 밖으로 나와 고스케 앞에서 상의를 탈의합니다. 갑작스러운 여자의 돌출행동에 고스케는 급하게 자리를 뜨지만,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고스케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는 오늘 갈 곳이 없다며 하룻밤 재워달라고 말합니다.
이 당돌한 이름의 여자의 이름은 시오리(마미야 유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고스케에게 자신과 하룻밤 자는 댓가로 돈을 요구하기도합니다. 하지만 고스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극작가였지만 새로운 창작 활동을 위해 모든 욕망을 버리고 고향 시골행을 자처한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유혹하는 시오리를 '들개'라며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고스케에게 무시당한 시오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고스케의 오두막에 낯선 남자와 섹스를 하며 고스케를 자극하기도합니다.
이쯤되면 [바람에 젖은 여자]는 그저 평범한 섹스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고스케를 유혹하려는 시오리와 시오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고스케. 하지만 영화 후반이 되면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꼬입니다. 고스케의 오두막에 고스케의 옛 애인과 그의 극단이 잠시 머물며 묘한 기류가 흐릅니다. 시오리의 계속되는 자극에 고스케는 결국 성욕을 느끼지만, 이번엔 시오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고스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고귀한척해도 그들 역시 들개일 뿐이다.
결국 영화 후반에 가서 고스케의 위선은 벗겨집니다. 고스케는 시오리를 향한 욕정을 결국 참지 못하고 분출해버립니다. 시오리와 고스케의 섹스는 마치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모양새입니다. 시오리와의 섹스 도중 금욕적인 삶을 향한 고스케의 위선의 상징물인 산 속 오두막은 무너져버립니다. 고귀한척 위선을 떨었던 고스케의 옛 애인 역시 시오리와의 동성 섹스 이후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단원들과 길거리 섹스를 벌입니다. 그들의 위선이 벗겨지는 순간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스케는 자신의 의자에 시오리가 남긴 글귀를 발견합니다. "누구보고 들개래?"라는 시오리의 질책에 고스케는 웃기만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들개 울음소리를 냅니다. 욕망을 드러낸 시오리에게 들개라며 무시했던 고스케는 결국 자기 자신 또한 들개임을 인정하고 만 것입니다
[바람에 젖은 여자]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분위가 자체가 발랄하고, 시오리를 연기한 일본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 마미야 유키의 당돌한 매력도 흥미롭습니다. 섹스씬은 적당히 자극적이고, 영화의 메시지도 모호하지 않고 직설적입니다. 어느 영화부 기자가 [바람에 젖은 여자]에게 이런 한줄 평을 남겼더군요. '로망 포르노 초심자 코스'. 저 역시 이러한 초심자 코스에 발을 딛은 것입니다. 어쩌면 조만간 '로포리 프로젝트'의 다른 영화인 [안티포르노],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암고양이들], [화이트 릴리]에 도전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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