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보통사람] - 1987년 VS 2017년... 그래서 세상은 바뀌었는가?

쭈니-1 2017. 9. 14. 16:53

 

 

감독 : 김봉한

주연 : 손현주, 장혁, 김상호, 라미란

개봉 : 2017년 3월 23일

관람 : 2017년 9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평범하지 않던 시절, '보통사람'의 이야기

 

1979년 10월 26일. 무려 16년동안 대한민국의 독재자로 군림하던 박정희가  사망합니다. 박정희의 사망으로 정국이 혼란에 휩싸이자 전두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정권을 장악한후 1980년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그리고 1981년 1월에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어 2월 개정된 새헌법에 따라 12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러나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견디지 못해 결국 수용했고, 1988년 제13대 대통령 노태우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납니다. 

[보통사람]의 영화적 배경은 1987년입니다. 이 시기는 전두환 정권의 말미입니다. 전두환은 1987년 4월 13일 '4.13 호헌'을 발표하는데 이는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5월 18일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은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입니다.

'4.13 호헌'과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은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집니다. 6월 항쟁은 전두환으로 하여금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 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6.29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보통사람]에서 추기자(김상호)의 고문치사사건은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겹쳐지고, TV 화면을 통해 전두환이 '4.13 호헌'을 발표하는 장면이 나오며, 6월 항쟁을 위해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장면으로 1981년 장면을 마무리합니다.

 

 

 

성진은 어떻게 독재정권의 개가 되었는가?

 

[보통사람]은 평범한 보통 경찰 성진(손현주)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벙어리인 아내와 다리를 절룩거리는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입니다. 열심히 범인을 잡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고, 데모하는 대학생들은 그저 철없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아들의 다리를 수술시켜주는 것과 번듯한 2층 양옥잡에서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사는 것 뿐입니다. 성진은 정의감에 불타는 그런 경찰은 아닙니다. 윗선에서 발바리를 잡아오라고 닥달을 하자 우연히 검거한 수상한 용의자 태성(조달환)을 발바리로 거짓 보고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과 우연히 엮입니다.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연예인 마약사건을 조작하고, 그것도 모자라 태성을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로 둔갑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진은 규남의 지시 아래 태성의 연쇄살인마 프로젝트(?)를 진행시킵니다. 물론 죄책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들의 다리를 수술시켜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과 2층 양옥집 하나는 거뜬히 살 수 있는 거액의 돈이 성진의 눈과 귀를 가려버립니다.

성진은 이 또한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 스스로에게 변명합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며 진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하지만 성진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닌 권력에 눈이 먼 독재자를 위한 것임을...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한 것입니다.

 

 

 

개를 필요가 없어지면 잡아먹힐 뿐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쓸모가 없어져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일이 있을 때 실컷 이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버릴 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성진은 진실을 쫓는 자유일보 기자인 재진(김상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규남의 사냥개가 되기로 자처했고,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자 가혹하게 버려집니다. 그러한 성진의 처지는 경찰서 앞마당을 지키던 백구로 비유됩니다.

경찰서의 경찰들이 백구를 삶아 먹자, 평소에 주인도 못알아보고 짓는다며 백구를 싫어하던 성진은 울컥한 마음에 "그럼 마당은 누가 지켜."라며 울부짓습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무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그것이 애국이라는 논리를 펴던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성진은 그저 필요가 없으면 잡아먹으면 되는 백구와도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탄압당하고, 짓밟힐때마다 더욱 굳세어집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규남의 권력에 두려울 법도 하지만, 성진은 그럴때마다 더욱 독한 마음으로 버팁니다. 친구들에게 병신이라고 놀림을 당하던 성진의 아들이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나요."라는 한마디가 그의 귓가를 맴돌지만, 성진은 가만히 있으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반항합니다.

 

 

 

30년후, 그래서 세상은 바뀌었는가?

 

결국 성진은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됩니다. 하지만 6월 항쟁을 위해 국민들이 거리를 뛰쳐 나가며 1987년 장면은 끝을 맺습니다. 성진 입장에서 영화는 비록 비극이지만, 김봉한 감독은 비극 속에서 큰 희망을 본 것입니다.

화면은 이제 30년 후 2017년으로 옮겨집니다. 노년이 된 성진은 재심을 통해 간첩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1987년과 비교해서 알마나 바뀌었을까요? 일단 전두환은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과 5공비리 문제로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힘으로 탄핵시켰고,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적폐청산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 사회가 완전히 탈바꿈된 것은 아닙니다. 성진의 무죄를 선고하는 재심판사 중 30년전 성진에게 간첩죄를 뒤집어 씌웠던 검사가 있었던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인적청산 작업이 되지 않았을을 의미합니다. 전두환은 여전히 멀쩡히 살아서 광주민주화운동이 간첩 소행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고, 사회지도층 인사중에는 아직도 가면을 쓴채 과거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성진에게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이 많이 바뀌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해줄 수 없는 상황. 그것이 성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 '보통사람'들에게도 커다란 비극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