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하루] - 지옥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쭈니-1 2017. 6. 16. 18:16

 

 

감독 : 조선호

주연 : 김명민, 변요한, 유재명, 조은형, 신혜선

개봉 : 2017년 6월 15일

관람 : 2017년 6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당신에게 최악의 '하루'는?

 

이번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하지 않아 뭔가 허전합니다. 매주 한편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해서 저를 행복하게 했지만, 올해 여름 최대 기대작이라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의 개봉을 앞두고 이번주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서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나름 알찬 우리나라 스릴러 [하루]가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제50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하루]는 한 남자의 '하루'가 무한대로 반복된다는 기본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소재 자체만 놓고본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반복되는 하루는 이미 1993년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에서 선보인바 있고,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소스 코드] 등 할리우드 SF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는 이들 영화와 비교해서 한가지 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반복되는 '하루'는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지옥과도 같은 '하루'라는 점입니다. 1년은 365개의 '하루'로 구성되어 있고,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이 82세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29,930개의 '하루'를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야만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기억조차 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 많은 '하루' 중에서 최악의 '하루'는 어떤 '하루'일까요? 생애 마지막 '하루'?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최악의 '하루'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하루'가 아닐까요?

 

 

 

준영과 민철의 최악의 '하루'

 

분쟁국가를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 준영(김명민). 사람들에게 전쟁의 성자라 불리며 칭송받던 그에게 최악의 '하루'가 찾아옵니다. 해외 봉사 활동을 마치고 딸, 은정(조은형)의 생일을 위한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대형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있는 은정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준영에게 있어서 최악의 '하루'는 하나 뿐인 딸이 죽은 바로 그날입니다. 그런데 은정이 죽었다는 슬픔도 잠시 시간은 2시간 전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준영은 사고를 막고 은정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은정의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 지옥같은 '하루'를 반복해서 겪는 고통만 느낄 뿐입니다.

그런데 지옥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것은 준영 뿐만이 아닙니다. 구급차 운전사인 민철(변요한) 역시 준영과 같은 지옥같은 '하루' 속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은정이 죽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사랑하는 아내 미경(신혜선)을 잃습니다. 민철은 미경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지옥같은 '하루'에 갇힌 준영과 민철. 두 사람은 은정과 미경을 살리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칩니다.

그렇다면 왜 준영과 민철에게 지옥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일까요? 그 어떤 일에도 이유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하루]와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블랙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소스 코드] 모두 반복되는 하루의 이유는 분명 있습니다. 처음에 준영은 '하루'가 반복되는 이유가 은정을 살리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에겐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은정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부족한 시간이 아닌...

 

 

 

누군가는 매일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후 영화의 스포 포함)

 

분명 준영과 민철은 지옥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내의 죽음을 알고 있어도 막을 수 없는 지옥같은 '하루'. 그런데 그들이 미처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이 지옥같은 '하루'를 매일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강식(유재명)에게 있어서 살아있는 '하루' 자체가 지옥입니다.  굳이 반복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이 모두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하루'는 이미 3년전 그날 멈춰졌습니다. 

3년전 강식은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혼자 살아남은 강식에게 그날 이후의 모든 나날이 지옥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옥을 끝내기 위해 복수를 결심했고, 복수를 위해 미경과 은정을 죽입니다. 3년전 사고를 낸 민철과 은정을 살리기 위해 불법적으로 아들의 심장을 이식한 준영이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옥과도 같은 '하루'를 살게하는 것이 그가 원했던 복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가 반복되면서 강식의 복수 또한 매일 반복됩니다. 마치 그가 복수를 멈추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반복되는 지옥같은 '하루'의 이유는 준영과 민철을 위한 것이 아닌 강식을 위한 것입니다.

[하루]는 그저 단순히 반복되는 지옥같은 '하루'에 갇힌 준영과 민철의 극복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준영과 민철은 은정과 미경을 살린다면 지옥같은 '하루'가 끝날 것이라 믿지만, 그것은 판타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겐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옥같은 '하루'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요?

 

 

 

증오는 평생 해야 하지만, 용서는 한번만 해도 된다.

 

며칠 전 [파도가 지나간 자리]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뒤늦게 자신의 딸을 되찾은 한나(레이첼 와이즈)는 딸을 빼앗아간 톰(마이클 패스벤더)과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부부를 용서합니다. 그러면서 '증오는 평생 해야 하지만, 용서는 한번만 해도 된다."라는 인상깊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의 강식이 지옥같은 '하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입니다. 강식이 3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옥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민철에 대한, 준영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습니다.

준영은 강식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빠니까요." 강식은 그러한 준영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당신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복수를 했을 것이라며 맞받아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한다면 그들이 지옥같은 '하루'를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준영은 강식에게 용서를 구했고, 강식은 은정을 통해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들을 만남으로써 준영과 민철을 용서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지옥은 끝이 납니다.

강식의 죽은 아들 이름이 '하루'였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어쩌면 '하루'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강식의 지옥을 끝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식이 미경과 은정을 죽이는 복수를 막아야만했고, 강식이 준영과 민철을 용서하게끔 이끌어야만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지옥과도 같은 '하루'는 강식을 위한 '하루'의 마지막 선물이었고, 이를 통해 강식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지옥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강식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기막힌 사연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에게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에 안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슬픔과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아직 내 삶은 행복하지만, 만약 내게 그러한 불행이 온다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기만합니다.

그렇기에 [하루]는 준영과 민철을 위한 영화가 아닌 강식을 위한 영화입니다. 민철은 교통사고를 유발해서 강식의 아들 '하루'를 죽게 만들었지만 책임을 회피했고, 준영은 강식의 아들 '하루'의 심장을 이식해서 딸 은정을 살려냈지만, 해외 의료봉사를 통해 스스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강식이 느꼈을 고통과 슬픔을 반복해서 느낌으로써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우치고 강식에게 용서를 구하며 강식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루]가 준영과 민철을 위한 영화였다면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지옥같은 '하루' 속에 살고 있는 강식을 위한 영화였기에 제겐 그 울림이 컸습니다. 은정에게서 죽은 아들 '하루'를 발견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강식. 그의 미소만으로도 저는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미 지옥 속에서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결국 지옥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부조리 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통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