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사랑
주연 : 김수현, 이성민, 성동일, 최진리
개봉 : 2017년 6월 28일
관람 : 2017년 7월 3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문제의 괴작을 드디어 보다.
지난 주말 시장에 가는 도중 구피가 갑자기 '듀얼'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복제인간을 다룬 케이블 드라마 <듀얼>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구피는 영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 보고 싶은 영화가 [박열]아니야?"라고 물으니 구피는 김수현이 나오는 영화라며 상세 설명을 해줍니다. 그제서야 저는 구피가 보고 싶은 영화는 [리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듀얼>, [박열], [리얼] 모두 제목이 엇비슷하네요. 허당끼가 있는 구피가 헷갈릴만 했습니다.
암튼 구피가 [리얼]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저는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구피는 서로 총질하고 싸우는 액션, 느와르 영화를 질색하거든요. 게다가 [리얼]은 개봉 전부터 감독 교체, 최진리의 SNS 파문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개봉하고나서도 각종 악평에 시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영화를 구피가 보고 싶다고 선언했으니 과연 이것이야말로 김수현의 힘이 아닐런지... 일요일 저녁에 내린 폭우로 인하여 [리얼]을 보러 가기로 했던 계획을 한차례 미루고, 월요일 밤이 되어서야 구피와 저는 이 문제의 괴작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구피는 회사 동료들에게 [리얼]에 대해 물었나봅니다. 그 중 한명은 [리얼]이 끝나고나서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박수는 영화가 재미있어서 마음으로 우러난 박수가 아닌, 지루한 영화가 이제서야 끝이 났다는 것에 대한 비꼬임이 담긴 박수였다고 하네요. 이러한 회사 동료들의 반응에 구피는 더욱 불안해했지만, 남들이 뭐라하든 보고 싶은 영화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리얼]에 대한 악평은 오히려 제 호기심을 부추겼습니다.
나는 이 영화가 흥미로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이 영화가 꽤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낮췄기 때문인지 몰라도 2시간 1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리얼]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소재가 흥미로웠습니다. [리얼]은 기본적으로 시에스타라는 신종 마약에 의해 두개의 자아를 가지게된 장태영(김수현)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장태영의 상태를 전문용어로 해리성 인격장애라고 이야기하는데 최근 개봉한 [23 아이덴티티] 등 수 많은 영화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리얼]은 단순한 해리성 인격장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두번째로 흥미로웠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 변신이었습니다. 저는 [리얼]에서 김수현이 배우로써 굉장히 위험한 도전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흥행영화와 <해를 품은 달>, <별에서 온 그대>라는 시청률 대박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는 [리얼]을 통해 예상보다 빨리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비록 [리얼]은 흥행 실패의 길을 걷고 있지만 김수현의 위험한 도전은 꽤 높은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최진리의 연기 변신입니다. 솔직히 저는 최진리라는 배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돌 출신 배우가 그러하듯이 최진리도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패션왕]에서 어정쩡한 연기력과 안일한 선택만을 보여줬으니까요. 하지만 [리얼]에서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비단 노출 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송유화는 여배우라면 결코 하기 힘든 캐릭터임에 분명한데, 최진리는 김수현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도전을 선택했고, 그만큼 연기에 대한 간절함이 보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최진리의 배우로써의 행보를 주목해보겠습니다.
제1쳅터 BIRTH 탄생 (이후 영화에 대한 스포가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리얼]에서 제가 좋았던 점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에스타라는 신종 마약으로 인하여 두개의 자아를 가지게된 장태영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쳅터인 'BIRTH 탄생'에서 장태영은 정신과 의사인 최진기(이성민)에게 해리성 인격장애에 대한 진료를 받습니다. 카지노 시에스타를 운영하는 조직의 보스 장태영은 나약한 르포 작가라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를 없애줄 것을 최진기에게 의뢰하고 최진기는 인격 살해를 통해 르포 작가의 인격을 없애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최진기가 르포 작가의 인격을 없애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식물인간 상태가 된 사람에게 르포 작가 인격을 투여한 후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죽임으로써 르포 작가 인격도 함께 죽이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최진기 덕분에 장태영은 자신의 또다른 자아인 르포 작가의 인격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첫번째 쳅터의 제목이 '탄생'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왜 제목이 '탄생'일까요? 만약 조직의 보스 장태영이 진짜 자아이고, 르포 작가 장태영이 해리성 인격장애로 태어난 가짜 자아라면 첫번째 쳅터의 제목은 '탄생'보다는 '소멸'이 더 어울립니다. 하지만 [리얼]은 첫번째 쳅터의 제목으로 '소멸'이 아닌 '탄생'으로 선택했습니다. 이는 최진기가 없앤 르포 작가 인격이 원래의 장태영의 자아이고, 르포 작가 인격이 사라지며 조직의 보스 장태영이라는 원래는 가짜 자아가 진짜 자아로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제2쳅터 VS 대결
르포 작가의 인격이 사라지고 6개월이 흐릅니다. 르포 작가의 인격도 사라지고, 카지노 시에스타도 호황을 누리는 상황. 이제 모든 것이 탄탄대로처럼 보였던 그때 시에스타를 노리는 조선족 조직의 보스 조원근(성동일)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두번째 쳅터인 'VS 대결'이 시작됩니다. 조원근에게 시에스타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장태영은 투자자를 찾아나서고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의문의 투자자 장태영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투자자 장태영과의 만남은 조직의 보스 장태영에게도 또다른 위협이 됩니다.
이미 대부분 눈치채셨겠지만 투자자 장태영은 6개월전 르뽀 작가 인격을 투여당한 식물인간입니다. 그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을 당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유산을 언급하였고, 그의 사망 차트에 나이가 62세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식물인간은 노년의 상당한 재력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사도진(조우진) 변호사의 도움으로 개명과 성형수술을 하며 스스로 장태영이 됩니다. 투자자 장태영이 조직 보스 장태영에 집착하는 것은 그렇기에 어쩌면 당연합니다. 투자자 장태영은 르포 작가 장태영이 진짜 자아였음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가짜인 조직 보스 장태영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으려합니다. 그의 애인인 송유화(최진리)까지...
처음 두번째 쳅터의 제목이 '대결'이었을때는 조직 보스 장태영과 조원근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좀 더 깊숙히 들어가면 조직 보스 장태영과 투자자 장태영의 대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직 보스 장태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장태영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투자자 장태영의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가련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진짜가 되고 싶었던 가짜와 가짜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제3쳅터 REAL 리얼
제가 해리성 인격장애라는 이 영화의 설정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바로 진짜가 되고 싶었던 가짜와 가짜의 대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장태영에게 있어서 진짜는 르포 작가 자아입니다. 그는 마약관련 수사를 벌이다 시에스타에 중독되고, 시에스타 중독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번째 자아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조직의 보스 자아이죠. 시에스타를 만든 최진기는 시에스타 중독으로 인하여 살아남은 것은 단 세명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제2의 자아를 만들어냄으로써 살아남은 것입니다. 르포 작가 장태영은 조직의 보스 장태영을, 그리고 식물인간은 르포 작가 장태영을, 최진기는 잔인한 마약상 보리스라는 제2의 자아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에스타 중독을 이겨냅니다.
[23 아이덴티티]에서 인격이 바뀌면 신체적 능력도 바뀐다는 설정을 선보인바 있습니다. [리얼]도 마찬가지인데 르포 작가 장태영은 시에스타에 중독된 나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조직의 보스 장태영은 시에스타에 중독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거의 무적에 가까운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진기의 경우는 시에스타에 중독되어 있지 않지만, 보리스는 중독되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식물인간은 애초에 시에스타에 중독되어 있었고, 르포 작가의 자아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시에스타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시말해 투자자 장태영은 시에스타 중독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죽을 운명이었고, 그렇기에 시에스타에 중독되지 않은 조직의 보스 장태영의 자아가 간절하게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쳅터인 '리얼'에서 조직의 보스 장태영과 투자자 장태영의 대결은 결국 가짜와 가짜의 대결이 됩니다. 이미 진짜인 르포 작가 장태영은 소멸되어 버린 이후이기에 이 두 가짜는 서로가 진짜라고 울부짖음으로써 처절한 대결을 펼칩니다. 이러한 가짜와 가짜의 대결. 제가 [리얼]의 해리성 인격장애가 흥미로웠던 이유입니다.
가짜 [리얼]이 아닌 진짜 [리얼]이 보고 싶다.
분명 [리얼]은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왜 김수현과 최진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완성도입니다. 솔직히 저는 첫번째 쳅터와 두번째 쳅터까지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지만 마지막 쳅터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감독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첫번째, 두번째 쳅터와 세번째 쳅터의 영화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리얼]은 감독이 중간에 이정섭에서 이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사랑 감독은 언론 시사회에서 서로의 의견 차이 때문에 감독을 교체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리얼]의 각본은 이정섭이 직접 쓴 것이고, 영화의 후반 작업 단계에서 감독 교체가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결정임에 분명합니다. 세번째 쳅터에 와서 급작스러운 영화 분위기가 바뀐 것이 감독 교체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사랑 감독이 아닌 이정섭 감독의 [리얼]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세번째 쳅터인 '리얼'에서는 시에스타에 중독된 투자자 장태영의 액션이 펼쳐집니다. 투자자 장태영의 환각 상태를 표현하기위해 [리얼]은 초현실적인 영상을 보여주는데 영화 후반엔 갑작스러운 안무로 액션을 표현하기까지합니다. 이는 새로운 시도임에 분명했지만 제겐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어색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사랑 감독은 개성이 드러나도록 애매한 리드감과 애매한 색감을 원했다며 영화를 봤을 때 '좀 이상한데?'라는 느낌이 들 수 있게 했다고 연출변을 밝혔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리얼]의 어정쩡한 완성도가 이사랑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리얼]을 보고 극장 밖을 나서며 이사랑 감독이 연출한 가짜 [리얼]이 아닌, 이정섭 감독이 연출한 진짜 [리얼]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진짜가 될 수 없으니까요.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이사랑 감독도 [리얼]의 흥행 실패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않았을까?
'영화이야기 > 2017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파이더맨 : 홈커밍] - 슈트없이 홀로 일어서야 한다. (0) | 2017.07.11 |
---|---|
[박열] - 자유의지로 결정한 선택이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삶의 긍정이다. (0) | 2017.07.07 |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 - 포기가 없다면 재미도 없다. (0) | 2017.06.27 |
[하루] - 지옥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 (0) | 2017.06.16 |
[미이라] - 다크 유니버스의 시작으로 무난하다. (0) | 2017.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