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클 베이
주연 : 마크 월버그, 안소니 홉킨스, 로라 하드독
개봉 : 2017년 6월 21일
관람 : 2017년 6월 24일
등급 : 12세 관람가
기말고사를 앞둔 웅이의 최대고민
며칠전 웅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웅이의 고민이기에 저도 진지하게 웅이의 고민을 들어줬습니다. 혹시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웅이의 심각한 표정은 저를 긴장시켰습니다. 일단 웅이의 고민은 7월 초에 시행되는 기말고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고민은 아니었습니다. 웅이는 기말고사 때문에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와 [스파이더맨 : 홈커밍]을 구피가 보지 못하게 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잔뜩 긴장을 하며 웅이의 고민을 듣던 저는 피식하며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웅이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알려줬습니다. 일단 기말고사 시작하기 전에 개봉하는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의 경우는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구피가 영화 보기를 허락해줄 것이며, 기말고사 중에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경우는 시험이 끝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보면 된다고 이야기하니 웅이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영화를 못볼까봐 걱정하는 웅이의 시험성적이 걱정되긴 하지만, 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지난 토요일 밤, 웅이에게 고민을 안겨준 첫번째 영화인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를 보고 왔습니다. 토요일 낮에는 구피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고, 저녁에는 웅이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영화 관람은 최대한 시간을 늦춰서 밤 9시대로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나니 새벽이 되어버리더군요. 영화가 길긴 엄청 길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긴 만큼 영화적 재미도 풍성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모든 전설은 사실을 기초로 한다.
사실 웅이가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를 기다렸듯이 저 역시도 이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제가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로봇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건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남자라면 어릴적부터 로봇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을테니까요. 예전에는 로봇을 애니메이션에서만 만날 수 있었지만 영화의 기술력이 발전하며 실사 영화에서도 로봇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초가 [트랜스포머]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실사 영화로는 처음으로 거대 로봇을 영화 속에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색다른 상상력으로 영화의 재미를 덧붙입니다. [트랜스포머]의 경우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어쩌면 변신 로봇일지도 모른다는 기본적인 설정에서 시작되었고,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대한 비밀이 사실은 '트랜스포머'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었습니다. [트랜스포머 3]에서는 달의 뒷면에서는 '트랜스포머'와 관련된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음모론을 제시했고,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는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공룡의 멸종이 '트랜스포머'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서는 아서왕의 전설을 끄집어 냈습니다. 아서왕이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색슨족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멀린이 '트랜스포머'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설정입니다. 이렇듯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단순히 착한 거대 로봇 오토봇과 나쁜 거대 로봇 디셉티콘의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류의 역사와 전설, 더 나아가서는 지구의 비밀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교묘하게 접합하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 세계관은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 실망했습니다. 이 영화에 실망한 것은 저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구피는 영화가 너무 복잡했다고 평했고, 웅이 또한 구피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맞습니다.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캐릭터가 늘어났고 세계관이 비대해졌기 때문일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진행될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위한 포석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세계관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기본적인 설정은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전쟁으로 '트랜스포머'의 고향인 사이버트론이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디셉티콘은 사이버트론 재건을 위해서라면 지구와 인류 파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토봇은 제2의 고향인 지구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디셉티콘과 맞섭니다. 이것이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불변의 설정입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는 '왜 하필 지구일까?'라는 의문점을 드러냅니다. 우주의 수 많은 행성 중에서 왜 '트랜스포머'는 지구에서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서는 아서왕의 전설에서 찾습니다. '트랜스포머'의 창조주인 쿠인테사의 힘이 농축된 에너지를 몇몇 '트랜스포머'가 훔쳐서 지구로 도망쳤고, 그것은 아서왕 전설의 근간이 된 멀린의 지팡이에 봉인되었다는 것입니다. 디셉티콘과 쿠인테사가 멀린의 지팡이를 되찾으면 사이버트론은 지구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재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지구가 유니크론이라는 쿠인테사의 한마디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쿠키영상에서도 유니크론은 다시 언급됩니다.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의 복잡함은 바로 이 유니크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툭튀'한 유니크론
그렇다면 과연 유니크론이 대체 뭘까요? 솔직히 저도 아무런 설명없이 '갑툭튀'한 유니크론이 뭔지 몰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리둥절했고, 영화를 보고나서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유니크론은 '트랜스포머' 모두의 공공의 적으로 행성으로 변형하며, 행성을 먹고사는 '트랜스포머'라고합니다. 쿠인테사는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지구가 유니크론이라며 유니크론을 죽이기 위해서는 지구를 죽여야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는 기본적으로 사이버트론을 재건하려는 쿠인테사가 이끄는 디셉티콘과 멀린의 지팡이를 찾아 지구를 지키려는 인류와 오토봇의 대결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유니크론이라는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최강의 빌런을 위한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유니크론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 그대로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것입니다. 유니크론이 뭔지 잘 모르는 저와 같은 관객들이 어리둥절하든지, 말든지, 관심없다는 듯이, 앞으로의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유니크론이라는 최강의 빌런이 나올테니 그런줄 알라며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 셈입니다.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서 설명이 없는 것은 유니크론 뿐만이 아닙니다. 왜 몇몇 '트랜스포머'가 쿠인테사의 힘을 훔쳐 지구로 도망쳤는지, 왜 지구로 도망친 '트랜스포머'들은 그 중요한 쿠인테사의 힘을 인간에 불과한 멀린에게 넘겨줬고 멀린이 죽자 그의 시신과 함께 봉인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냥 단순히 아서왕의 전설을 소재로 사용한 것이 아닌, 앞으로 진행될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하다보니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캐릭터의 과유불급
2015년 하스브로사와 파라마운트사가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트랜스포머'의 캐릭터들을 마블의 영화들처럼 거대한 세계관 속에 하나로 엮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이클 베이 감독은 라이터룸이라는 시스템아래 12명의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를 모아 놓고 '트랜스포머 세계관' 확장 작업에 돌입했고, 그 첫번째 결과물이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입니다.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범블비의 활약상을 짧게 소개하며 2018년 개봉예정인 '범블비 스핀오프'의 배경을 짐작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세계관 확장이 너무 급하게 이뤄져서 영화 자체가 복잡해져버렸다는 점입니다. 복잡한 것은 세계관 뿐만이 아닙니다. 캐릭터들도 너무 많은데, 인기 캐릭터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를 제외하고는 영화 속의 거의 모든 '트랜스포머'들이 별다른 활약없이 잠깐 등장하다가 퇴장해버립니다.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의 인기 캐릭터 그림록은 물론이고,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드래곤 스톰도 굳이 나올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비중이 작습니다.
그나마 즁요한 비중을 차지한 옵티머스 프라임은 쿠엔테사에 의해 악당으로 변했다가 범블비의 한마디에 다시 인간의 편으로 돌아와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우리의 옵티머스 프라임을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가지고 놀다니 영화를 보며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목소리를 잃은 범블비도 가관입니다.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는 개봉 전부터 범블비의 진짜 목소리가 공개된다며 관객의 기대감을 높여 놓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범블비의 목소리가 아닌, 범블비가 어떻게 목소리를 되찾는지에 대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는 그러한 과정은 생략한채 그냥 얼렁뚱땅 범블비의 목소리를 되찾아줍니다.
포기가 없다면 재미도 없다.
'트랜스포머' 캐릭터는 물론 인간 캐릭터도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에서부터 주인공으로 활약한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와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불러 일으킨 에드먼드 버튼(안소니 홉킨스)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를 캐릭터들이 넘쳐납니다. 비비안 웸블리(로라 하드독)는 그저 케이드 예거와의 러브 라인을 위해 나온 캐릭터같고, 이자벨라(이사벨로 모너)는 케이드의 딸인 테사 예거(니콜라 펠츠)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캐릭터처럼 보일 뿐입니다.
영화 중반에 1편터 3편까지 맹활약한 샘 윗윅키(샤이아 라보프)의 성이 언급되어 반가웠는데, 어이없게도 대대손손 멀린의 지팡이를 지키는 단체 이름이 윗윅키 기사단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건 1~3편에 대한 자기 패러디인지, 아니면 자기 오마주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하더군요. 1편부터 5편까지 씬스틸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시몬스(존 터투로)는 그냥 억지 출연처럼 보였고, 에드먼드의 집사 '트랜스포머'인 코그맨은 영화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코믹함으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에드먼드 버튼은 '희생이 없으면 승리로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이 대사가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가 가장 새겨들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관의 확장도 좋고, 비대해진 캐릭터의 총출동도 좋지만, 그로인하여 영화가 복잡해진다면 오락영화로써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몇몇 불필요한 캐릭터를 과감히 포기해야만 할 것입니다. '포기가 없다면 재미도 없다.' 이것이 10년동안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사랑한 저의 충고입니다.
오락영화에서 복잡함은 최악의 실수이다.
엄청난 스케일이 있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더라도
영화 자체가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면
오락영화로써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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