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형주
주연 :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개봉 : 2017년 5월 3일
관람 : 2017년 5월 17일
등급 : 15세 관람가
밀린 영화 보기 완료
드디어 [보안관]까지 봤습니다. 이로써 이번주에 개봉하는 신작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제가 극장에서 봐야할 밀린 영화는 이제 더이상 없습니다. 마음이 홀가분하네요. 사실 [보안관]은 개봉 첫주에 극장 관람이 무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운로드 관람으로 마음이 굳혀졌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티켓파워가 있는 스타급 배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주 연속 주말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지켜냈고, 18일까지 누적관객 235만명을 동원하는 흥행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며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봤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영화를 예매하기 직전 신작인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과 [보안관]을 두고 짧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잠시 미뤄두고 [보안관]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선택은 일단 만족스러웠습니다. 굉장히 재미있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만큼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1시간 55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단, 한가지 주의하셔야할 것이 있습니다. 대머리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으신 분들은 가급적 이 영화를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가는 길에 제 앞의 남자 관객 두 분은 "내가 만들어도 이 영화보다 잘 만들겠다."라며 욕을 진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욕먹을만한 영화는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그 분들을 쳐다봤는데, 알고보니 두 분다 머리숱이 없으셨습니다. 순간 그 분들의 분노가 이해가 됐습니다. [보안관]에는 대머리에 대한 기분 나쁜 비하가 살짝 있음을 감안하시길... 저도 요즘 머리숱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대머리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어서 [보안관]의 대머리에 대한 비하가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고 오히려 유쾌했습니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되고 싶었던 대호
[보안관]은 홍콩느와르의 걸작 [영웅본색]의 주제곡과 함께 시작합니다. 마약사법인 일식(정만식)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던 대호(이성민)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웅본색]의 주제곡을 들으며 주윤발의 트레이드마크인 성냥개비를 질근질근 씹습니다. 이러한 첫 장면만으로도 대호라는 캐릭터가 설명됩니다. 어쩌면 그는 범죄자를 때려잡는 정의의 사도라는 폼나는 인생을 살고 싶어서 경찰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일식이 나타났을때 지원요청을 하자는 후배의 말을 무시하고 무작정 처들어갑니다. 일식을 붙잡고 폼나게 경찰서로 금의환향을 꿈꾸며...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일식은 도망치고, 대호의 후배는 칼을 맞아 쓰러집니다.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조무래기 마약사범인 종진(조진웅)뿐.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일식은 경찰 옷을 벗게되고, 고향인 부산 기장으로 내려옵니다. 하지만 폼잡고 싶은 대호의 욕망은 낙향 후에도 계속됩니다. 그는 이제 본업이 된 식당일은 아내인 미선(김혜은), 처남인 덕만(김성균)에게 맡겨두고 마을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보안관'은 그러한 대호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는 이제 더이상 경찰이 아니지만, 기장에서 경찰 행세를 하고 다닙니다. 그가 경찰 행세를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그를 마을 남자들이 우러러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록 경찰은 그만뒀지만 여전히 폼나는 인생을 살던 대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대호의 위기는 조무래기 마약사범이었던 종진이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해서 대호 앞에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대호의 억지인가? 경찰의 촉이 발동한 것인가?
비치타운 건설을 위해 기장에 온 종진. 종진은 대호를 생명의 은인이라며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을의 민심이 대호에게서 종진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져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동안 대호는 의리를 부르짖으며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지만, 종진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샀고, 그러면 그럴수록 대호의 자존심은 점점 구겨져만갑니다.
[보안관]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그것입니다. 대호는 종진이 해운대에 돌기 시작한 마약과 연관이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덕만과 함께 자체적인 수사를 펼쳐나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종진이 대호의 자존심을 긁었기 때문에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경찰의 촉이 발동한 것인지 영화의 중반까지 관객들조차 알수가 없습니다. 종진이 대호를 생명의 은인이라며 극진히 대접을 하면 할수록 종진을 향한 대호의 의심은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호는 증거를 잡겠다며 더욱 도를 넘어선 수사를 펼칩니다.
김형주 감독은 그러한 대호의 모습을 통해 영화적 재미를 완성해냅니다. 마을의 존경받는 '보안관'에서 한순간에 사고뭉치로 처지가 바뀌게된 대호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의 폼생폼사 남자들에 대한 풍자를 이끌어냅니다. 아무리 주윤발이 되고 싶어 발버둥쳐도 자본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종진의 정체로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교묘하게 완성해냅니다.
속 시원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다.
[보안관]은 중후반까지 종진의 정체로 영화적 재미를 유지합니다. 젠틀한 자세와 막강한 자본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한 종진. 그러한 종진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꼬투리를 잡기 위해 애를 쓰는 대호의 모습은 코믹하게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가 범죄 스릴러 영화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중후반 이후 영화의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하는데, 대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장을 떠나기로 마음 먹으면서 종진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제 대호의 반격이 펼쳐집니다.
김형주 감독은 신인감독 답지 않게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이끕니다. 폼생폼사 대호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힌 후에야 그에게 복수의 기회를 줌으로써 영화 후반부의 쾌감을 극대화시킨 것입니다. 물론 대호의 복수를 위해 후반부의 전개는 조금 느슨해진 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능글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던 종진이 너무나도 쉽게 대호 앞에서 가면을 벗는 장면이 그러하고, 대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장을 떠나던 순간 일식이 갑자기 잡히는 장면도 너무 우연에 치우쳐 있습니다. 게다가 어중이 떠중이 마을 사람들에게 험상궂은 마약사범들이 제압되는 장면은 그냥 얼렁뚱땅 처리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느슨한 전개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영화 후반부 대호의 복수는 짜릿했습니다. 특히 대호와 종진의 일대일 대결 장면은 대호의 성격과 잘 맞아 떨어졌고, 대호의 최악의 순간과 오버랩되며 나도 모르게 열렬히 마음 속으로 대호를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자라면 당한 것과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은 욕망이 분명 있거든요. [보안관]은 그러한 욕망을 제대로 건드려준 것입니다.
이성민... 이제 믿고 봐도 될까?
제가 [보안관]을 다운로드로 관람해도 될 영화라 판단한 이유는 이 영화의 주연진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은 분명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지만 아직은 주연보다는 비중있는 조연급 배우라는 인식이 제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성민의 경우는 [로봇, 소리]에서 단독 주연을 맡았지만 2016년 설연휴 대목에 개봉한 [로봇, 소리]는 기대만큼의 흥행실적을 올리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보안관]을 보니 이제 이성민 주연의 영화의 믿고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선한 인상 때문에 정감있는 조연 캐릭터를 주로 맡았고, 가끔은 [검사외전]처럼 선한 인상을 역이용한 악역으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보안관]의 대호처럼 허세 가득한 마초남 연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 어울립니다. 영화 초반 수상스키를 타는 장면에서부터 의외로 잘 어울려서 저를 놀라게 하더니 1시간 55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꽉 채우며 영화를 완벽하게 이끌갔습니다.
[보안관]의 가장 큰 성과는 이렇게 이성민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생기고 예쁘고 젊은 배우들이 아닌 연기력을 바탕으로한 관록있는 배우들이 우리나라 영화의 주연으로 발돋음할때 한국영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에 저는 이제부터 이성민을 믿기로 했습니다. 이성민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2017년에 제작되고 있는 영화 중에서 액션 느와르 [리얼](이사랑 감독, 김수현, 성동일, 이성민 주연), 범죄 드라마 [마약왕](우민호 감독, 송강호, 조정석, 배두나, 이성민 주연), 그리고 첩보액션영화 [공작](운종빈 감독,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주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로써는 이성민 덕분에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가 더욱 늘어났네요.
남자라면 누구나 폼생폼사 본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본능을 점차 잃고 있는 것 뿐이다.
이 영화는 남자들의 본능을 적절하게 건드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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