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어야 한다.

쭈니-1 2017. 5. 23. 15:22

 

 

감독 : 변성현

주연 :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전혜진, 이경영

개봉 : 2017년 5월 17일

관람 : 2017년 5월 2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또 잠복경찰 이야기이다.

 

사실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이 영화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소재가 너무 흔했기 때문입니다.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마약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조직의 2인자 한재호(설경구)에게 접근하는 경찰 조현수(임시완)의 이야기입니다. 조현수는 교도소에서 한재호에게 접근하여 그의 신임을 얻고 마약조직원이 된다는 것이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의 주요 내용입니다.

얼핏 이 영화의 내용만봐도 떠오르는 영화만 수편입니다. 최근에는 한석규, 김래원 주연의 [프리즌]이 있습니다. [프리즌]은 영화의 주요 무대가 교도소라는 점까지 닮았습니다. 그리고 [신세계]도 떠오르네요. 한재호와 조현수의 관계는 [신세계]의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특히 범죄조직보다 나쁜 경찰 강과장(최민식)의 존재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의 천인숙(전혜진)을 떠오르게합니다.

외국영화에서도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과 비슷한 소재의 영화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간도]입니다. 죽어가던 홍콩느와르를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무간도]는 경찰조직에 잠입한 범죄조직원 유건명(유덕화)과 범죄조직에 잠입한 경찰 진영인(양조위)을 통해 영화적 긴장감을 완성했고, 미국에서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디파티드]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최근까지 시리즈가 제작되고 있는 [분노의 질주] 역시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잠입한 경찰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의 이야기입니다. 이쯤되면 잠복경찰 이야기에 피로감을 느낄 법도 한데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 또 개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

 

그런데 이렇게 뻔한 소재를 가진 듯이 보였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되면서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비경쟁부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 대한 제 인식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관람하기에 앞서 보게된 [원라인]을 통해 임시완의 연기력을 재확인한 저는 설경구와 임시완이 뿜어내는 연기 대결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게 호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변성현 감독이 SNS에 부적절한 내용을 올리면서 논란에 휩싸인 것입니다. 30대의 젊은 나이인 변성현 감독은 SNS에 저속한 발언을 잇따라 올렸습니다. 그는 SNS가 사적인 영역이라 생각해 무심코 적었던 글이라고 공식 사과했지만 수 많은 공인들이 SNS 때문에 홍역을 치뤘음을 감안한다면 좀 더 신중했어야한다는 비난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SNS 논란 때문일까요? 개봉 첫주 무난하게 박스오피스 1위 입성이 점쳐졌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미국의 공포영화 [겟 아웃]에 관객수가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뒤진 2위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이번주에는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개봉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의 흥행 반등은 힘들어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월요일 퇴근후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고,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과 [겟 아웃]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성현 감독이 물의를 일으켰어도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변성현 감독 혼자만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여 [겟 아웃]보다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이전 잠복근무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

 

지긋지긋한 월요일병을 극복하고, 저녁식사까지 쫄쫄 굶어가며 본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제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가 이전의 잠복근무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점입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편집방식이었습니다.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시간 순서대로 영화를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현수와 재호가 교도소에서 만나는 장면과 현수와 재호가 출소한 이후를 교차하며 보여줍니다.

두번째로 눈에 띈 것은 현수와 재호의 관계입니다. 현수의 목표는 재호의 신임을 얻어 마약조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수가 이 위험천만한 임무를 맡게된 것은 신장이식을 받아야하는 어머니 때문입니다. 팀장인 천인숙은 현수에게 임무를 맡아준다면 어머니에게 이식할 신장을 구해주고, 이식 전까지 치료비를 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현수에게는 어머니의 존재가 세상의 전부이기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건 임무를 맡게된 것입니다.

현수에게 있어서 이렇게 어머니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합니다. 현수의 어머니가 뺑소니 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것입니다. 그녀의 사망은 모든 것을 예측불허로 만들어버립니다. 현수는 더이상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이유가 사라졌고, 현수를 컨트롤할 무기가 사라진 인숙은 그가 임무를 망쳐버릴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재호에겐 기회가 됩니다. 현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현수와 재호의 관계를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로 만들어냅니다.

 

 

 

현수와 재호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이후 영화의 스포 포함)

 

현수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황은 예측불허가 됩니다. 교도소에서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들은 현수는 인숙에게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임무가 더 중요한 인숙은 그러한 현수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오히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갈 수 있도록 힘을 써준 것은 재호입니다. 그로인하여 현수의 마음은 재호에게 기울어집니다. 영화의 중반, 출소후 함께 하자는 재호에게 현수는 자신이 경찰임을 밝힙니다.

이전의 잠복근무 영화와 독특한 편집이외에 별다른 차별점을 보이지 못하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현수는 인숙을 배신하고 재호와 손을 잡습니다. 그는 이중첩자가 되어 마약조직과 경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합니다. 그 사이 재호는 병갑(김희원)과 손을 잡고 보스인 병철(이경영)을 제거합니다. 병갑이 병철의 조카임을 감안한다면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는 혈육이라 할지라도 절대 믿을 수 없는 배신의 연속인 셈입니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 있습니다. 현수의 어머니를 죽인 것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의미심장한 대사가 등장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어야한다는 재호의 충고입니다. 과연 현수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낸 것은 누구일까요? 그 순간 현수는 재호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임을 알게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처음부터 현수가 경찰임을 눈치챈 재호는 왜 그를 제거하지 않고, 그의 어머니를 죽이면서까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했을까요? 바로 이러한 의문점이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의 가장 큰 영화적 재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어야 한다.

 

변성현 감독의 논란이 된 SNS 내용 중에서 현수와 재호의 동성애를 암시하는 글을 리트윗한 것도 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독이 똘아이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어느정도 이해는 되더군요. 확실히 현수를 대하는 재호의 모습은 일반적인 그의 캐릭터와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동반자살을 위해 밥에 청산가리를 탔던 어머니에게서 겨우 목숨을 건진 재호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사람을 믿지 않는다라고 단언합니다. 그는 자신과 형제같았던 병갑을 현수의 한마디에 무참하게 살해하기까지하는 냉혈한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재호도 현수에게는 비이성적으로 행동합니다. 마치 사랑에 빠져 콩깍지가 씌인 것처럼, 혹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내리사랑처럼 현수에게만큼은 관대합니다. 영화 후반, 현수가 재호에게 "나를 죽여야 형이 살 수 있어."라고 충고하지만 결코 재호는 현수를 죽이지 못합니다. 그 어떤 죄의식없이 아버지같았던 보스, 형제같았던 친구까지도 한치의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던 그였지만, 현수에게만큼은 망설이고, 주저합니다. 결국 재호의 몰락은 사람을 믿지 않던 그가 현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악당이 된 현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만했던 인숙을 죽이는 장면은 그가 제2의 재호가 될 것이라는 암시와도 같습니다. 이제 현수는 재호의 마지막 충고처럼 사람을 믿지 않고 상황만 믿는 냉혈한이 될 것입니다. 이 영화의 부제목인 '나쁜 놈들의 세상'은 어쩌면 현수가 만들어나갈 세상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2시간 동안 피가 낭자하고, 배신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고나니 세상이 싸늘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요즘처럼 때이른 더위에 더 알맞은 영화일지도 모르겠네요.

 

느와르 영화를 좋아하지만 변성현 감독 때문에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있는 관객들에게

"감독이 아니라 영화를 믿으라."라는 짧은 충고를 해주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