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라이프] - 살기위해 죽이는 것과 살리기 위해 죽는 것

쭈니-1 2017. 4. 10. 17:25

 

 

감독 : 다니엘 에스피노사

주연 : 제이크 질렌할, 레베카 퍼거슨, 앨리욘 버케어, 라이언 레이놀즈

개봉 : 2017년 4월 5일

관람 : 2017년 4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웅이는 열다섯살

 

[히든 피겨스]를 3월 25일 토요일에 온가족이 함께 극장에서 본 이후 2주 동안이나 웅이와 함께 극장 나들이를 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 [프리즌],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을 극장에서 봤지만 [프리즌]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이고,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은 주인공인 메이저의 누드형 전신 슈트 때문에 구피가 웅이와의 영화 관람을 결사반대해서 혼자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지만 여전히 웅이가 볼 수 있는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는 없었습니다. 화성의 괴물생물체가 우주정거장을 습격한다는 내용의 SF 공포영화 [라이프]와 2013년 4월 15일 벌어진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사건을 소재로한 [패트리어트 데이]를 저는 웅이와 함께 볼 영화로 점찍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두 영화 모두 15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받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구피는 웅이와 이 두 영화를 보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싫었던 저는 [라이프]와 [패트리어트 데이]는 웅이가 봐도 무방하다고 지속적으로 구피를 설득했고, 웅이도 구피에게 "엄마, 저도 이제 열다섯살이예요."라며 강력하게 항변했습니다. 만 나이로 열다섯살이 되기 전까지는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는 안된다고 버티던 구피도 결국 저와 웅이의 합동공격에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투쟁을 한 덕분에 지난 토요일 밤에는 구피, 웅이와 함께 [라이프]를, 일요일 아침에는 웅이와 함께 [패트리어트 데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싸워 이겨야 하나봅니다. 물론 폭력이 아닌 논리와 상식으로 말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 생명체가 발견되었다.

 

[라이프]는 화성에서 발견된 외계 생명체의 위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한 외계 생명체에 대한 영화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에이리언]으로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두려움을 잘 이용한 SF 공포영화의 걸작입니다. [에이리언]은 시리즈 4편까지 제작되었고, 수 많은 SF 공포영화의 교과서가 되었으며, 오는 5월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에이리언 : 커버넌트]가 새롭게 개봉된다고합니다. 그렇다면 [라이프]는 어떤 새로운 설정으로 [에이리언]과 차별화된 SF공포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일단 영화의 제목에 우리는 주목해야합니다. SF 공포영화의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Life' 즉 생명, 인생이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과연 이러한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라이프] 속 외계 생명체에 그 대답이 숨겨져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성 토양의 샘플 속에서 발견된 외계 생명체는 처음엔 마치 죽은 듯, 동명상태였습니다. 그러다 휴 데리(앨리욘 버케어)의 지극한 정성 덕분에 깨어나게됩니다. 인류는 그러한 외계 생명체에게 캘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합니다.

제가 외계 생명체에게 '라이프'라는 영화의 제목이 갖고 있는 의미가 숨겨져있다고 생각한 것은 마치 이 영화가 캘빈의 인생을 담은 영화같았기 때문입니다. 캘빈이 태어나고, 이름을 갖게 되고, 부모(휴 데리)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결국 사춘기를 맞이하여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하더니 결국은 부모보다 강한 성인이 되는 과정이 [라이프]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 설명을 들은 구피와 웅이는 '에이, 말도 안돼'라며 일축해버렸답니다.ㅜㅜ)

 

 

 

살기 위해 죽이는 것

 

하지만 캘빈이 인큐베이터를 탈출하기위해 휴를 공격하고, 로리 애덤스(라이언 레이놀즈)를 죽이면서 [라이프]가 캘빈의 성장을 담은 영화라는 제 생각은 억측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캘빈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도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이 했던 '모든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죠.'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인용해서 끝까지 우겨댈 수도 있었지만, [라이프]는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의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가 아닌만큼 이 영화가 캘빈의 인생을 담았다는 주장은 흥미롭긴 해도 접어두기로 하겠습니다.

그 대신 웅이는 휴의 대사에 주목했습니다. 캘빈이 자신을 공격하고 로리를 죽인 후, 휴는 캘빈을 변호하듯 말합니다. '캘빈은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살기 위해 그러는 것 뿐이다.'라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라이프'라는 단어에는 인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생명을 뜻하기도합니다. 어쩌면 휴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캘빈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존재는 위협적이었을 것이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인간을 공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주정거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캘빈과 인간의 살아남기위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캘빈이 살기 위해 인간을 죽인다면, 그와는 반대로 인간은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 죽는 것 (이후 영화의 결말이 언급됩니다.)

 

결국 [라이프]는 인간의 희생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로리의 죽음은 휴를 구하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규칙상 로리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캘빈에게 공격을 당하고 기절한 휴를 구하기 위해 그는 규칙을 어겼고, 결국 캘빈의 첫번째 희생자가 됩니다. (그나마 슈퍼 히어로 경력이 풍부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끝까지 캘빈에 맞서 싸울줄 알았는데 초반에 허무하게 죽어버려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두번째 희생자인 예카테리나 골로브키나(올가 디로비치나야)는 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캘빈과 우주정거장 밖에서 사투를 벌어던 그녀는 캘빈이 우주정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입니다. [라이프]에서 희생대신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캐릭터는 무라카미 쇼(사나다 히로유키) 뿐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갓 태어난 딸을 위해 지구로 돌아가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결말은 충격적입니다. 우주 정거장이 지구로 추락하려하자 끝까지 살아남은 데이빗 조던(제이크 질렌할)과 미란다 노스(레베카 퍼거슨)은 한가지 선택을 합니다. 만약 캘빈이 지구로 가게 된다면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기에 데이빗은 자신을 희생해서 캘빈을 지구에서 떨어뜨려놓으려합니다. 결국 살기 위해 죽이는 캘빈과 살리기 위해 죽으려하는 데이빗의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대결에서 캘빈이 승리를 거둡니다. 인류를 위한 데이빗의 희생보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캘빈의 간절함이 더 앞섰던 것입니다. 이렇게 '라이프'는 인간을 뛰어넘는 캘빈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영화입니다.

 

 

 

너무 무섭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라이프]를 보러 가면서 저희 가족은 잔뜩 겁을 먹었었습니다. 토요일 밤에 영화를 봤기 때문에 만약 영화가 필요이상으로 무서웠다면 저희 가족은 단체로 그날밤 악몽을 꿨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라이프]는 악몽을 꿀 정도로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나서 저희 가족은 캘빈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깊게 나누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우선 저는 [라이프]를 보고나니 해파리 냉체가 먹고 싶었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만큼 캘빈은 성체가 되면 될수록 해파리를 닮은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와 비슷한 소재를 가진 SF공포영화들이 어떻게든 외계 생명체를 무섭고, 징그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라이프]의 캘빈은 성체가 되기 전에는 오히려 귀엽기까지합니다. 웅이는 영화 후반 데이빗을 공격하는 캘빈의 모습이 징그럽게 표현하기 위한 억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캘빈을 보며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눈이고, 뇌이고, 근육이라던 설명과는 달리 성체가된 캘빈의 모습은 마치 눈과 입, 얼굴이 따로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캘빈이 지구에 도착한 이후에도 저는 과연 캘빈이 인류를 멸망시킬만큼 위협적인 존재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캘빈의 생명력은 대단했지만, 점점 덩치를 키워만가는 캘빈은 인류의 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작은 세포로 무한 분할하여 각개로 인류를 공격한다면 위협적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라이프]는 SF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는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겁이 많은 저희 가족에게는 나른한 봄날의 밤을 흥미롭게 채워준 영화였습니다.

 

[라이프]가 장르적 재미를 갖추려면 좀 더 징그럽고, 좀더 무서워하지 않았을까?

뭐 그 덕분에 나는 흥미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지만...